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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May 03. 2021

크리스천과 결혼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크리스천의, 결혼에 대한 소소한 생각들




코로나 19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나서는, 교회 예배당에 가본 지 참 오래된 것 같다. 지금이야 미리 예약을 하고 방역수칙을 지키면 괜찮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교회를 통한 확산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고... 공무원이기도 하다 보니 괜히 욕먹을 일을 만들지 않고자 조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요즘에는 유튜브 영상을 활용하여 예배를 드리고는 한다.


나는 온누리교회에 다니고 있다 보니, 주로 '온누리교회 대학청년' 채널을 통해 예배에 참여하고는 한다. 요즘에는 각 공동체마다 유튜브를 통해 녹화영상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예배 실황을 중계하는데, 정말 너무 편리하다. (CGNTV만 보던 나에게는 매우 혁신적...)


내가 요즘 주로 참여하는 예배는 4시 SNS 공동체의 예배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것저것 하다가, 부끄럽게도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다른 청년부 예배를 검색하다가, 눈에 띄는 설교 제목을 발견했다. 이름하야 '복음과 결혼.'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에서 이런 제목을 뽑으시다니... 독특하다. '결혼'은 알겠는데 '복음'은 왜 들어갔을까...?)



결혼이라... 한때는 관련된 책들도 꽤 읽었는데. 최근 몇 달 동안은 이래저래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생각도 하기 싫었던 주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제 여유가 조금 생겨서 그런지 또 새삼 생각하게 되는 주제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최근 연달아서 지인들의 결혼 소식을 듣기도 했고...

(음, 생각해보니 그 소식들이 어찌 보면 복음/기쁜 소식이었구나. 물론 설교 내용은 그 의미가 아니었지만.)



그래서 오늘은 겸사겸사, (목사님 설교 내용을 조금 언급하면서) 결혼에 대한 소소한 생각과 고민들을 조금 나누어볼까 한다. 혹시 나처럼 이런저런 생각들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내 생각만 얘기하면 별로 유익하지 않을 수 있으니, 내가 읽었던 책에서 발췌한 내용도 함께 볼까 한다. (책 읽은 지 한참 되어서 다시 찾아보면서 써야 할 듯...)









1. 결혼은 왜 해야 할까?


설교에서 목사님은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것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할 수 있는 '헌신'의 한 방법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셨다. 이러한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헌신을 잘못 이해하면 자기파괴적이 될 수 있어서) 나는 결혼이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때는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아담에게 이브를 만들어주셨던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바로 이 부분이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께서 이브를 만드시는 장면



창세기를 통해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시고, 돕는 베필을 만드셨다. 그리고 그 둘이 결혼을 통해 결합하여, 하나가 되도록 만드셨다. (하나가 되는 이 결합에 대한 부분은 하나님의 삼위일체이신 속성에서도 조금 엿볼 수 있는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각기 다르지만 하나의 존재이자 하나의 가족이시다.)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면, 결혼은 얼마나 신성하고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인지. 기독교에서 이혼에 대해 그토록 보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로 만드셔서 남녀가 하나로 결합된 것이기에, 그저 마음이 달라졌다 하여 멋대로 떼어놓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이혼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결혼을 아무나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온다. 아무나와 한 몸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2. 결혼은 언제 해야 할까?


목사님께서는 결혼의 시기에 대해,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순위가 명확해지고 자신의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 분명해지면 그때 결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근본적으로 좋은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혼의 시기에 대해서는 정말 개개인의 편차가 큰 것 같다. 인생의 모든 일들이 그러하기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자연스럽고 순탄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거나 매우 더디게 진행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결혼의 시기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준비가 되었다고, 또는 결심을 했다고, 그 시기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니까. 소위 말하는 하나님의 시기(카이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부분이 아닐까.



다만, 두 가지 부분에서는 생각해볼 만하지 않나 싶다.


첫째,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결혼 전에 가능하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좋지 않나 하는 것. (물질적인 부분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부분과 정서적인 부분을 주로 의미)

둘째, 마음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환경이나 조급함 때문에 억지로 결혼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



결국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지속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뜻 안에 가정을 이룰 준비를 해나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만남이 있고, 그 만남을 통해 마음에 확신이 생기면... 결혼은 아마 그때 하면 되는 거겠지?





3. 결혼은 누구랑 해야 할까?


이 부분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선한 사람? 신앙이 있는 사람?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존경할 수 있는 사람? 서로의 목표를 도울 수 있는 사람?... 참 어렵다. 아직도 나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지울 수가 없고, 마음의 확신이 없는 상대와의 결혼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두렵기만 하다.


다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목사님께서는 룻과 보아스의 예를 들어 룻이 보아스의 '축복의 통로'가 되었음을 언급하셨는데, 나는 이 부분이 솔직히 너무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특히 만남을 거래처럼 생각하거나, 결혼을 미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더러 접하게 되는 요즘에는 더더욱. 내가 상대에게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고, 상대도 나에게 그러할 수 있다면, 가장 아름다운 만남이 아닐까. 그리고 그 축복의 통로라는 것의 의미를 조금 더 생각해보면... 서로를 통해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그리고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가운데 서로를 통해 사랑이 넘쳐나는, 그런, 만남.


그래, 포기하지 말자. 기대를 갖고 기다려야지... : )







다음으로 아까 언급했듯이, 크리스천의 결혼생활과 관련된 책의 내용을 조금 나누어볼까 한다.



오늘 나누고 싶은 책은 아래의 책이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생활 (마틴 로이드 존스)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일반적인 결혼 관련 책이 아니라, 지극히 성경적인 내용의 책이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낯선 개념들이 있을 수 있고,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더라도)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당연히 많을 거라고 본다. 부디 감안하고 읽어주시기를.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때면 관련 주제의 책을 읽어대는 편인데,  책은 내가 읽었던 책 중에서도 상당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깊이도 있고 통찰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메시지가 무겁기도 하다.)




이 책은 결혼의 의미와 바람직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에베소서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에베소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의 가정에 대한 권고



그리고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을 발췌해보았다.

결혼은 새로운 가정의 시작이다. 양가 부모와의 사랑의 관계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복종이나 예속의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혼한 남자가 아내의 가정에 흡수되거나 결혼한 여자가 남편의 가정에 흡수되는 경우가 있다. 두 경우 모두 잘못되었다.
결혼한 남자는 원칙상 스스로를 부모의 자녀가 아니라 먼저 한 여자의 남편으로 생각해야 한다. 결혼 전에는 스스로를 부모의 자녀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정신적인 태도를 새롭게 조정해야 한다. 그는 새로운 관계를 전제로 모든 것을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더 이상 누구에게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새 가족의 가장이 된다.
아내는 결혼의 본질이 남편을 공경하는 데 있다는 것을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정의 머리는 남편이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을 공경함으로써 결혼 관계의 의미를 현실화시켜야 한다. 남편이 머리요 지도자라는 사실은 그가 책임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태초에 정하신 질서다.
이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된다. 결혼식 예배를 드릴 때는 새로운 연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생각해온 사고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관계 안에서 신부와 신랑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혼 관계는 다른 모든 인간관계에 우선한다. 남자는 부모를 떠났다.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이 원리를 이해하고, 여기에서 가르치는 이상적인 결혼을 실천에 옮긴다면,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불신자의 결혼의 차이를 쉽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책에서의, 어느 신부님의 고백을 나누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남녀 간의 사랑과 결합이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기적이라는 것, 그래서 때로는 안타깝기도 하다는 것...)


* 참고로 재산축적을 방지하기 위해 성직자들의 결혼을 금하고 있는 천주교와 달리, 구교 중에서는 결혼을 허용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저 모자와 같은 것들로 표시만 할 뿐.



"신부님, 하나만 더 묻고 떠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대로라면 여성과 사랑에 빠진 경험이 없다는 점이 아쉬울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 성직자가 된 걸 후회하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금욕의 서약 또한 신부님께 소중하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잠시 미뤄두신다면... 후회하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기이할 정도로 깊었다. 그가 허리를 펴고 목을 다듬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돌리며, 명상하듯 지평선 전체를 호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혼잣말하듯 얘기를 시작했다.



"내 세계 어딘가에 누군가 있었고 또 지금도 있을지 모르죠. 내가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를 여인 말입니다. 이제 난 영원히 그녀의 눈을 보지도, 목소리를 듣지도, 손을 잡아보지도 못할 겁니다. 함께 하느님의 불후와 절정을 맛볼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틀렸습니다. 지금도, 앞으로도, 그녀의 신비 속에서 하느님 본연의 영광을 공유하는 건 불가능하죠.

아시겠지만, 제가 운 것은 잃어버린 기회나 좌절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점에선, 왜 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너무나 잘 압니다. 신부님께서도 리처드/리타 같은 상황에 깊은 손을 대신다면, 인간의 사랑이 너무도 위태롭기에 더 아름다우며,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겁니다.

물론 나도 후회는 합니다.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죠. 내 안타까움의 대상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직관입니다. 진실한 사랑에 빠진 남녀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실제로 사랑할 때 육체적인 요소는 직관의 비행을 위한 카우치나 침대에 불과하다고요. 남자는 단순히 여자의 품이나 몸 안에 있는 게 아닙니다. 여자 역시 함께 누워 남자를 받아들이는 게 전부라고 생각지 않죠. 사랑은 그런 개념을 초월하니까요. 여성들이 그걸 뭐라고 부르죠? 음. 그녀는 '온전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남자는 '하나 됨'이라고도 했죠. 그러니까 자기 자신, 아내, 하느님, 이 땅, 삶과의 하나 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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