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족이 함께 찾아온 수업 시간이었다.
한 분의 어머니와 두 따님, 그리고 손녀와 손자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발걸음이 공방을 들렀다. 짙게 배인 담배 향을 스스럼없이 풍기며, 백 원 오십 원 십 원짜리 동전들을 서슴없이 내어주시던 그 모습에, 처음엔 선뜻 마음이 열리지 않는 손님들이었다.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할머니부터 이모, 그리고 엄마까지 모두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내 안에서 안타까움과 아픔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더해 통 손님들이 쉽게 묻지 않는 향수 소분에 대한 질문을 던지셔서, 잠시 다시 당황했다. 그렇게 향을 빚어가는 찰나, 가족 중 첫째 따님이 조용히 휴대폰 번역기를 내밀었다.
동생이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엄마 향을 담아가고 싶대요.
어머니와의 헤어짐을 앞두고, 그녀의 향기를 담기 위해 이 곳까지 함께 걸음 한 것이라 했다.
이별을 앞두고 그리워질 어머니의 향기를 오롯이 담아가려는 그 애틋한 마음에 깊이 공감되었다. 안타까움과 동시에 힘껏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아, 어수선했던 마음을 다듬고 수업에 더욱 정성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러나 평화롭던 수업 중, 어머니와 따님이 다투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블렌딩하던 중 실수로 혼합된 향료를 그만 향료병에 쏟아 부으셨다. 애써 만들어가던 향료들을 모두 버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왔고, 따님은 어머니의 미숙한 행동에 거침없이 질책의 말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저릿했다. 딸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향을 만들어주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여기까지 오신 분인데, 작은 실수 하나로 향을 망쳐버린 듯한 아쉬움과 미안함, 그리고 딸의 격정적인 화를 마주한 속상함까지, 온갖 허탈하고 메마른 감정들이 어머니의 얼굴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 순간, 문득 나를 걱정한다며 건넨 엄마의 말에 오히려 내 깊은 불안이 건드려져 투정을 부리던 나의 모습이 눈앞에 스쳤다. 가깝고 소중한 존재일수록 작은 행동 속에서 기대하는 바가 커지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서로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주고 또 미안해하는 패턴의 연속. 어쩌면 이처럼 미묘한 갈등은 세상의 많은 모녀들이 겪어내는 지극히 흔한 딜레마가 아닐까.
어머니가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간 사이, 남은 딸이 향을 마무리짓고 있었다.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빚어진 이 향수는 맡을 때마다 그 순간의 기억들이 고스란히 떠오를 텐데, 괜찮을까 하는 염려가 스쳤다.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시자, 딸은 남은 한 방울이라도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작은 투정을 부렸다. 그 속에서 울컥 차오르는 감정과 동시에, 이토록 서투르고 투박한 우리들의 사랑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모녀 관계가 겪는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자 동시에 깊은 사랑 때문이기도 한 역설적인 부분이 아닐까.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싶어 변화시키려 애쓰지만, 그 과정에서 필터링 없는 솔직함이 답답함으로 다가오는 그런 관계.
공방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매섭도록 코를 찌르던 담배 냄새는, 그들이 향을 빚어낸 시간들을 지나고 나니, 오히려 서투르면서도 투박한 현실을 꿋꿋이 견뎌온 삶의 투쟁을 담은 향기로 다가왔다.
따님은 향기의 이름을 ‘E TREINTE’로 지어가셨다.
프랑스어로 ‘포옹’, ‘끌어안다’를 의미한다.
무한한 애정과 지지를 주고받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어설프고 서툰 엄마와 나 또한 30년이 넘은 지금도 조심스레 해답을 찾아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