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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신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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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ghtly Jan 19. 2022

내가 결혼을 하게 될 줄이야

결혼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말, 믿지 않았는데


나와 신랑은 만난 지 거의 한 달만에 날을 잡고, 네 달만에 결혼했다. (뜨악)


우리는 처음 만난 날부터 결혼 이야기를 했고, (심지어 내가 아이 이야기도 했다. 대단하다.)

사귄 기간의 거의 대부분이 결혼 준비 기간이었다.


사실 신랑을 처음 만나러 갈 때만 해도 이럴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결혼을 하다니, 그리고 이렇게나 잘 살고 있다니... 작년 이맘때의 나는 전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당시의 나, 그러니까 작년 6월경의 내 상태가 어땠냐고 하면

반복되는 소득 없는 만남으로 인해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었던 상황이었고,

(직전 소개팅들이 뭐랄까 좀... 개인적으로 충격이기도 했고,

그 전의 소개팅들도, 사람은 나쁘지 않은데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연애들에 대한 경험과 기억들로 인해,

'결혼할 사람 따로 있다'는 말이 허황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운명적인 만남 그런 건 다 남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신랑을 만났던 그 시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더 와닿기 시작하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결혼에 대한 기대가 사그라들었던 시점이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흘러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넘어선 나,

노후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부모님,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아직 모은 돈이 일천한 내 경제사정과 천정부지로 치솟기만 하는 집값,

맞벌이를 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한 부담감,

(이상하게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지언정, 결혼 후 아이를 낳지 않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시댁으로부터 받는다고 하는 다양한 스트레스에 대한 걱정,

게다가 혼자 생활하는 것에 대한 안락함을 느끼기 시작한 시점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누군가와 함께 생활을 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랑을 만났던 것은, 그저

'가만히 있지 말고 그래도 사람들을 계속 만나보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첫 만남에서 나는 온갖 얘기를 솔직하게 했었다.

이를테면 이런 얘기들이었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내 비전은 통일이에요.

하나님이 5년쯤 전 나에게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그것도 매우 황당하게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직후에 말이에요.

게다가 작년에는 목사님께서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가 저와 가정을 이룰 사람이 아니라며,

그와 헤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당시에 화는 많이 냈었지만, 결국 헤어졌더랬죠.

(그때는 그냥 꾸밈없이 솔직하게 얘기하고자 했던 거지만,

돌이켜보니 웬만한 사람들은 들으면서 기함할만한 얘기들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다가 어떤 가정을 이루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들었는데,

나는 대략 이렇게 대답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풀라고 하실 때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라,

상대방이 그런 것을 싫어해서 혼자 살 때보다 더 남들에게 못할 것 같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내가 이룰 (이룰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정에서 사랑이 더욱 넘치고

서로서로 사랑을 베푸는 가운데 더 흘러가고 커졌으면 좋겠다고.


그 말을 들은 신랑은, 내가 마치 자기 마음을 적어놓은 종이를 읽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이 사람이 내 환심을 얻고자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하하...

그만큼 마음이 많이 딱딱해져 있던 때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신랑은 처음 만난 날 내가 자신을 위해 예비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이 열릴 때까지 무척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었다.


내가 마음을 열었던 것은 두 번째 만남 이후였다.

알게 모르게 세상에서 얘기하는 조건과 같은 것들에 매몰되어

스스로와 상대방을 평가하고자 하는 마음들로 가득했던 내 마음이,

어느 순간 사람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바뀌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이 바뀌기 전의 나는 부끄럽게도 서로의 조건이나 상황을 저울질하며,

이 만남이 나에게 손해인지 이득인지를 계산하려고 했다.)

조건과 같은 것들은 언제든지 있다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신랑의 삶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후 만남을 이어가고 많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참 신기하게도,

내가 결혼을 두려워하고 어려워했던 많은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걱정들이 사그라들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같이 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서는 어려워도 함께라면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후 우리는 서로의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는 환대에 감사하는 한편 오빠의 가족들에 대한 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당시 우리는 둘 다 가족에 대해서도 특별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다음의 일들은 정말 막히는 것 없이 일사천리로 쭉쭉 진행되었다.

(하루가 마치 삼일 같은 느낌이었다.)


두란노 결혼 예비학교를 신청하고,

결혼반지를 맞추고, (사이즈가 없으면 오래 기다릴 수 있다는 말에 반지부터 했다.)

오빠 쪽 제안대로 가을에 식을 올리기로 하고,

좋은 위치에 좋은 가격의 식장을 하루 만에 결정하고,

청첩장은 10분 만에 고르고,

두 사람에게 소개받은 웨딩플래너 업체가 공교롭게 같은 곳이라서

플래너도 쉽게 결정하고...


집 구하는 것이 가장 까다로웠지만,

그래도 다행히 크게 고생 안 하고 좋은 보금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몇 달 사이에 너무 값이 많이 올라서 매매를 엄두 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비록 반전세이지만 신혼을 보내기에는 너무 알맞은 집을 구해서, 감사한 마음이다.)


결혼식 한 달 전부터 이 집에 들어왔으니,

함께 생활을 한 지는 이제 네 달이 되어간다.

그리고 살아보니, 결혼을 하길 참 잘했다 싶다.

신랑과 하나가 되고 나니, (결혼 후 우리는 맨날 'one flesh one soul'이라고 장난친다.)

혼자 생활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충만함과 안정감과 행복감이 있다.


게다가 살아가면서 조금 엉뚱하지만 웃긴 에피소드들이 조금씩 쌓이고 있다.

그래서 짧게나마 신혼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글로 써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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