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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14. 2023

시간 들이기, 관찰

2023.01.13

최근 들어, 요가, 일기 쓰기, 호흡하기 등등 여러 가지를 하고 있지만, 이외에도 한 가지 더 늘어난 습관이 있다. 시간들이기. 이전보다 시간을 더 들이기.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시작해 볼까. 

아침에 일어나면 일단 누가 보채는 건지 모르겠지만, 미친 듯이 알람부터 끄고, 미간에 늘어난 내 주름만큼 늘어난 스트레스로 아침을 맞이한다. 그리고 아침인지 저녁인지 모를 영국의 아침하늘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욕을 하고, 바로 잠옷을 라운지웨어로 휙 갈아입고, 화장실로 모래시계 장면처럼 분노의 양치질과, 머리빗질을 하고 나온다.


나오고 나면 바로 크림을 집어 들어 휘리릭 얼굴에 때 밀듯이 밀어주고 나면 원격 직작인의 아침 준비는 끝이 난다. 커피는 맛없으면 기분이 잡치니까 정성스레 뺀다. 다행히도 아침은 그래도 먹는다. 모니터로 별로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중요한 메일은 절대 놓치면 안 되니 2개 모니터 앞에서 우적우적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다 다 먹으면 휙 디시워셔에 집어놓고 바로 턱 하니 의자에 앉아 커피 한잔 후루룩 숭늉처럼 들이켜고는 일을 시작한다. 


지금 글로 쓰면서, 이전에 어떻게 지냈는지 생각하고, 다시 그걸 글로보니, 왜인지, 3배속 빨리 감기한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영상에서 뭘 말하는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휙휙휙 지나가는 광고 마냥. 


휙휙휙, 후루룩 빨리빨리, 허겁지겁. 모두 생각해 보면 항상 불안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빨리 먹고 빨리 모니터보고, 빨리 답장하고, 빨리 읽고 빨리 답하고. 누가 빨리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손과 발에 서는 양말과 키보드가 축축하도록 땀을 내면서도 저 "빨리"를 한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불안을 지우려고, 긴장을 숨기려고 더 빨리하고, 더 빨리 움직였다. 언젠가 내 몸도 더 이상 빨리 가 안되어서 느려지면, 느려진다고 다그치고, 너는 병신 아니냐고 욕했다. 


누가 그걸 받아주고 고마워한다고, 나조차도 고마워하지 않는데... 


일단 아침에 일어나기는 싫지만, 좀 더 뭉개기로 했다. 어차피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고, 잠시 뭉갠다고 뭐 크게 달라질 이유가 없다. 

일어나서 내 잠옷도 좀 접어놓고, 이불정리도 한번 툭 해본다. 내 동생의 특기처럼, 칼각을 절대 못하지만, 그래도 구겨져있는 이불보다 쫙 펴져있는 이불이 냄새도 덜나고 뽀송하다.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발에 불붙은 것처럼 차가운 타일을 만지기 전, 실내화를 꼭꼭 왼발 오른발 신는다. 차가운 물에 세수하고 싶지 않으니, 샤워기도 좀 틀어놓고 내가 좋아하는 온도의 물이 나올 때까지 좀 멍 때린다.


그리고 칫솔에 치약을 묻히고, 치약 뚜껑도 꼭꼭 닫아보고, 이빨을 닦는다. 정성스럽게 닦는다. 그런다고 뭐 스케일링을 안 해도 될 정도의 치아로 살아가는 건 아니지만, 밤새 늘어난 입안 박테리아, 그래도 좀 사라지라고 이빨 안쪽도 닦고, 겉면도 닦고 시간을 좀 들인다.


주방으로 가면, 시리얼이나 커피를 내 위장에 부어내기 전에,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섞인 내가 원하는 뜨뜻미지근한 물을 만들고 벌컥벌컥벌컥 마셔본다. 그리고 커피 내리기 시작. 

시리얼을 붓고 우유를 붓고, 요새는 모니터 앞에서 메일을 보며 먹지 않는다. 일단 메일 보는 시간은 내 캘린더에 30분 정도로 이미 잡아놨기 때문이다. 커피가 내려가는 걸 맹하게 보며, 꼭꼭, 시리얼 하나하나 새보기도 하면서, 이 알맹이랑 저 알맹이 섞어서 먹어보기도 하고, 우유를 쫙 빼고 시리얼만 건조하게 먹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혼자 재미있게 먹고, 우유 원샷. 든든하다.


그리고 모니터에 앉아서, 살짝 맹. 좀 때리다가 일을 시작한다. 

이렇게 루틴을 바꾸고도, 항상 시작하는 시간은 같았다. 그전과 다름이 없다. 다른 사람이 답변을 늦게 한다고 나에게 뭐라 하지도 않았고, 일을 못한다고 지적질하지도 않았고, 갑자기 왜 그렇게 느려졌냐는 질문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가끔 집중이 안되면, 핸드폰도 좀 보다가 개인 이메일도 보면서 미디엄에서 글도 좀 읽고. 창문 밖도 그렇게 바라보다가. 내 양말도 다시 고쳐 신고. 뭐 그렇게 좀 더 나에게 시간을 들여본다.


나쁘지 않다. 가슴이 일단 쿵쾅 뛰는 건 많이 없어졌다. 배와 심장을 간질이는 긴장감도 없어졌다. 약도 시간에 맞춰서 척척 먹는다. 항상 뭔가를 빨리빨리 누가 쫓아오듯이 하느라, 항상 약시간이 널뛰어서, 약을 건너뛴 적도 많았는데... 이제 그럴 일은 거의 없다. 


앞으로도 이런 루틴은 바꾸지 않을 작정이다. 

설사, 누가 나에게 뭐라고 한다고 해도, 내 루틴, 내가 나에게 들이는 이 조그마한 시간은 절대 방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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