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by 오선희

왼쪽으로 돌아 누워야 소화가 잘된다기에 그렇게 했는데, 왼쪽 콧구멍이 꽉 막혀 버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좀 나으려나. 몸은 그대로 두고 고개만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랬더니 아주 희한한 자세가 나왔다. 몸은 왼쪽을 향하고 있는데, 고개는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천장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몸을 한껏 비튼 자세,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자세 같다. 소화도 안 되고, 코도 막히고, 그래서 잠도 안 오니 괴로운 거 맞다. 이렇게 잠이 안 오는 날엔 모든 게 다 어색하다. 입을 어떻게 다물어야 하더라. 어금니를 꽉 깨물면 안 된다던데, 엠(M) 하고 발음한 상태로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어떤 치과 의사의 피드에서 본 이후로, 잘 때마다 내 입안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되었다. 입안에서 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입천장에 붙이면 목구멍이 답답해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내 신체를 어색하게 여기는 밤을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체중계에 올라간다. 뭐 본격적인 다이어트를 한 건 아니지만, 어제 저녁에 평소보다 조금 먹었던 것을 떠올리며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던 거였다. 몸무게에 안경 무게도 덜어내고 싶어, 생눈으로 올라가려는데, 체중계 눈금이 안 보이는 거다. 그러면,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확대해서 봐야겠다 생각했다. 이런 바보. 안경 무게를 줄인다고 해놓고, 휴대전화 무게를 추가하고 있다니. 안경은 벗고, 휴대전화 카메라를 켠 상태로 체중계에 올라간 내 모습에, 바보 같은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몸무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전날 저녁 적게 먹은 것으로는 안 되나 보다. 더 오래 전부터 적게 먹었어야 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씁쓸한 마음에, 씁쓸한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다. 나는 커피 맛도 잘 모르는데, 그냥 누룽지처럼 옅게 마시는 커피가 좋다. 따뜻한 물 120g에 카누 미니를 살살 녹여 가지고 와서, 컴퓨터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가 부팅되길 기다리면서 하품하듯 날숨을 뱉어 안경을 닦았다. 늘 그렇듯 메일함에 한 번 갔다가 광고 메일은 ‘완전 삭제’해 버리고, 운영하고 있는 카페에 들러 가입 승인도 눌렀다. 질문에 답변을 하려는데, 자판에 닿는 손톱이 거슬렸다. 손톱이 너무 많이 자란 것을 발견하고 바로 손톱깎이를 가지러 갔다.


손톱깎이를 찾았는데, 옆에 어제 사 놓은 바나나 한 덩이가 보였다. 여러 개의 바나나 중 젤 노랗게 생긴 것을 골라 뜯고 껍질을 벗겨 먹었다. 바나나는 그냥 먹으면 꼭 목이 말라서, 냉수를 한컵 들이켰다. 일어선 김에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고, 다시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너무 조용한 게 싫어서, 넷플릭스를 켰다.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청설’을 다시 틀어놓았다. 싱그러운 두 남녀가 나오는데, 서로 수어로 소통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나는 수어에 관심이 많다. 한국어 말고 쓸 수 있는 언어를 하나 더 배우고 싶었다. 수어는 표정으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데, 진짜 자신있다. (ㅋㅋ)


오늘 글방에 가져갈 글을 아직 못 써서 고민이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내 책을 어제까지 총 세 번을 읽어보았다. 내용으로 한 번. 문장 부호만 보려고 한 번 더. 빨간 펜 들고 오타 찾으며 또 한 번 더. 추천사를 써 준 고마운 글방 동료들이 출간된 책을 받아본다면 깜짝 놀랄 정도로 뭘 많이 바꿔 넣었다. 비슷한 주제의 글만 계속 읽었더니, 이제는 다른 느낌의 글을 쓰고 싶어졌다. 콘셉트를 하나 정하고 나면 그것대로만 써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은 내려놓고, 불현듯 떠오르는 것들을 붙잡아 보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빨리 쓰고 또 써야 하는 거 있는데… 요즘 문제집을 쓰고 있는데, 문제 내서 편집자에게 보내면 더 어렵게 내달라고 한다. 어렵게 내는 거 나 못하는데… 내 깜냥이 이 정도뿐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좀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오! 그런데 택배 알림이 왔다. 바지를 하나 샀는데, 오늘 도착한단다. 허리가 잘 들어가야 할 텐데… 젤 큰 사이즈로 샀으니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 본다. 그러는 와중에 하나 깨달은 게 있다. 나 손톱 아직 안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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