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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Dec 23. 2022

인생의 삼세판.

회사 편.

12월 15일.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삼세판"이라는 이 룰이 얼마나 여실이 틀렸는지를, 한 시간의 저녁 미팅을 통해 탈탈탈 털리고 나서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서 여러 가지의 format으로다가 저기 전지전능하신 그 누군가가 그래도 이 어린양을 보우하사, 경고와 Redflag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이리저리 암시를 내려주었음에도, 나는 어지간히도 삼세판을 믿었나 보다.


세 번째는 뭔가 다를 거라고. 


누군가는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혹은 "별 걸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별것들이 결국에는 나에게, 나. 에. 게 별것이 아닌 것이 되었을 때 그때의 기분을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1인으로서, 엔간히 열심히 무시했던 그 수많은 경고들을 나열해보고자 한다. 


다음번엔 이런 것을 넘기지 않겠노라고, 다음번은 다를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며, 

내가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설마 이렇게 구구절절 써놓고 다시 겪으랴라는 아주아주 낙천적인 생각과 함께.



8월 중순,

아무리 내가 언제든지 입사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입사일정을 처음엔 1주, 그다음엔 2주나 당기더라. 그 이유를 정확히 그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바보같이 나도 내가 정말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이런 머저리.)

그리고 이 이유는 내가 입사하고 1주일, 그것도 잠깐 영국에 놀런온 미국 디자이너와의 점심을 통해 알게 되었다. 


9월 첫째 주,

무려 마지막 라운드 인터뷰에서 나에게 "들어오면 나랑 같이 런던오피스에 있겠구나!" 했던 그 영국 디자이너는 출산 휴가 준비로 가기 전까 지도 내내 얼굴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이건 정말, 아. 젠장 x 됐구나 싶더라.)


회사 contract에 내 이름을 찍고, 2시간 반걸리는 기차를 타고 8시 반에 런던 오피스에 도착했음에도, 그 어느 누구도 나에게 연락이란 것을 해주지 않았다. 결국 9시 10분이 되어서야 느릿느릿 Executive manager라는 애가 나와서 어슬렁어슬렁 회사구경을 시켜주는 게 다였다. 이렇게 캐주얼한 회사인가 싶었다. (이런 머저리!)


회사에 출근한 지 1주일이 다되도록 내 서류상의 Line manager (미국에 있다...)는 나에게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아, 내가 미팅을 잡았다. 보통 매니저가 잡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바빠서 그런가 보다 하며 나는 내가 잡았다, 나중엔 시간 내주어서 감사하다고 까지 하며...(이런 똥머저리)


아무도 대놓고 나에게, 네가 유일한 UK 디자이너야, 혼자 일할 거야.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깨달아가며 말라가는 걸 보고 싶었나 보다. 


10월 중순,

출산휴가 가는 A의 프로젝트를 내가 맡게 되었음에도, 프로젝트 take over 미팅은 고작 2번 이루어졌다. 2번, 딱 2시간. 


10월 말,

왜 그렇게 미루고 미뤘는지 이 인간이 출산휴가를 가고 나서 제대로 프로젝트를 들여다보니 알겠더라. 정말 해놓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팀장들도 알고 있었고, 그냥 출산휴가를 가니까 봐주자는 식으로 일을 했다는 게 결과물로 여실히 보였다. 그 똥물은 내가 다 뒤집어쓴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이 매니저들은 내가 마치 무슨 큰 advantage라도 얻는냥 나에게 그 새치혀들을 놀렸다.


매니저가 3명이다.... 내가 보고해야 하는 애들만 3명이라는 소리다. 미국애, 영국애, 스크럼 마스터... 그런데 다들 얘기가 하나도 안 맞는다. 그렇다는 건 나더러 알아서 맞추라는 소린데, 그걸 곧 이곳대로 듣고 행동하면, 알아서 매니저들인데 잘하겠지, 알아가는 단계니까 괜찮겠지 했다. (이런 돌대가리.)


11월 초,

미국매니저는 영국에서는 6개월의 probation기간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영국매니저가 나중에 미국매니저에게 dm으로 알려주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11월 중순,

리서처가 따로 있었지만, 마켓리서치 경험만 있고, 유저리서치 경험은 전무하다는 걸 입사한 지 4개월 만에 알게 되었다. 마치 자기가 testing을 엄청 많이 해본 것인 마냥 행동했는데, 보고서형태와, 이 인간이 note taking 하는 것만 봐도 딱 답이 나오더라. NNG그룹에서 따온 링크만 5-6개를 복붙 해서 참고하라며 주는데, 참.. 어이가 없었다. 


12월 15일,

미국 매니저가 무려 영국시간 5시 10분에 나에게 미팅 syncup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 미팅은 무려 1 시간 넘게 이루어졌고, 내용의 Bottom line은 내가 지말을 안 듣고, 맘대로 행동했다는 것이었다. 

"이번 주 1주일에만 네가 내 말을 3번을 안 따랐어. 내가 order이 아니라 direction을 내렸다고 해도, 따라야 하는 거 아니니? " 

나는 내가 따랐는지 안 따랐는지도 몰랐다. 나에게는 굉장히 Surprising 한 피드백이었다. 경고도 없이 날아온 화살이었다.

1번째는 내가 해야 하는 유저 테스팅의 내용을 저 매니저가 맘대로 뚝뚝 잘라내었던 적이 있었는데, 프로젝트 자체가 저 매니저가 아니라 영국매니저가 진행하는 것이었다. (굉장히 이해관계가 복잡시럽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있는데 앞에서 다시 Clarification을 하기 위해, 한 10분 정도 어떤 특정내용을 물었는데 그게 맘에 안 들었나 보다. 내가 시간을 낭비했다고 했다... 

2번째, 다른 디자이너와 B라는 프로젝트에 대해서 30분간 캐주얼한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매니저를 통하지 않고, 바로 디자이너와 미팅을 했다며, 너뿐 아니라 다른 디자이너들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한다. 

3번째, 내가 이미 했어야 하는 어떤 task를 안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Did I talk too fast? so you didn't understand?" 

라고 물었다. Did I stutter? 과 맞먹는 급으로 나에게 굉장히 personal 하게 다가왔다.

내가 아시아인이고, 한국인이고, 미국이나 영국에서 오래 살았던 경험도 없고, 영어가 native가 아닌 것도 분명히 알면서도 나에게 저런 언급을 했다는 건, 엔간히 저 인간이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었구나 했다.

1시간이 다되고도 끝나지 않는 미팅에 나는 결국 내 행동이 잘못됐다고 느꼈다면 내가 Apologize 하겠다고 마무리했고, 다시 사악한 마녀에서 평범한 인심 좋은 할머니로 변한 매니저는 Apologize는 필요 없다고 하며 훈훈한척하며 미팅을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바로 1시간 내 꾹 참아왔던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책상에서 목놓아 울었다.


개똥이가 죽었을 때 말고 그런 통곡은 오랜만이었다. 



12월 22일,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아니 따지고 보면 4번째 이긴 한데, 내가 이 보잘것없는 인생에서도, 커리어라고 생각하며 여겨왔던 직장은 지금이 3번째이다. 삼세판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정말 꼼꼼히 보고 내가 정한 룰에 맞는 회사에 들어가자 했것만, 내가 나를 위해서 만든 룰도 틀렸다는 걸 다시 증명한다. 


단지 매니저가 지랄했다고 해서 이 회사는 틀려먹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스스로 자책하기에는 그전부터 고이고이 쌓아온 저 조그마한 Red flags들이 나풀나풀 내 눈앞에서 아직도 날린다. 


X 같은 이 기분을 뒤로하고 크리스마스 겸 나의 긴 휴가를 맞이해야 하는 게 참 기분이 더러웠다. 엄한 annual leave만 날린 느낌이었다. 한 사람의 말과 언행하나가 이렇게 사람을 뒤흔들어 놓을 수도 있구나, 뿌리부터 뒤흔들릴 수 있는 사람이 나는구나라는 것을 이런 사건을 통해서 알게 되니, 더 기분이 비참했다. 


아직도 수행이 멀고 멀어, 흔들리는 자존감과 자아, 그로부터 오는 우울감과 humiliation은 누구에게 말로 글로 설명한다 해도 모자란다. 

내가 모자란 것인가, 그냥 나의 운이 정말 안 좋은 것인가. 


남편회사에서 남편 생일이라며 배달해준 이쁘고 맛있는 컵케익을 보고, 입에 하나 물면서, 나는 정말 운이 뒤지게도 없는 모자란사람인가 보다 생각해 본다.


삼세판도 아니면, 몇 판 일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힘이라도 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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