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Dec 24. 2022

정의, 완벽, 삶

삼위일체?

남편이 돈얘기를 정말 좋아한다. 


현재 돌아가는 주식시장이나, 돈, 예금, 적금, ISA 등을 얘기할 때면 눈이 반짝반짝, 바로 앞에 간식을 두고 할딱거리는 강아지처럼 좋아한다. 


원래 BBC프로그램에 그렇게 둘 다 마음을 쓰지 않음에도 (공짜인 데다가 광고가 없어도 별로 보지 않는다.)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BBC에서 찍은 Industry라는 투자은행 업계이야기를 보겠다고 했다. 


거실에서 뒹굴뒹굴 거리며 자고 있는데, 그 프로그램을 보겠다며 ep1을 틀었다. 멍 때리며 보다가 5분 만에 하염없이 빨려 들어가 10분마다 8시부터 맞춰놓은 알람시계도 이루지 못했던 나의 "벌떡 일어남"을 이 티브이 프로그램이 실현시켰다. 


 여느 프로그램이나 그렇듯이 결국 대략적인 이야기는 갓 대학을 졸업한 5인이 한 유명 인베스트먼트 뱅크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 혹독한 경쟁을 이어가며 (그중에는 누군가가 죽기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이다. 영국판 금융업계 미생이라고 할까.


일련의 에피소드와 그중 등장인물들이 겪는 회사 내의 부조리함, 성희롱, 스트레스, 은근한 야근과 희생 압박등을 살펴보니 내가 부조리했다고 느꼈던 현 회사 내의 모든 것들이 장난으로 느껴졌다. 


물론 자기가 경험한 것을 남의 경험과 비교해가며 객관적인 수치를 들이민다는 것 자체가 웃기지만, 그래도 뭔가 내가 굉장히 어린아이 같았다. 칭얼대고, 온갖 것에 짜증 내는...


도대체 뭘 나는 원하는 걸까? 

밥도, 장난감도, 잠도 아니면...



나이 삼십을 먹고도 아직도 뭔가 내 안에는 유토피아가 살고 있나. 


세상은 부조리 및 불평등, 누군가의 희생과 슬픔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머리로는 다 아는데도, 나는 아직도 이런 세상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고 있다.


한국이라서 그런가 보다 해서 한국을 떠났고,

중국이라서 그런가 보다 해서 중국을 다시 떠나, 다시 시작했다.


업계가 X 같아서 그런가 보다, 해서 업계를 바꿨고, 

내가 기술직이 아니어서 그런가 보다 해, Tool과 기술을 요하는 직업으로 바꿨다. 


한국적임을 항상 요하는 사람들 속에서 못 지내길래, 그런 사람들을 피했고, 

외국말을 유창하게 못해서 그런가 보다 해, Default 값으로 교포다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중국어를 끝내주게 했다. 


중국이 세계 1위의 국가가 아직 아니라서, 결국은 영어이구나 싶어, 다시 영어의 원천지인 영국에서 영국식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사람들을 Mimicking 했는데...


다시 보니, 이렇다 싶어 저러고, 저렇다 싶어 이러면, 다 틀렸다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종이에는 누군가 그어 노은 엑스 자만 가득이다. 너덜너덜한 내 성적표.


그냥 이걸 받아들이고, 내 얼굴을 좀 사회생활에 맞춰 두껍게 만들면 쉬이 끝나는 일을, "아니. 그래도 뭔가 다른 게 있을 거야."라는 허튼 생각을 결국은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정의는 항상 어디에선가 내 앞이던 뒤던 옆이던 실현될 것이고, 그런 세상을 누군가는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왜 아직도 나는 버리지 못하는 걸까. 


가끔 그런 나만의 정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총대를 메다가 결국에는 방패만으로 이용되다 버려질 것을... 나는 경험이라는 것을 내 온몸과 피부로 직접 겪었음에도, 투덜투덜 투덜이 스머프처럼 징징대다 결국 제자리다. 


나라는 사람은 그렇게 완벽하고 정의롭고, 그런가? 


아웃사이더에, 외로움 많이 타는 결국 외강내유도 외유내강도 아닌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삶을 살다 결국 돛없는 배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주제에. 

투덜투덜 징징징, 하루종일 이렇다 저렇다 무슨 투사열사처럼 떠들어대다가 결국에는 막상 상황이 닥치면 잘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럴 거면 정치해!라는 말을 들어도 정치판은 더럽다. 나 같은 게 무슨! 생각질이나 하며 결국 따땃한 방바닥에서 컴퓨터나 들여다보는 게 다인 인생이면서, 나도 참 입만 살았다. 


세상이 내가 원하는 데로 바뀔 수 없으니, 그냥 내가 스스로 자기가 만족하는 삶을 이어나가고 영위하면 되는데, 또 그렇게 살기엔,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아깝다. 그냥 그렇게 길고 얇은 삶을 살기 위해서 그런 과거의 힘들었던 결정들을 내려왔던 게 아닌데, 그래서 약을 먹고, 버티는 게 아닌데. 


남과 다를 바 없는 나 같은 일개 개미가 이 세상에서 뭘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 자신도 사랑은커녕 좋아하지 않고, 내 삶에도 자신(自信)과 만족이 없으면서,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뭘 할 수 있을까. 


딱! 한 번만, 내 기준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그 위인들의 뇌, 감정, 생각을 공유받아보고 싶다. 결정을 내릴 때 도대체 그 사람들은 뭐라고 생각하고 느끼며, 나중엔 결정이라는 것을 내리는지. 


참 단순하게 살고 느끼고 먹기 너무 힘들다.

단일하고 순수한 그런 삶이 나에게 있기나 할까?


크리스마스 휴일에, Business day에도 안하던 생각을 여실히 잘도 한다. 

쉬는 시간이 너무 많아 그런가. 

테라피 선생님 전할말이 너무 많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의 삼세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