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일본도 전시를 하고 있던 마루가메 성이었다. 아마 일본도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눈치를 챘을 것이다. 닛카리 아오에(にっかり青江)의 전시였다. 사실 시코쿠 지방에서 갖고 있는 일본도는 워낙 적은 데다가, 마루가메 시에 있는 문화재가 거의 없기 때문에 닛카리 아오에는 이 지역의 보물 중에 보물이다. 문화재인 건 둘째 치고, 나처럼 보러 오는 사람 덕분에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고 하니까.
하지만 오늘 이 글은 일본도 전시에 대한 글은 아니니, 이 정도로 얘기하자. 전시장에 발을 들인 순간 나처럼 전국에서 이 칼을 보러 온 사람들이 가득한 걸 알았고, 아침부터 비행기를 타느라 지친 나는 그 줄에 서느니,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결심했다. 당연히, 나와서 찾을 수 있는 건 우동집 뿐이었다.
노란색 천으로 된 간판이 우동 집임을 알려주고, 안을 보니 그 지역 분들이 우동집 직원분들이랑 농담을 하고 계셨다. 누가 봐도 완전히 관광객 차림의 나는 멈칫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돈을 먼저 내야 하는지, 서서 주문을 하고 기다려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서 머뭇거리니 앉으라며 물을 내어주셨다.
5월이었음에도 찌는 듯이 덥던 그날, 나는 차가운 돼지고기 붓카케 우동을 주문했다. 아직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인지 가게 아주머니께서는 오니기리를 만들고 계셨고, 그 옆에 막 만든 계란말이를 하나씩 진열하는 걸 보고는 도저히 못 참겠어서 오니기리까지 주문했다.
이 투박한 음식이 얼마나 맛있던지. 면은 직접 만들어서 그런지 두께도 길이도 일정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식감이 끝내줬다. 간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고기는 야들야들하게 씹혔다. 차가운 음식임에도 그렇게 차갑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주먹밥은 별 게 없는데도 정말 맛있었고 계란말이는 따끈따끈해서 입 안에서 달달하게 녹아내렸다.
너무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그때 당시에 무슨 이유였는지 티슈가 필요했었다. 혹시 티슈 한 장만 주실 수 있냐고 묻는데 주인아저씨께서 "티슈? 우리 넘쳐나. 이거 가져가." 하고 쥐어주셨다. 받아보니 본인들도 어쩌다 받으신 것 같은 주차장 티슈였다. 그것도 두 개나 손에 쥐어주시고는 가져가라고 손짓하셨다.
누가 봐도 관광객이고 이방인이었을 내가 이 더운 날 고생할까 봐 걱정하신 걸까. 정말 맛있던 우동집이기도 했지만, 이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아직도 생생하다. 이 작은 가게가.
전시를 보고 난 뒤로, 나는 바로 타카마츠로 올라왔다. 타카마츠는 카가와현의 중심인 곳이다. 이 더운 여름날 좀 쉬고 싶어서 주변을 돌아보는데, 정말 여긴 카페도, 편의점도 아무것도 없지만 우동집만은 존재하는 이상한 동네라는 걸 이때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더운 날 쉬어갈 곳이 없어서 카페가 아닌 우동집에 들어오다니. 심지어 그게 싸다. 커피보다.
300엔짜리 카마타마우동을 시켜두고 냉수로 속을 달랬다. 더운 날 카마타마우동 같은 뜨거운 우동을 시킨 건 여기가 그게 유명한 것 같아서였는데 사실 그냥 그랬다. 맛은 있는데, 도쿄에서 먹는 우동이랑 별 차이가 없었다. 내가 너무 더워서 맛을 잘 못 느꼈... 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 혀를 믿는다.
뻘뻘 거리며 겨우 시간을 보내고, (아침에 비행기를 타서 전시 보고 우동을 두 개까지 먹었는데 아직도 3시였다!) 호텔로 들어가 체크인을 했다. 정말 좋은 호텔이었는데, 가격도 쌌다. 물론 이건 호텔 후기가 아니니까, 우동 얘기를 하자면,
호텔 방 안에 우동집 추천 리스트가 있다. 그것도 A4용지 네 장이나. 심지어 봄에 추천하는 곳, 여름에 추천하는 곳, 겨울에 추천하는 곳으로 나눠져 있다. 이쯤 되면 무서워진다. 어떤 형식의 가게인지 (가끔 제면소인 경우도 있다), 셀프식인지, 주문식인지, 주차는 되는지.. 너무 잘 쓰여있었다. 지금까지 본 그 어떤 정보보다 정확하고 세세한 현지 정보였다.
리스트에 うどん県(우동현)이라고 자칭하는 것마저...
(호텔 이름은 高松センチュリーホテル : 다카마쓰 센츄리 호텔이다)
그렇게 첫날은 우동에 지쳐버린 나는 둘째 날 또한 우동으로 시작했다. 문장 앞뒤가 이상한 건 기분 탓이다.
타카마츠는 사람이 정말 없는 동네였는데, 지나가다가 우동집이네? 하고 들어가려고 안을 들여다보니 만석이었다. 뭐지? 하고 들어가니 마침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자리가 났다. 이번에도 주문 시스템을 몰라서 고민하다가 점원 언니의 도움을 받아 스시 한 접시를 받아 들고, 기본 카케우동을 주문했다.
솔직히 말하겠다. 여긴 스시 맛집이다. 정말 초밥이 끝내주게 맛있었다. 여기가 우동집인지 스시집인지 구분이 잘 안 가기 시작하고, 그때 우동을 들이켜니 정말 속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기 우동은 면이 얇고 아주 푹 삶아서 내놓는 곳이라, 고속도로 휴게소 우동이 생각이 났다. 딱 그런 맛이었다.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가게를 둘러보고 나서 깨달았다. 여길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주변에 거주하시는 노인분들이고, 당연히 이런 면이 소화하기 편하실 거였다. 그렇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눈치를 챘을 거다. 지금까지 들어간 모든 우동집에 관광객은 나 하나였다.
카가와가 우동집이 많은 건 우동집이 많은 걸로 유명해서 사람들이 관광을 많이 가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것도 맞긴 하겠지만) 실제로 가서 내가 겪은 건 정말로 우동을 매일매일 먹는 사람들이었다. 노포에는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와서 식사를 하고, 셀프식 우동집에는 주변 직장인들이 와서 식사를 한다. 이 사람들은 정말로 우동을 좋아하는구나. 아마도 노인분들이 많으신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거다. (시코쿠는 일본의 4개 섬 중에서 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다) 우동은 소화가 쉬운 음식이라, 일본에서 장염에 걸려서 병원에 가면 우동을 먹으라고 말해주곤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생각해보면 뭔가 숙연해지고 사회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아지지만,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다. 카가와에 가서 우동을 한 그릇 더 먹는 것뿐. 관광객 증가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방법 중 하나니까.
다음으로 간 곳은 타카마츠역 바로 앞에 있는 메리켄야(めりけんや)였다. 여긴 진짜 맛있었다. 끝내줬다. 모든 면이 길이도 굵기도 일정한데 그 탄력이 끝내줘서, 츠유에 찍어먹기 완벽했다. 거기다 츠유도 진짜 맛있어서 사 오고 싶었다. 계란 반숙 튀김은 완벽했다. 차가운 튀김이었는데도 튀김옷도 맛있었다. 칭찬만 하고 있지만 이해해달라 진짜 맛있으니까.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긴 JR 시코쿠에서 운영하는 곳이라고 한다. 재밌는 사실. 누군가와 함께 여기서 우동을 먹는다면 아는 척하면 된다.
대망의 호텔 조식을 공개하겠다. 이쯤 되면 제발 우동 좀 그만 먹자고 애원하고 싶어 지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조금 가져와봤다. 나름 맛있었다. 누가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호텔이 더 맛있다는 후기를 남긴 것도 봤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당시 여행을 하던 나는 더위 때문인지 약간 정신이 나가 있어서 3일 내내 우동을 이렇게나 먹고도 공항에서 또 먹었다. 맨 처음 언급한, 국물 냄새가 끝내주던 바로 그 우동집이다. 더 웃긴 건 이 집 진짜 맛있었다. 저 새우튀김이랑 닭껍질 튀김은 진짜 맛있어서 아직도 생각난다. 질릴 법도 한데 우동도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시킬까 고민까지 했다. 참고로 이 조그만 타카마츠 공항에 우동집이 세 개인가 있었는데 1층에 있는 곳이다. 간다면 꼭 먹으라고 추천하고 싶다.
정말 원 없이 우동만 먹은 여행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목표 달성이었다. 진짜 맛있었으니까.
카가와는 정말 신기한 동네였다. 카페 하나 없으면서 우동집만 세 개 있어서 앉아서 쉬고 싶으면 우동집에 들어가야 하는 우동에 미친 동네면서도, 그게 맛있어서 화가 나질 않는 곳이었다. 사실 여긴 영양 불균형이 심한 동네기도 한데,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다. 탄수화물 그 자체인 우동에 곁들여먹는 건 튀김 아니면 또 다른 탄수화물인 주먹밥 정도니까.
카가와에서 좋았던 건 우동 말고도 많았다. 정말 아름답던 리쓰린 공원이나, 마루가메 성을 돌아보는 것도, 고토덴을 타며 이동하는 것도 즐거웠다. 살면서 가장 맛있는 팬케익도 여기서 먹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카가와를 또 떠올리게 되는 계기는 아마 우동이겠지. 거긴 정말 우동의 마을이었으니까.
공항으로 돌아가던 길에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올리며, 이 글을 끝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