그릇의 바닥을 닦는 이유

by 오선희

설거지를 좋아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설거지의 하이라이트는 그릇의 바닥을 뽀득뽀득 깨끗이 닦아내는 것이라는 말도 했었다. 글을 낭독한 후에는, 설거지의 하이라이트가 왜 ‘바닥 닦기’냐는 질문이 돌아왔고, 그땐 이유가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그때만 해도, 그릇의 바닥을 싹 닦아내는 데에서 느껴지는 속 시원함, 남들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내가 신경 썼다는 데에서 오는 자부심 같은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꼭 질문의 답은 불현듯 떠오를까. 마음속에 고요히 자리잡혀 있던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어떤 장면으로 갑자기 떠올랐다. 어두컴컴한 부엌이 있다. 그 속엔 물 마시러 부엌에 들어가 까치발을 하고 선반에서 물컵을 꺼내는 7살의 내가 있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컵이 깨끗하지 않다는 것은 알았다. 컵의 바닥이 끈적끈적했다. “엄마, 왜 할머니 집 그릇은 다 끈적끈적해?”라고 묻는 내 목소리도 들린다. 모든 할머니들의 음식 솜씨가 좋은 것이 아니듯이, 깔끔하게 살림을 정돈하는 실력도 할머니들 모두에게 기대할 수는 없었다. 우리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던 거다. ‘바닥까지 닦을 필요있나’ 하는 그런 분. 그릇뿐만 아니라 거실 바닥, 부엌 바닥도 쩍쩍 소리가 날 정도로 끈적끈적할 거라는 건 당연히 예상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가족은 그 끈적끈적한 할머니 댁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돈이 없었다. 아빠는 하는 일마다 잘 안되었다. 회사에 들어가 인내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때부터 끈적끈적한 컵을 물로 대충 헹군 뒤 물을 따라 마시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집에서 8살을 맞이했다. 그때 아빠는 큰 사고를 당해서 내 입학식에 오지 못했다. 전두엽 손상으로 인해, 감정 조절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사의 소견을, 엄마를 통해 들었다. 퇴원한 후에, 아빠는 의사의 말대로 시시때때로 화를 버럭 냈고, 엄마는 맞대응하다가 한 대 맞기도 했다. 근데 또 엄마는 맞기만 하지 않았기에, 엄마 아빠의 싸움은 늘 피를 봐야 끝났고, 그때마다 화장실에는 엄마의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아빠는 엄마의 피를 말릴 작정이었고, 엄마는 그 길로 집을 떠났다. 어느 날엔 집에 잠시 들러 나를 데리고 다시 집을 나가려고 했는데, 아빠가 길거리에서 엄마를 붙잡는 바람에 가방 끈도 다 끊어진 상태로, 창피한 마음만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었다. 엄마가 없을 때, 나는 엄마 없는 아이 티가 확 났다. 학교 가기 전에 할머니가 옷을 입혀 주셨는데, 할머니는 자꾸 멜빵 고리가 등 뒤에 오게 매어 주시는 거다. 내가 이거 아니라고 이렇게 입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할머니는 어린아이를 마구 몰아세우며 당신이 생각하는 모양새로 옷을 입혔다. 어쩔 수 없이 그 모습으로 집을 나섰고, 나가자마자 친구들의 놀림을 받았다. 두 눈이 벌게진 상태로 집에 돌아와 할머니 몰래 옷을 다시 뒤집어 입고 나갔다.


그때 우리 집엔 ‘챔프’라는 만화책이 많았다. 매달 나오는 만화책이었는데, 다 보고 나면, 고모네 아들 딸에게 물려주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이 우리 집에, 정확히는 할머니 집에 왔다가 돌아가면서, 챔프의 최신호까지 다 가져가려 하길래, 슬쩍 다가가 최신호만 빼놨었다. 그런데 친척 동생이 챙긴 책 봉투를 보니, 어느새 최신호까지 알뜰히 챙긴 게 아니겠는가. 내가 빼놓았다는 것은 안 주고 싶다는 건데, 그 마음을 살피지 않는 할머니, 그리고 그녀의 딸, 고모 또한 썩 기분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아직도 최신호는 고모가 챙겼을 거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 집에서 있었던 기억들을 생각나는 대로 늘여뜨려 보았더니, 다시 또 맘이 끈적끈적해진다. 엄마가 떠날까 봐 불안했고, 시시때때로 화를 내는 아빠가 무서웠고, 어린 마음을 보살펴주지 않은 할머니와 그 식구들 때문에 서러웠다. 여러 감정들이 막 뒤엉켜 끈적끈적한 무언가로 남아 마음 한구석에 들러붙어 있는 것 같다. 설거지의 밑바탕에는 이런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들은 내 가족이기에,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인 관계였지만, 기억 속에선 ‘적’이기도 했다. 묶여 있기에 더 싫었던, 아빠와 할머니 모두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끈적거리는 것을 보면, 이 끈적거림이 사라질 때까지 앞으로 설거지의 하이라이트를 몇 백 번은 더 겪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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