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Jan 12. 2023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관찰

2023.01.11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당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제, 1:1 영국 매니저와의 미팅에서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다, 매니저가 

"어차피 마음대로 안될 거야. 지금 신경 써봤자야." 

라고 하더라. 회사에서 테스팅을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리쿠르팅을 언제 정도에 해야 할지 물어보는 와중이었다. 그랬는데 웃으면서, 어차피 마음대로 안되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그런 내용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 이런 것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하다.



사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내가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고, 내가 별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집착한다.


돈도 내 맘대로 모이나, 그렇지 않다. 낭비라는 것, 충동구매라는 건 내 인생에 별로 찾아볼 수 없음에도 내 맘대로 모이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내 돈으로 주고산 가기아 에스프레소 머신도, 어느 날은 잘 뽑히다가 어느 날은 구정물이 나온다. 


이런데 뭔가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하려고 했다는 나라는 자신이 살짝 웃긴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는 무엇을 내 맘에 꼭 들게 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없는 내 인생과, 내 마음, 정신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을까? 요가를 매일같이 했더니 갑자기 무슨 선인이라도 된 걸까, 이상한 마음이 든다. 


별일 없는 인생에, 별일 있는 척, 이렇게 매일매일 내 모습과 마음을 관찰하고, 글까지 그걸 형용사, 명사, 동사로 풀어가면서 쓰려니, 이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5시 땡! 하고 일이 끝나면, 당연히 써야 할 것이 넘치고 넘칠 거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와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가고, 심지어 음식도 내 몸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내 마음대로 쓰고 싶은 생각과 사건사고 혹은 감정조차 없다니.


한 달 후면 회사를 이직한 이래로 맞는 최고로 긴 휴가를 맞이한다.


그전까지 얼마나 이리저리 굴려질지는 모르겠으나, 휴가가 한 달 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휴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결국엔 내 휴가도 휴가라는 이름의 그 열흘이라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 척척, 완벽하게 흘러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바로 옆에서 한 달밖에 안 남았다며, 우리 차는 어디서 렌트해야 되지, 호텔은 이미 다 비용 지불했으니까 괜찮아, 아 첫날은 어디서 밥 먹을까 하며 설레어하고 준비하려고 하는 남편에게, 지금은 별로 그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물론 이 대화도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젠틀하게 끝났을 리 없다.

결국에 남편은 너의 감정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며, 삐졌고, 종잡을 수 없는 그런 X이랑 결혼한 네가 아직도 나를 종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웃기다고 버럭 한 나도 서로 씩씩거리며 그렇게 한집 두방에서 침묵을 지켰다.


결국엔, 다시 모여 밥 먹고, 티브이보고, 이야기하고 그럴 것이 100프로이지만...


이러나저러나, 오늘은 내 뱃속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구륵구륵 배고프다고 요동을 치지만, 정말 아무것도 넣어주고 싶지 않다. 


오늘은 참 그런 날이다. 

작가의 이전글 심신의 확정, 관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