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보다는 익절

관계에 대한 소고

by Brightly



요즘은 주식시장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별다른 투자 수단이 없어서인지, 너도 나도 주식투자에 빠져 있다. 주식이라고는 관심도 없던 내가 주식 계좌를 개설한 것을 보면, 어쩌면 주식을 하는 사람보다 안 하는 사람을 찾기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들어갔으면 들어갈 사람은 다 들어간 거다.)


여하간, 주식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주식 용어에 빗대어 인간관계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주식 용어 중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표현이 있는데, 바로 '손절'이라는 표현이다. 주식 용어이지만 인간관계에서 참 많이도 쓰이는 말이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할 때 쓰는 말인데, 대체로 그 관계가 지속적인 피해 또는 손해를 끼친다고 느끼면서 관계 정리를 결심할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자기 돈은 전혀 쓰지 않으면서 빈대를 붙는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한다든지, 자기 축의금은 다 받으면서 친구들에게는 인색한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한다든지, 친하다는 이유로 말을 너무 막 하거나 일방적인 배려를 요구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정리한다든지... 쓰다 보니 새삼 느끼는 것인데, 손절의 핵심은 '오래된 관계의 지인', '일방적인 배려가 필요한 관계의 종료'인 것 같다.


사실 주식을 할 때도 사람을 사귈 때도, (아무 주식이나 매수하거나, 아무 사람이나 만나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손절'이 필요한 관계는 그렇게 많지 않다. (나만 그런가?) 지속적으로 손해가 발생할 때, 그리고 그 손해가 단기간 또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기간 동안에 회복될 거라는 기대가 없을 때 하는 것이 손절인데, (주린이이므로, 정확한 정의가 아닐 수 있다) 그런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일방적으로 내게 -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 피해를 주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요즘과 같은 시대는 '오랫동안 관계를 지속해 온 지인' 만큼이나 '새롭게 형성된 인간관계'가 매우 많다.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 외에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지금만큼 많은 시대가 있었을까 싶다. 온라인은 말할 것도 없다. 인스타, 페북, 블로그, 유튜브...(슬프게도 인린이인 내가 언급할 수 있는 온라인 채널이 여기까지다)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동호회, 독서모임, 와인 모임, 각종 액티비티, 심지어 여행을 가서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혼펜이나 게스트하우스와 같은 것들이 넘쳐난다. 네트워킹을 염두에 둔 모임들도 많은 상황이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말 그대로 무궁무진한 기회가 널려 있다.


그리고 실제로 - 나 역시 지난 6개월간 경험해보았지만- 요즘에는 마음만 먹는다면 다양한 기회들을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사람'이란, 내 기준으로 (1) 무엇보다도 무례하지 않으며 (2) 서로 적당한 호감이 있고 (비단 남녀 간의 얘기가 아니다) (3) 즐거움이든 배움이든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연 그 모든 좋은 사람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관계에 대한 익절이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시대에 더 건강하고 풍성한 관계를 위해 우리가 더 고민하고 집중해야 할 것은 '익절'에 대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느 순간 하게 된 것이다. 서로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관계이지만, 그런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어쩌면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이 서게 되는 순간, 서로 좋은 기억을 남긴 상태로 관계를 서서히 정리하는 것. 완전히 끊는 것보다는 거리를 넓혀서 함께 하는 시간을 줄이는, 그런 의미의 익절.


생각건대 내 계좌에 보유하고 있는 예수금(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돈)이 한정되어있듯, 누구나 정도는 다르지만 인간관계에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을 테고, 유지할 수 있는 관계 역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적절한 '익절'이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익절을 위한 나만의 기준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면... 어쩌면 내가 너무 냉정한 걸까? 너무 솔직한 걸까?


솔직한 김에 조금 더 솔직해지면 어떨까. 내가 익절을 결심하게 되는 순간들에 대해서. (내가 정서적 자산과 물질적 자산이 넉넉해서 누구에게든 퍼줄 수 있는 사람이면 이런 슬픈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면 (앞에 언급한 세 가지를 충족하는 경우에) 일정 기간 동안은 내가 줄 수 있는 것들은 주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다. 시간이든 물질이든 감정적 위로이든... 주는 걸 꽤나 좋아하는 성격이라 그런 것도 있고, (어떤 작가의 말마따나) 줘봐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느껴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다. (그리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보니, 주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받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일정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이 관계가 나에게 주는 영향이 어떤지를 생각하고는 한다. 나는 이 만남으로 인해 긍정적 영향을 받고 있는가? 만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Yes라면,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까?


위의 두 질문 중 한 가지라도 대답이 No가 나오는 순간. 나에게는 그 순간이 익절에 대한 결심을 하게 되는 순간이다. 물론 관계를 완전히 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당히 거리를 벌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익절 후에도 얼마든지 그 관계는 재평가될 수 있다. 그 시점에 내 예수금이 얼마 남아있는지가 중요하겠지만.


(그러나 어쨌거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익절을 할 수 있는 관계가 더 긍정적이고 좋지 않을까..?)


주식 용어에 빗대어서, 요즘 하게 되는 고민을 조금 담아서, 시의적절하고 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에서 관계를 조정하는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올 한 해, 나를 비롯한 모두가 (짧게 만나든 길게 만나든)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그리고 모든 관계에서 적절한 거리와 서로 멀어져야 할 시기를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치고자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