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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Dec 02. 2022

12월, 그리고 벤라팍신

다시 돌아갔다.

12월 1일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약을 먹는다.


결혼하고 나서 바로 약을 끊었더랬다. 다시 그때 그 기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브런치에 있는 내가 쓴 글인데도 읽지를 못하겠다.

어떻게 끊고 어떻게 다시 이어갔더랬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


회사의 덕을 봤다.

회사에서 Private healthcare를 베네핏 중 하나로 제공해주는 덕에, 6개월, 1년이 걸려도 절대 받을 수 없는 Specialist에게 진단을 받고, 다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specialist에게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정말 이번에는 최선을 다하다가 끝내도 끝내고 싶어요.

라는 말을 남기고, Clinical Phychiologist 상담사도 붙여달라고 애원했다.


진료 및 상담을 받은 지 어언 1 달반, 나는 다시 돌아갔다.

다시 약을 먹는다는 그 한심함과 한탄스러움, 결국엔 돈지랄하게 될 수밖에 없는 이 부유병.


PTSD 정도에 가까운 나의 불안증세.

그리고 그걸 야기시킨 나의 새 직장.

그리고 그걸 보고 있노라니, 나는 어쩜 이렇게 게으를까 하는 죄책감.


내 인생은 수미상관으로 돌아가려나, 2022년 12월 나는 왜인지 모르게 데자뷔를 느낀다.


2023년은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함은 이제 노은지 오래다.

내년에도 다르지 않을 테지만.


벌려놓은 나의 인간관계와 내가 혹시 어떻게 될까 옆에서 걱정하는 저인 간을 보자니, 다르지는 않겠으나, 남에게 폐는 끼치지 말자는 생각으로 약을 먹고, 상담을 받고, 일을 한다.


아.


내 인생 첫 반려견 , 그리고 내 가족의 노견이 죽었다.

그리고 내 인생의 절반을 함께 보냈던 나의 노묘도 급작스레 세상을 떴다.

장례식도 못 가고, 비디오로 화장되는 모습을 보는데 그렇게 먹먹할 수가 없었다.


죽음이란 게 많이 왔다. 사람이 죽는 거보다 훨씬 가슴 미어지고 먹먹한 죽음이라는 시커먼 게 왔다.


책상에서 엉엉 울면서도 나는 휴지에 덕지덕지 허옇게 질린 얼굴로 다시 회사일을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약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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