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정성을 향한 의심

by sincerecord

진정성 있는 사람을 찾아 따르고 싶었고,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고자 발버둥 쳐왔다. 하지만 과연 나는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았을까? 나도 나 자신의 마음을 모를 때가 많은데, 누군가가 나를 믿어준 다는 것은 매우 감사하면서도 버거운 일이다. 이 글의 진정성을 인정해 주고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감사하면서도 의문 투성이다.


실제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 매 순간 진정성 있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저 나를 이끌고 주변에게 기대하고 있지는 않나 의심을 해보았다. 과연 무엇을 위한, 어디를 향한 진정성이었을까? 진정성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목표, 결과, 능력, 과정, 행위, 혹은 사람?


기준을 명확히 잡기에는 각자의 기준과 가치관이 매우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강요를 할 수도 없고, 나의 가치관만을 고수하기에도 애매한 영역이다.


좋아하는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김사부가 이상과 현실 가운데 내적으로 갈등하고 있는 강동주라는 제자를 향하여 ‘너는 양심이 아픈 것이 아니라 네 욕심이 아픈 거야’라는 말을 한다. 나의 마음속 찔림을 주던 대사였다. 나는 진정성을 쫓는 것이 아닌, 진정성을 가지지 못한 세상에 대해 대항하고자 하던 욕심이 아픈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들과 같은 진정성 없는 삶을 살지 않겠다며 달려오던 모든 삶의 영역 속 혹여나 나의 과정은 진정성이 상실되고 있지는 않을까?


현실 가운데 내가 걸려 넘어지고 마음 아파하는 것을 돌아보면, 실제 진정성 있게 살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괴로움 혹은 반성보다는 일상 속 자잘한 불합리함과 억울함,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등이 훨씬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큼지막한 삶의 결정과 선택에서는 다양한 고민들 끝 가치관을 따라 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자잘한 순간들 가운데 만들어가는 길이 결국 나의 발자취인데, 그 속에서 나는 과연 매 순간 진정성 있는 사람이었을까?


삶 가운데 다양한 경험, 사람, 상황들을 겪으며 혼란 가운데 나만의 프레임을 세우며 작은 선택들을 해왔다. 그것이 나의 진정성과 기준을 지킬 수 있는 울타리라고 생각하며 내심 프레임을 강화하는 나 자신에 대견하다고 생각한 적도 종종 있다. 하지만 내가 세워둔 틀이 나의 틀을 되려 무너뜨리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상처, 삶의 방식, 문화, 상황이 다른데, 누군가의 사정은 고려도 없이 나만의 프레임 안에서 안전하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다른 이에게는 가시와 같은 존재로 해석될 수 있다. 인정사정없는 독단적인 어른의 길을 갈 수도 있다.


이런 내가 진정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논해도 되는 것일지, 다시금 점검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여전히 고민 중이고, 작은 나의 삶의 순간들을 점검하고 있다.

일단은 나에게 현재 주어진 분량에 맞게, 중심을 따라 작은 일에도 진정성과 진심을 다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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