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개입

피 묻은 손을 내밀 용기와 두려움

by sincerecord

세상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런 갈급함을 진심으로 돕기보다는 도리어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이들로 가득하다. 세상에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피해를 받는 이들은 계속 피해를 감내해야 하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는 사람은 늘 그 위치를 유지하는 듯한 이 악순환이 참담하기만 하다.


사회는 암묵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는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밟히지 않기 위한 처절한 발버둥 속에서, 결국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서 밟히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세상은 또 피해를 감수하기로 결심한 자들의 선택에 책임을 돌리곤 한다.


이런 세상의 악순환은 왜 대체 반복이 되는 걸까?


더욱이 고통스러운 것은, 이런 이들에게 뻗는 ‘도움의 손길’ 마저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된 현실이다. 선의를 가장한 악의가 도처에 도사리고 있음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프다.


대놓고 악의를 행하는 사람보다는, 누군가의 갈급함을 조용히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치가 떨린다. 그들 역시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하여 그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라는 논리가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들의 행동은 용답하기가 어렵다.


'빈곤 아동 공부방'을 내세워 필리핀 14세 소녀를 임신시키고 출산까지 유도한 유튜버의 소식.

'교회'라는 간판 아래, 마음 아프고 힘든 성도들의 갈급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교회 시스템들.

법적으로 공정한 재판을 위해 존재하면서도, 돈의 권력이나 '분별할 수 없는 증거'라는 핑계 뒤에 숨어 정의를 외면하는 법의 현실.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돕고 보호한다는 시설이, 오히려 그들의 약점을 악용하여 파렴치한 일을 행하고 자신의 이득과 선한 이미지를 챙기는 모습.

심지어는 남의 고통을 은근슬쩍 이야기하며 책임지지도 못할 위로를 던지는 이들과 언론들까지.


정작 피해자 혹은 약자의 위치에서 진심으로 그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인생을 함께할 수 있는 진정한 동반자가 없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갈급하면서도 진실한 누군가의 소망이 도리어 약점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아름답게 보면 소망 가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그런 삶을 살아갈 용기도, 자신도 없는 현실을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피를 흘리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나의 손에도 피를 묻힐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단순한 동정심을 넘어, 문제의 복잡하고도 더러운 현실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의 도덕적, 윤리적 순수성과 개인적 안락함을 지키기보다는, 비난과 오해를 감수하며 예상치 못한 손실과 결과에 대한 책임까지 기꺼이 짊어지며, 피를 흘리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실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겠다는 깊은 용기와 희생, 그리고 진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나마저도, 올바른 방향을 향한 다짐을 하면서도 혹여나 나에게 또 다른 고난이 찾아올까 내심 두려움이 몰려오는 상황이 참 마음이 아프다.

일요일 연재
이전 07화서투름의 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