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먼저 죽으심으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무렵의 나는, 하나님께 질문이 참 많았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당시에는 특히 모르는 것 투성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내 질문에 많은 경우 답을 주시고는 하셨다. 그래서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답을 얻을 때까지 하나님께 물어보고는 했던 것 같다. 기숙사에서 강의를 들으러 갈 준비를 하다가도 '하나님, oooo는 왜 그래요?'라고 묻고, 길을 걷다가도 '하나님, oooo를 알려주세요'라고 묻고, 자려고 누워서도 '하나님, oooo가 궁금해요'라고 묻고...
그러던 어느 날엔가, 나는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정말 저를 사랑하시나요?
제가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무언가 증거가 있나요?
그러자 문득, 말씀 구절이 떠올랐다. 바로 이 구절이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8]
이 말씀 구절이 떠오르기 전, 나는 내가 이 말씀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 유명한 구절이었기도 하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떠오르게 하셨을 때, 나는 내가 이 말씀의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먼저' 죽으셨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임을, 그때까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내 마음속에서 이 구절을 떠오르게 하셨을 때, 이 구절의 의미를 새롭게 와닿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내 안의 성령님을 통해) 마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했다.
나는 너희가 아직 죄인일 때에,
너희로부터 아무 약속도 받지 않고
나의 독생자를 보냈다.
내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나는 사실 큰 모험을 했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너희의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너희가 변화될 것에 대한 믿음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줄 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약속받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너희를 사랑했기 때문에,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는 모험을 했다.
나는 내 아들의 생명을
아무 대가도 약속도 없이,
먼저 내어주었다.
그렇기에,
이것이 너희를 향한 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너희 중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
이 음성이, 이 깨달음이 내 안에 와닿았을 때, 나는 너무 놀랐다. 말씀에 대한 나의 무지에 놀랐고, 이 말씀에 담긴 의미에 놀랐다. 그리고 성령이 아니고서는 말씀을 눈으로 보고 지식으로는 알아도, 그 진정한 의미와 정수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하나님께서 밝혀주시지 않는 영역에서, 나는 눈 뜬 장님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진정으로, 한 사람이 평생을 걸려도 다 깨달을 수 없을지도 모를 정도로, 깊고도 완전한 진리를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경의 의미를 다 깨달아 알고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기꾼이거나 완전한 소경 인지도 모른다고...)
그 후 나는 하나님께,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나도 했다. 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데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부조리들은 왜 존재하나요?
왜 자신의 탓이 아닌 이유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수많은 불공평이 존재하나요?
이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나를 납득하게 하셨는데, 이번에는 말씀 구절을 통해서 그렇게 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역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는데, 나는 이 말씀에 반문하지 못하고 납득하고야 말았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안타까워하지만,
너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으로 그들을 사랑하더라도
나의 사랑이 언제나 너희의 사랑보다 크다.
단지 너희가 그 방식과 크기를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너희의 삶은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다.
이 땅에서의 삶과 그 후의 삶이 다 합해지고 나면,
너희는 나의 공의로움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지 말아라.
이 이후로 나는, 내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행하시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의 사랑이 (어쭙잖은) 내 마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깊음을 떠올리면서, 감히 그분의 행하심을 판단하고자 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내가 남들을 걱정해봤자 나는 (의인도 아닌)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한) 죄인과 악인들을 위해 '먼저' '뉘우침이나 회개나 그 밖의 어떠한 대가나 약속도 없이' 나의 목숨을 내어주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다. 그러니, 그분께서 (스스로의 잘못이 없이 피해와 고통을 받는) 모든 약자들과 의인들을 사랑하시는 사랑은 얼마나 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