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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Sep 25. 2022

무서워, 첫 출근 2

눈만 감고 4시간.

이전에 오은영 박사님께서 말씀하셨던 눈만 감고도 90% 정도의 수면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하셨던 말이 생각나 계속 머리로는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눈만 감고 4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뜨는 해를 바라보며 피곤에 찌든 얼굴로 메이크업을 하고 옷을 입고, 커피를 내렸다. 




런던 오피스를 가기 위해선 전철뿐 아니라 나는 기차를 타야 한다.

21세기에 아직도 회사에 출근을 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야 한다니...


런던에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내 기준에서는 택도 없는 환경의 아파트 월세가 지금 현 아파트의 3배였다. 당장 첫 직장을 구해 월급도 받기 전의 나에게 런던에서 살기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6개월이 지난 2023년이 되어도 말도 안 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징징징징 짜는 것을 듣기 싫었던 대니는 첫날은 내가 래브라도 Guidedog처럼 회사 앞까지 대려다 주겠다고 말했다. 이 착한 제안을 듣자 하니, 나처럼 이렇게 멍청한 인간을 뭘 보고 이 회사는 나를 뽑았을까 싶었다. 차례차례 하자... 그래 남편이라도 있어 이렇게라도 나를 도와준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첫날부터 길 잃을 걱정은 없어 마음이 놓였다.


그 엉망진창인 런던의 튜브 노선과, 헷갈리는 환승, 및 기차역은.... 지옥이다. 


계약서를 쓰기 바로 직전 회사 hybrid 출근 규정이 일주일에 3번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살짝 마음이 상했다. 2번이 래더니 3번이라니... 1일 차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그 차이는 어마 무시했다. 

3일 치의 기차표를 먼저 구해놓으려 검색하고 보니 뭐야... 런던까지 우리 집에서 무려 55파운드나 든다 (왕복). 9만 원이 말이냐, 그것도 하루에?! 


일주일에 2번 출근할 수 있는 Flexi라는 기차표 대비, 일주일에 1번 더 출근하는 것인데도 3번을 출근하게 되면 Monthly 기차표를 구해야 했고 그 가격차이는 32만 원에 달했다. 갑자기 열이 받았다.


급작스레 나의 뇌에선, 이 회사 오퍼를 받기를 잘한 것일까, 의문스러웠고 갑자기 모든 것이 절망이었다.

영국 기차표 값은 정말 사기다.


그래도 내가 오퍼를 받았고, 내가 한다고 했으니, 책임은 지어야겠고, 울며 겨자 먹기로 3일 치를 구하고 드디어 첫 출근날이 되었다.



늦지 않으려  6시 반 기차표를 구해놓고 그거에 맞춰 기차를 타려 5시 15분에 새벽같이 일어나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대학생 때 여름방학 알바로 인천공항 면세점으로 출근했을 당시가 갑자기 떠올랐다. 야근을 하고 나서도, 그다음 날 출근날이 되면 인천공항까지 가는 버스를 악착같이 타야 했는데 타는 시간이 무려 6시 반이었다. 

그때가 언제 적이냐.. 그런데도 이렇게 새록새록하구나.


슈트를 쫙 빼입고, 노트북 가방 및 백팩을 멘 사람들이 기차역에 쫘악.

내 가방도 정말 무겁다 했는데, 그분들이 어깨에 맨 가방을 보니, 저러다 어깨에 골절 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방끈이 슈트 재킷을 지나 어깨를 파먹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출근 베테랑들은 어디서 기차가 세워져 어느 문에서 들어서면 나중에 내릴 때 어떻게 빨리 갈아탈 수 있는지 안다. 그렇게 나는 베테랑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곁에 대니와 함께 줄을 섰고, 다행히도 기차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차가 무슨 종류이던 관계없이, 차만 타면 (기차, 자동차, 전차, 비행기, 버스 등등) 3분 안 에로 곯아떨어지는 나는 곯아떨어져 기차역을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이번엔 눈을 부릅뜨며 자지 말라고 속으로 미친 듯이 되뇌었다. 여기서 자면 너는 끝이라며, 비욘세 최신 집 전집을 들으며 내 뇌를 깨웠다.


I'm that girl부터 Break my soul까지, 가사도 되뇌며, 나는 이렇게 잘 나가는 사람이니, 이런 좌절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말도 속으로 세기며, 열심히 나 자신을 속였다.


You won't break my soul. 


이런 게 과연 먹히나 싶었는데, 비욘세는 다르다. 먹혔다.

강력 추천한다. 




그렇게 8시 반 난생처음 런던에 이렇게 일찍 도착해, 회사 밀집지역을 지나, 내 회사 앞에 도착했다.

회사에 들어가는 카드가 없어 대니와 밖에서 어떻게 들어가지, 어떻게 들어가야 Make a scene을 하지 않으며 있는 둥 없는 둥을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 영 닶이 나올 것 같지 않아, 대니에게 그냥 버리고 가라고 했다.


그냥 모른 체 하며 카드로 찍고 들어가는 사람들의 꽁무니를 따라 같이 들어갈까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chase the tail 하는 수법이 도둑들이 많이 쓰는 것이라 하면 안 된다고 한다. (큰일 날뻔했다.) 


어찌어찌 모두에게 open 돼있던 ground floor에서 카페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 어떻게 위로 올라가냐를 묻다, 그냥 거기서 대기하기로 했다. 


왜 인걸 9시에 만나기로 했던 자밀라라는 사람은 8시 55분이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불안의 불안을 뒤집어쓰고, 필요한자가 먼저 우물을 판다고, 전화를 걸었다, 메일도 보냈다.


안 받네? 답장이 없네?

슬쩍 보니 나와 같이 첫 출근으로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 그래도 나 혼자는 아니겠거니 하며, 불안을 숨기고 대니에게 보고를 때리며 기다렸다.


9시 10분, 사진과 비슷하게 보이는 자밀라라는 사람 발견, 어찌어찌 살짝 뜨꺼운 표정의 자밀라를 만나 회사까지 골인했다. 알고 보니 나와 같이 헤매고 있는 저 1인은 정말 우리 회사에 첫 출근한 나와 같은 신입이었고, 

그렇게 어색한 표정과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우리는 아침 커피를 뽑고 있는 사람들의 곁을 이리저리 비켜 회사 kitchen 구역 테이블에서 멍을 때렸다.


그렇게 30분을 서로 말도 안 되는 어색한 질문을 때리며 있는데, IT Induction을 한다면서 냅다 나에게 Macbook을 던졌다. 


아.. 나는 30년 windows 유저인데. 


이렇게 회사에 들어온 지 체 1시간도 되지 않아, 첫 절망과 격정의 걱정거리를 맛보았다.

정말 그 자리에서 울고 싶은 것을 내 온몸과 마음으로 힘껏 막아내며 비즈니스용 스마일을 지으며 그 2시간짜리 들리지도 않는 IT 교육을 참아냈다. 


아.. 누구라도 나를 좀 살려줬으면...


Macbook을 받았다고 하니 다들 부러워했다. 특히 대니. 자기는 아직도 회사 laptop 기다리고 있는데 너는 벌써 받았다며, macbook pro냐며 너무너무 부럽다고....


그 부럽다는 이야기들이 점점 지칠 즈음, 정말 누 구던 간에 어떤 인간이라도 한번만 더 

부럽다 뭐가 걱정이냐

라는 말을 하며 정말 죽빵을 때릴 참이었다. 


뭘 받는가가 문제인가? 어차피 내 것도 아니고 나중에 잘리거나 퇴사하면 다시 돌려줘야 하는 기기이다. 

윈도 유저한테 맥북 던져놓고 그냥 이거 저거 깔면 된다고 교육하는 회사나, 내 속도 모르고 옆에서 좋겠다고 울부짖는 인간들이나 다 하나같이 터트려버리고 싶은걸 온갖 힘으로 참았다.


분명 sharing office 빌딩이었고 1주일에 3일만 출근하면 되는 회사여서 사람이 이렇게 많을 일이 아닌데, 너무 사람이 정신없이 많았다. Hotdesk 시스템이어서, 책상을 부킹 해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자리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나 다를까 그 주 목요일 (심지어 금요일도 아니고 목요일)에 우리 전 회사 summer 파티가 있단다.

아니 여름 아닌데요 이제 9월 아닙니까? 


그걸로 하나같이 너무 바쁘니, 내가 런던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매니저는 그거 준비하느라 바쁘고, 나를 옆에서 디자인 버디라며 같이 있어줘야 하는 사람도 너무 바빴다.


나 혼자 홀로 멍 때리며 애꿎은 macbook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정말 죽을 맛이었다.

미팅은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데, 사람들은 계속 밀려들어오고, 나를 힐끔힐끔 "쟤는 누구야." 하며 쳐다보는데 정말 그 눈길 하나하나가 나를 베는 느낌이었다. 가시방석이 따로 없고, 아이언 메이든에 갇혀있는 기분이 이런 걸까.


겨우겨우 오전 시간을 지나 점심, 다행히도 겁나게 바빴던 매니저가 시간이 낫는지, 점심을 같이 먹자고 했다 나의 디자인 버디와 함께.... 그렇게 어색한 기운을 뿜 뿜 풍기며, 말도 안 되는 어마 무시한 가격의 참치 포케동을 먹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오후는 또 뭘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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