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2
이것 또한 과거의 경험이 이런 안 좋은 습관과 패턴을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레짐작하고 추측하는 데 선수다. 그냥 한눈에 봐도 딱 알아보겠다며, 사람들의 행동을 짐작하고, 사건의 정황을 추측한다.
사람의 의도를 추측하는 데는 거의 선수급이다. 맞으면 맞다고 옳다구나 하고, 틀리면 틀리는 데로, 틀린 것이 아니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그 무언가 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거의 내가 틀린 적은 없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사람에게 답을 알기 위해 물어보기는 하여도, 답을 듣고 나서도 나는 처음 내가 지레짐작한 데로 그대로 믿는 것에 습관이 들렸다. 참고로 정말 좋지 않은 습관이다.
짐작과 추측은 불안과 우울을 만든다.
나의 수십 년간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이다.
차라리 사람들을 대할 때, 일처럼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도 한다.
내가 현재 포지션에서 하는 일처럼, 항상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묻고, 답하는 대로 믿고, 보고, 느끼고, 그대로 프로젝트에 적용하면 적용하는 데로 객관적으로 바라본다면, 내 인간관계가 이렇게 협소.. 아니지 이렇게도 없었을까?
13살, 초등학교 6학년, 같은 반애 있던 여자친구와 그때 항상 꽂혀있던 만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열심히 이것저것 얘기하던 와중이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그랬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엄마 아빠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집은 동네에서 규모가 꽤 되는 큰 장어구이집을 했다.
그래서 너희 엄마 아빠도 바쁘겠다 뭐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부부싸움에 대한 주제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때당시, 아버지라는 작자가 엄마나 나에게 주야장천 소리 지르고, 욕하는 것도 모자라, 때만 되면 무조건 폭력을 휘두르던 때라,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단 긴장했다. 이렇게 자식과 아내를 때리고 욕하는 건 우리 집 밖에 없을 거라고, 이렇게 불우하게 지내는 집은 우리 집 밖에 없으며, 다른 집은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친구가, "우리 집 엄마아빠는 맨날 싸워. 맨날 소리 지르고 뭐 하고.. 아 짜증 나서 나는 방안에 맨날 있잖아." 정확한 대사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건 기억이 난다.
이때 이 대사를 듣고,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 집처럼 이렇게 개판 오 분 전으로 싸우는 그런 집도 있다고? 부모가 아이들 앞에서 그렇게 대판 싸우는 집이 우리 집만이 아니었구나...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물론 이 아이가 이야기한 부부싸움은, 우리 집의 부부싸움의 계열과는 차원이 달랐다는 것을 나중에야 중학교 때 알게 되었지만, 그때당시 얼마나 놀라고 가슴이 편안하던지.
항상 긴장하고 있던 나의 어깨와 가슴은 그때 조금 펴진 것 같다.
어제 틱톡을 이리저리 살피다, 내가 팔로우하는 미국 금융계에서 디렉터로 일하는 핀란드 Lady의 틱톡하나를 봤다. 이분도 나처럼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가지고 사시는데, 항상 회사에 들어가기 전이나, 회사에 나와서 주차장에서 그렇게 우신다. 그때 말했던 문장 하나가 내 뇌에 꽂혔다.
Life is not supposed to be this mentally difficult, If it is,
do something about it
이 문장 중에서도 가장 착 감겼던 말은 "Supposed to be "
그때까지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인생은 항상 이렇게 힘들고 지치고, 가끔은 그만두고 싶고, 그냥 나만 안 괴롭혔으면 좋겠는 그런 존재였다. 인생이 즐겁고, 행복하고 웃기고, 까르르 하는 그런 현상은 티브이 드라마 영화에서나 가끔 나오는 것이라는 그런 추측과 짐작을 했다.
그런데 나이도 많이 드시고, 항상 옳은 말만 하신다고 했던 이 여사가, not supposed to be라고 하셨다.
만약 그렇게도 힘들게 느껴진다면, 뭔가라도 해야 한다고 하신다.
나도 너무 x 같고 힘들어서 결국 살려고 이런저런 약도 먹고, 세러피도 받고 있지만, 결코 그것이 저기 저 문장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정말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그만두기는 너무 두렵고 무섭고, 그만큼 용감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행복해.라는 말은 귀로 많이 듣고, 눈으로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들리기는 또 처음이었다. 단어 한마디가 그것도 외국어 단어가 이렇게 나의 가슴에 화살을 꽂다니.
남들도 나처럼, 인생은 "힘들어도" 그냥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 이렇게 힘들면 안 된다고 생각할 줄은 몰랐다. 인생의 default 값이 difficult가 아니라 easy일수도 있구나.
이번주 내내 원격으로 정말 "일"만 같이 했던 디자이너들에게 invite를 넣고 coffeechat 하자고 이리 붙잡고 저리 붙잡았다.
그리고 오늘, 팀멤버 중 한 명과 함께 거의 장장 1시간을 떠들었는데, 내가 이 회사의 리더십과 일하는 스타일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추측이 다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1시간 내내.
항상 리더십은 문제가 없고, 회사에는 문제가 없고, 회사와 리더들에게 맞추지 못하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게 나의 강한 추측과 짐작이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결국 미쳐 돌아가나, 이제는 회사에서도 이렇게 맞추지 못하며 살아가는 건가. 나이가 들더니 노망(?)이 낫나 했다.
그런데 이 디자이너도 미국에 있는 얘도! 1년이 다돼 가는 이아이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줄 누가 알았겠나.
너무 놀랬으면서도, 너무 다행이었다.
내가 미친 게 아니라, 리더십과 회사 스타일이 x 같아서. 절이 싫으면 승려가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항상 내 머릿속에 되뇌면서 그렇게 하루하루, 사직서를 가슴에 품는다고 했던가, 그렇게 일했는데.
드디어 저기 5000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멤버들에게, 나 혼자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과 귀로 확실하게 confirm 받았다. 이걸 컨펌까지 받아야 하는 나의 자신/자존감도 문제 이긴 하지만, 항상 언제나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라는 그런 생각도 종종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또다시, 추측은 불안을 낫는다는 좋은 교훈도 쇠로 박아 넣었다 머리에.
엄마 말마따나, 입뒀다 뭐 할까, 이제는 물어야 한다. 묻자 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