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부비프의 45기 글방이 열리는 날이었다. 줌 화면 속 동그란 얼굴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기도 했고, 내가 처음으로 그곳에 내 글을 발표하는 날이기도 했다.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자기소개가 담긴 글을 발표했었는데, 서로의 글을 다 나눈 후, 밤 10시가 가까워진 시각에, 벌게진 얼굴로 밤산책을 나갔던 기억이 난다. 민망하기도, 부끄럽기도, 흥분되기도 했던 그 밤을 지나 어느새 꽉 채운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해에는 만 나이가 통용되면서, 마흔을 한 번 더 살 수 있게 되었는데, 마흔을 한 번 더 살게 되었다는 건, 이 마흔을 후회 없이 보내라는 뜻 같아 오랫동안 소망했던 글쓰기를 시작했던 것이었다. 존경하는 박완서 작가님도 마흔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말은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에세이를 한 편씩 꾸준히 쓰게 되었다.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이지만, 그 마음은 참으로 오래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백일장에 나가게 되었다. 사생대회와 백일장 중에 하나 골라서 나가는 거였는데, 나에겐 그림을 배운 경험도 없었고, 변변한 붓과 팔레트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제일 만만한 백일장에 나갔던 거였다. 얼른 제출하고 놀고 싶어 했던 아이들의 원고지들 속에서 그나마 오래 붙들고 앉아 써 내려간 나의 원고지는 괜찮았던 모양이다. 그때 나는 ‘말이다'라는 표현을 쓰기 좋아했다. 앞서 말한 주장에 부연을 할 때도, ‘그래서 이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와 같이 쓰고, 내 행동의 이유를 쓸 때도 ‘그때 나는 정말 즐거웠으니 말이다'와 같이 썼던 것 같다. 글인데, ‘말이다'라고 써도 되나 싶은 의문이 가득했지만, 말하듯이 쓰는 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상을 받았으니 ‘말이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친구와 교환일기를 썼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화가 많았다.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쌓이고 쌓인 불만과 억울함 같은 게, 고등학생 시절의 공부 스트레스와 만나면서 분출된 화였다. 이름만 교환일기였지, 그 안에는 누가 자기를 화나게 했다는 내용이 가득했고, 글씨도 거칠었다. 표지의 ‘푸우’만 환하게 웃고 있었다. 서로의 편이 되어 준다는 명분 아래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그 속에 난무하게 되었고, 교환일기의 낭만은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부터 교환일기 한 장을 펼치고 눈앞에 있는 것들을 쓰기 시작했다. 더 이상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일로 지면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 바깥 풍경, 책상 위 물건들…CCTV가 된 듯 기록한 내용들이 빼곡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내 시선 덕분에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 주는 글이 완성되었다. 삶을 공유하는 새로운 방법을 터득한 셈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글쓰기의 욕망은 더욱 커졌는데, 그땐 대중문화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문화인류학, 심리학 같은 수업을 교양으로 챙겨 들었던 것 같다. 어디에 내놓지는 못했지만, 다이어리에다 영화 티켓을 붙이고 간단하게 감상을 써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때 봤던 영화가,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그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직접적 사인을 제공한 사람이 분명 범인이겠지만, 그 영화 속에서 많은 인물들은 피해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그들 모두가 다 범인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썼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 범인이다'의 마음으로 어떤 사건에 영향을 준 99%의 요소와 1%의 요소 모두를 찾는 마음을 글에 담고 싶어졌다. 내가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는 것에는, 55%의 덤벙거림과 40%의 조급함과 5%의 나쁜 시력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비중만 다를 뿐 모두 다 범인이다, 모두 다 원인이다. 아무 의미도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여전히 지금도 집을 정리하다 보면, 노트에 담긴 짤막한 글들을 만나게 된다. 다 예전에 쓰다가 마무리를 짓지 못한 글들인데, 쓰다만 글들 속에 멋 부리며 썼던 흔적들이 남아있을 때마다 풋 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오랜만에 부비프 글방 데뷔의 날 내가 쓴 글도 다시 읽어 보았다. 공교롭게도 첫 단어는 ‘사랑해’였다. ‘사랑해'라고 짧게 말하는 것보다 ‘네가 냉면보다 좋아'라고 길게 말하는 게 좋다는 문장의 첫 단어, ‘사랑해’. 글을 보자마자 만난 단어가 ‘사랑해'여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었던 것은 길게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향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