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는 철덕이다.
프로필 사진을 기차 사진으로 해두고 이제 와서 무슨 고백인가 싶겠지만, 사실 기차 타는 걸 정말 좋아한다. 물론 비행기도 버스도 타는 건 다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 역시 기차다. 배는 아직 잘 모르겠다. 크루즈를 한번 타보면 아마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일본에 사는 철덕이라고 하면, 전국을 철도로 여행하고, 요금 계산을 당연하게 하고, 모든 선로를 꿰뚫고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정도는 아니다. 도쿄에서는 이곳저곳에 옮겨 산 탓에 남들보다 아는 선로나 역이 조금 많을 뿐이고, 직업이 여행과 관련이 깊다 보니 자연스럽게 잘 알고 있을 뿐, 이렇게 거창하게 고백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기차를 타고 너무 행복해서 싱글벙글 웃으며 사진과 영상을 남긴 적은 많았다. 특히 일본에 살면서 이 취미는 더 규모가 커졌다. 이 기차라는 것은 왜 이렇게 지역마다, 회사마다 다르고 다양한지. 프리 패스는 넘쳐나서 매번 어떻게 이동해야 이곳저곳을 보고 뽕을 뽑을 수 있는지 고민하다 보면 회사에서 월급루팡 시간이 금방 지나가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여행을 많이 다니는 건 회사에서 월급루팡을 너무 열심히 해서 인 것 같다.
철도는 이동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동이 빠르고 정확한 것도 굉장히 좋다. 신칸센을 탈 때마다 그 빠름과 쾌적함에 행복을 느끼곤 한다. 두 시간 뒤에는 교토에 도착할 거라는 기대감. 그 기대감이 식기 전에 도착해주는 신속함. 긴 이동을 해야 하는 거리에 이런 기차는 정말 큰 축복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더 특별한 기차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다. 내가 만났던, 너무 아름다운 기차들과, 그 차창으로 보이던 풍경에 대해서.
에노덴을 처음 탔을 때의 감동을 기억한다. 이 짧은 전차를 타고, 차와 자전가가 달리는 도로를 같이 달리는 이상한 길을 지나, 바다가 펼쳐졌을 때의 감동. 바다는 저 멀리 하늘과 맞닿아있었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전차를 타고 본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이렇게 쉽게 봐도 되는가. 나는 그저 카마쿠라에 가고 있었을 뿐인데. 하필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그 역은 카마쿠라고등학교 역이다. 이곳에서 전차를 타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너무 부러웠다. 이걸 매일 본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훗날, 쇼난 출신의 사람과 친해지고 나서 물어본 적이 있다. 고등학교 생활이 어땠냐고. "땡땡이를 치고 바다에 갔어. 나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다 그랬어.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다만 보곤 했어." 그 말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웃었고, 진심으로 부러워졌다.
에노덴 같은 노면전차는 사실 일본 전국 이곳저곳에 있다. 쿠마모토로 오게 되면, 그 어떤 전차보다 이 노면전차를 타게 될 것이다. 이 조그만 동네는 이 노면전차로 웬만한 곳을 다 갈 수 있다. 쿠마모토에 오면 꼭 가야 하는 쿠마모토성부터, 스이젠지, 상점가까지. 500엔짜리 1일권이면 하루 종일 탈 수 있는데, 덕분에 잠깐 내리고 사진 찍고, 금방 오는 다음 차에 올라타곤 했다.
역은 서울의 버스전용도로처럼 도로 맨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댔다. 노면전차를 볼 일이 거의 없는 서울과 도쿄에서만 살던 나는 이 신기한 광경이 너무도 즐거웠다. 그저 전차를 타는 건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세계관에 들어온 것만 같기도 했고, 옛날 사진 속으로 시간이동을 한 것만도 같았다. 노면전차는 이렇게 존재만으로 전혀 다른 세계로 이동한 것만 같은 착각을 준다.
노면전차처럼, 세상에는 신기하고 재밌는 전차가 또 많이 존재한다. JR큐슈는 JR그룹 내에서도 관광열차가 많기로 유명하다. 특이한 열차를 타는 걸 좋아하는 내가 쿠마모토까지 가서 놓칠 수 없었던 건 바로 이 관광열차 타기였다.
보이는가, 이 영롱하고 예쁜 기차들이. 왼쪽이 카와세미 야마세미(かわせみ・やませみ)이고, 오른쪽이 이사부로 신페이(いさぶろう・しんぺい)다. 이런 관광열차들은 내부도 끝내준다.
차에 타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이렇게 예쁜 기차가 세상에 존재한다니. 좌석마다 시트 색과 무늬가 다르고, 감촉도 좋고 무엇보다 굉장히 편안했다. 하필 평일 아침 기차를 탔기 때문에, 지정석 칸은 나와 노부부뿐이었다. 기차는 곧 출발했고, 우리 세명은 이 넓은 칸을 독차지하고서는 좌석을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고 바깥을 구경했다.
그리고 우리의 눈앞에 보인 건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푸른 숲과 그 사이에 흐르는 강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아름답게 빛났다. 이날 날이 너무 좋았는데, 이 풍경을 눈앞에 두고서는 햇빛이 강하다는 투정을 부릴 수도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그것을 이렇게 예쁜 기차 안에서 편안하게 볼 수 있다니. 약 한 시간 반 정도 이 기차를 타고 내가 낸 돈은 약 3만 원. 내가 부린 사치 중에서 제대로 된, 돈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사치였다.
히토요시 역에서 내려 잠시 관광을 하고, 다시 탄 기차는 이사부로 신페이였다. 카와세미 야마세미처럼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예쁜 기차는 아니었지만, 옛날 만화에 나올 것 같은 레트로함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사실 이 기차가 가는 노선은 사람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이 기차를 포함해서 하루에 겨우 3번밖에 기차가 다니지 않는 구간이고, 그나마도 내가 갔을 때도 사람이 거의 타지 않았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 승무원들은 역을 하나하나 다 설명해준다.
오코바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곳에 명함을 붙여두면 출세를 한다는 얘기가 전해진다는 말을 해준다. 나 또한 잠시 내려서 명함을 붙이고 오는데, 모든 사람이 제대로 타는지 확인해주며 인사를 해주신다. 이번 기차를 놓치면 다음은 5시간 뒤니까. 그렇게 사람이 없는 이 조그만 역을 이 기차는 여전히 다니고, 그래서 감사하게도 나는 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저 아래 쿠마모토에서, 위로 올라와 홋카이도를 보여주고 싶다.
올해 3월, 나는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되었고 우리가 선택한 곳은 홋카이도였다. 꼭 한번 비에이를 가보고 싶다고 친구를 졸라서, 비에이를 가게 됐다. 3월이라서 눈이 없지 않을까, 같은 순진한 걱정을 하면서 떠난 여행은 이렇게 하얀 세상을 보여줬다. 끝없이 내리는 함박눈, 소복이 쌓이는 눈밖에 들리지 않는 세상, 그곳을 지나가는 기차소리. 그리고 그 기차 안에 타서 따뜻하게 밖을 바라보는 나.
별 특이할 것 없는 기차의 창문은, 어느새 액자가 된다. 우리는 한참이나 그 풍경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너와 함께 이곳에 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정말 행복했으니까.
나는 욕심이 많아서, 세상에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열심히 여행을 다녀도, 이 세상에는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아름다운 곳이 넘쳐날 것이라는 게 정말 행복하다. 이렇게나 갈 곳이 많다니.
기차도 마찬가지라서, 세상에 넘쳐나는 예쁘고 신기한 기차들을 다 타보고 싶다. 다음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거긴 무슨 특이한 기차가 다니는지, 어떤 역이 있는지를 찾아보고 고민한다. 이건 정말 즐겁다. 여행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가끔 우연히 기차 안에서 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도 좋다. 퇴근하는 기차 안에서 본 예쁜 노을과, 봄날 출근하면서 본 벚꽃, 다른 곳을 가기 위해 이동하다가 바다, 혹은 산을 보는 건 그 자체만으로 내 일상의 선물이 되기도 한다. 차창이 액자가 되고, 단숨에 숨 막히는 풍경이 되어 돌아오는 그 광경은 기차 여행을 할 때 받는 큰 선물이다.
그 선물을 나 혼자 보기가 아까워서 이렇게 글을 올린다. 오늘 당신도 하루가 행복하기를. 우리는 좀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즐기고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