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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Feb 08. 2024

이것이 나의 이드(겠)거니

수면욕, 성욕, 식욕 중 최고는 수면욕이다. 나는 그렇다. 남들은 고민이 있을 때 잠을 잘 못 이룬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고민이 있을 때, 잠깐 잠의 세계로 떠난다. 자고 일어나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굉장히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에도, 상대방에게는 잠깐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언제까지 답변을 드리겠다고 말한 후, 잠시 잔다. 나에게 ‘생각할 시간’은 고민을 내려놓고 잠시 ‘자는 시간’인 것이다. 물론 자는 동안 진지하게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원체 재고 따지는 것 잘 못하고, 직관적으로 선택하는 편이라, 내 기분을 믿어보려 한다. 그러려면, 내 컨디션이 좋아야 정확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이렇게 자고 일어나면, 부담되었던 고민들은 사라지고, 좀 더 간단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수면은, 더 구체적으로 ‘낮잠’은, 나를 문제에서 잠시 떨어진 어딘가로 데려다 놓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종종 나는 낮잠의 시간을 특정 공간으로의 이동시간으로 환산하여 말할 때가 있다. 약 2시간 정도의 낮잠을 잘 계획이라면, “나 잠깐 춘천 정도까지만 갔다 올게.”라고. 생각 많을 때 잠을 찾는 나의 성향을 잘 아는 사람들은, “괜찮아, 힘내”라는 위로 대신 “좀 자”라는 말을 할 정도이다.


아기였을 때 나는 잠을 자고 일어나면 그렇게 울어댔다고 한다. 잠이 너무나 달콤해서 일어나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아기였을 땐, 당장 눈앞의 상황만 보게 되니까, 잠에서 깬 상황 자체가 싫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생글생글 웃는다. 잠을 잤으니 체력이 보충되었고, 보충한 체력으로 남은 시간을 생산성 있게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동글동글 푹 잔 부은 얼굴로, 베개 자국 남은 얼굴로(점점 베개 자국이 잘 안 없어진다), 행복지수가 꽤 많이 높아진 상태가 된다.


‘이드거니’는  ‘충분한 분량으로 만족스러운 모양.’을 뜻하는 고유어이다. 충분하게 잠의 양을 채웠을 때, 나는 ‘이드거니 낮잠을 자서 생글생글 웃을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드거니’는 왜 이 뜻이 되었을까? 궁금해진 나는 무턱대고 네이버에 ‘이드거니’를 쳤다. 그랬더니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분석학의 개념인 ‘이드’가 나왔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능을 ‘이드’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본능은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데, 이 본능은 우리의 자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의 가장 큰 본능은 ‘수면욕’. 수면을 충분히 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이드거니’. 묘한 연결성을 발견하고 씨익 웃었다. 고유어와 영어를 연결지어 단어의 뜻을 생각하는 나는, 언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미래형 국어학자가 아닐까 하고 우스갯소리를 해 본다.

사람들마다 자신을 피곤이나 우울, 고민에서 구해줄 방법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을 지닌 사람들은, 마치 감옥에 들어갔지만 감옥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언제든 빠져 나올 수 있으니,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이나 피로도가 낮아진다. 그렇게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나에게는 수면이다. 잠에 충실한 모습이 다소 게을러 보일지라도, 본능인데 어쩌겠냐는 마음으로, 이 수면이 나의 ‘이드’겠거니 생각하면 ‘이드거니’한 상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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