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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12. 2023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관찰

2023.01.11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알아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당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제, 1:1 영국 매니저와의 미팅에서 이것저것 프로젝트를 이야기하다, 매니저가 

"어차피 마음대로 안될 거야. 지금 신경 써봤자야." 

라고 하더라. 회사에서 테스팅을 해야 할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리쿠르팅을 언제 정도에 해야 할지 물어보는 와중이었다. 그랬는데 웃으면서, 어차피 마음대로 안되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그런 내용 중에 하나였다.


그렇다, 이런 것뿐 아니라, 내 인생에서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한 대로 된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라도 편하다.



사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내가 가까이 가고 싶은 사람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고, 내가 별로 같이 있고 싶지 않은 사람은 나에게 집착한다.


돈도 내 맘대로 모이나, 그렇지 않다. 낭비라는 것, 충동구매라는 건 내 인생에 별로 찾아볼 수 없음에도 내 맘대로 모이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내 돈으로 주고산 가기아 에스프레소 머신도, 어느 날은 잘 뽑히다가 어느 날은 구정물이 나온다. 


이런데 뭔가 내 인생을 내 맘대로 하려고 했다는 나라는 자신이 살짝 웃긴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나는 무엇을 내 맘에 꼭 들게 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없는 내 인생과, 내 마음, 정신을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을까? 요가를 매일같이 했더니 갑자기 무슨 선인이라도 된 걸까, 이상한 마음이 든다. 


별일 없는 인생에, 별일 있는 척, 이렇게 매일매일 내 모습과 마음을 관찰하고, 글까지 그걸 형용사, 명사, 동사로 풀어가면서 쓰려니, 이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다. 


5시 땡! 하고 일이 끝나면, 당연히 써야 할 것이 넘치고 넘칠 거라고 생각했다. 

일하는 와중에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가고, 심지어 음식도 내 몸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내 마음대로 쓰고 싶은 생각과 사건사고 혹은 감정조차 없다니.


한 달 후면 회사를 이직한 이래로 맞는 최고로 긴 휴가를 맞이한다.


그전까지 얼마나 이리저리 굴려질지는 모르겠으나, 휴가가 한 달 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휴가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다. 결국엔 내 휴가도 휴가라는 이름의 그 열흘이라는 시간도 내 마음대로 척척, 완벽하게 흘러갈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바로 옆에서 한 달밖에 안 남았다며, 우리 차는 어디서 렌트해야 되지, 호텔은 이미 다 비용 지불했으니까 괜찮아, 아 첫날은 어디서 밥 먹을까 하며 설레어하고 준비하려고 하는 남편에게, 지금은 별로 그런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물론 이 대화도 이렇게 무미건조하고 젠틀하게 끝났을 리 없다.

결국에 남편은 너의 감정을 도저히 종잡을 수 없다며, 삐졌고, 종잡을 수 없는 그런 X이랑 결혼한 네가 아직도 나를 종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게 웃기다고 버럭 한 나도 서로 씩씩거리며 그렇게 한집 두방에서 침묵을 지켰다.


결국엔, 다시 모여 밥 먹고, 티브이보고, 이야기하고 그럴 것이 100프로이지만...


이러나저러나, 오늘은 내 뱃속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구륵구륵 배고프다고 요동을 치지만, 정말 아무것도 넣어주고 싶지 않다. 


오늘은 참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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