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삶을 수용하는 태도
나는 사람들의 어설프면서 서툰, 그래서 더 정이 가는 순간이 좋다.
완벽을 강요하는 사회.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가까이서 보다 보면 서투르고 어설픈 면모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모습을 약점 삼아 달려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따뜻하게 감싸주고 함께 채워가며 웃어주는 이들도 있다. 나는 나의 서툰 면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서로의 서투름을 공유하며 격려하는 그런 만남은 잔잔하고 오래 이어진다. 서투름을 공유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살다 보면, 서투름을 솔직하게 내보였음을 후회하게 되는 상황들을 늘 마주한다. 서투름은 종종 ‘약점’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나의 약점을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몰두할 때면, 이를 지적해 주고 고치라며 핀잔을 주는 목소리들이 나를 지배하곤 했다. 결국 서투름을 약점 삼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꾀에 넘어가기 쉬웠다. 어쩌면 나의 약점을 잡아주는 누군가의 조언만 따르면 모든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에 잠시 눈이 멀었던 것 아닐까.
20대 중반, 누군가에게는 아직 어리고 어수룩한 나이일 수 있으나, 나에겐 한계가 찾아왔다. 끝없이 발전하고 성장하고 싶었던 그저 순수하고 열정적이었던 나의 마음 한편에서, 부족하고 서툰 나의 모습에 대한 도움의 손길을 무분별하게 흡수해 오던 나를 마주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나의 약점이 그저 극복의 대상을 넘어 이용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발견한 순간, 나 자신을 향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그때부터 나의 서투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되려 나의 강점이 무엇인지, 나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점검하고 돌아보는 홀로 서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애써 완벽해지려는 마음보다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자는 나 자신을 향한 사과이자 위로의 시간이었다. 힘을 주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를 드러내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나의 서투름을 채워주고 보완해 주는 도움을 주시는 분들과의 건강한 만남들이 생겨났다. 생각보다 세상은 관대했고, 진정성 있는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인간적인 따스함은 살아있었다.
자신의 서투름이 취약점으로 귀결된 것은, 어쩌면 이를 스스로 약점으로 규정했던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 서투름마저 온전히 수용하고 아우를 수 있는 심미안이 존재했더라면, 그 가치는 얼마나 더 고귀했을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완벽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서투름을 있는 그대로의 미학으로 품을 수 있는 시선이, 매 순간 내 안에서 회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