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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연 Nov 11. 2019

일본도를 좋아한다고?

나는 일본도를 좋아한다.

이 말을 하면, 일본인들은 감탄을 하고, 일본에 사는 동아시아권 외국인들은 와패니즘에 빠진 백인남자를 보듯 바라보며, 한국인들은 화를 내곤 한다. 사실 이 모든 반응이 재밌고 이해가 간다. 내가 일본도에 빠지지 않았다면, 나 또한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일본도를 좋아하는 한국인이라니.


내가 일본도에 빠진 것은 터무니없는 이유였다. 한 게임에 빠졌고, 그것이 일본도를 다룬 게임이었으며, 그것에 푹 빠진 나는 일본도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게임을 시작한지 벌써 5년째가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질리지도 않고 일본도 전시를 보러 일본 전국을 돌아다닌다.

도대체 무슨 게임인지 설명하기 전에, 일본의 전국시대에 대해서 말하고 싶다.

일본 역사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전국시대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거다. 일본의 모든 사무라이들이 전국에서 싸움을 벌이고, 결국 그 안에서 승보를 잡은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예야스 같은 권력자들이 등장했고, 그 중 도쿠가와 이예야스가 최종 승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하필 이 시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 이런 것들.


이 전국시대에 사무라이들이 빠져들었던 건 일본도였다.

실제로 무기로 쓰기도 했지만, 그보다 예술품에 가까웠던 일본도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관용의 상징이기도 했고, 충성의 상징이기도 했다. 아까 언급한 세 권력자가 일본도를 모으고, 부하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시집가는 딸에게 쥐어주기도 했던 것은 그것이 돈이자 권력이자 예술품이었기 때문이다.

이 예술품을 너무도 사랑했던 무사들은, 이름을 짓고 이야기를 지어주곤 했었다. 호랑이를 벤 검이라느니, 귀신을 벤 검이라느니.


오다 노부나가가 가졌던 것으로 유명한 '야겐 토시로'의 설화에는 이런 내용이 전해져 내려온다.

하타케야마 마사나가(畠山政長)라는 무사가 이 단도로 할복을 하려고 하는데 칼이 잘 들지 않았다. 화가 난 마사나가를 칼을 던졌는데, 근처에 있던 야겐(薬研:약재를 갈아서 가루로 만들 때 쓰는 도구다)을 한방에 뚫어버렸다고 한다. 이 일화가 전해져 "이 단도는 칼이 잘 듣지만, 주인의 배만은 가르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듣고, 그래서 야겐 토시로(薬研 藤四郎 : 토시로는 이 칼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다)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 검 뿐이겠는가, 이 검만 들고 가면 승리를 했다는 '모노요시 사다무네(物吉貞宗 : 운이 좋다는 뜻)'나, にっかり(싱긋) 웃는 귀신을 베었다고 해서 '닛카리 아오에(にっかり青江)'라고 불렸다는 검 등, 재밌는 일화는 찾으면 찾을수록 나왔다.

이런 일화를 듣고, 직접 검을 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재밌었다. 일본도는 신기하게도, 정말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그걸 보고 어떤 감각을 느끼고는 했다. 차갑다던가, 따뜻하다던가, 귀엽다던가, 무섭다던가. 어떤 검에게서는 살기가 심하게 느껴져서 일화를 찾아보니 전 주인이 그 검으로 자살을 했다는 내용이 써있어서 놀란 적도 잇었다. 운이 좋다는 이름을 가진 모노요시 사다무네는 왠지 모르게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더니, 도록에 '모노요시 사다무네는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라는 문구가 써있던 적도 있다. 역사 속에서 불에 탄 적이 있던 검은, 왠지 지쳐보여서 쓸쓸해지곤 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이름을 주고 아끼던 무사들의 애정을 받은 검들은, 나에게도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일본도는 모든 무기가 그렇듯,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기다. 아무리 예술품이라고 하더라도, 무기로 쓰이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실제로 쓰이기도 했다. 어떻게 무기를 좋아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은 타당한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게요. 어떻게 무기를 좋아할 수 있을까요.

변명같은 대답을 하자면, 그 무기 안에도 이야기가 담겼다는 것이 나는 좋았다. 이야기는 결국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전하는 것이다. 정말로 모노요시 사다무네를 들고 가면 갑자기 아군이 강해질 리는 없다. 그저, 사람이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무언가에 애정을 주고, 이름을 붙이고,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은, 동시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는 것과도 같다. 이 검을 누군가가 아꼈다는 것은, 이 검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걸 일본도를 통해서 엿보게 된 것이 너무 즐거워서, 아마 당분간은 이 이상한 취미를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야겐 토시로의 복원도. 야겐 토시로는 오다 노부나가가 혼노지에서 죽을 때 같이 불탔다고도 전해진다. 현재는 소실 상태.



다테 마사무네의 검으로 유명한 쇼쿠다이키리 미츠타다. 관동대지진 때 불타서, 까맣게 변했다.



오니기리마루 혹은 히게키리라고 불리는 검. 천년이 거뜬히 넘은 문화재다.



마지막 사진은 가장 좋아하는 도공의 작품으로 장식하고 싶었다. 코우세츠 사몬지(혹은 사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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