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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15. 2023

추억이 된 기억, 관찰

2023.01.14

드디어 조지와 크리스가 웨딩선물로 일찍이 2021년 말에 줬던 바우처를 썼다. 


그래서 오랜만에 런던에 놀러 갔다. 


아침 집 주변 날씨가 여전히 우중충해서, 런던도 비가 오거나 우중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우리가 도착했을 때즈음엔 구름만 뭉게뭉게, 해가 나왔다. 


바우처는 커플들이 이용할 수 있는 Shard 전망대 관람권과 고든램지 Savoy 레스토랑에서의 풀코스 이용권이었다. 굳이 돈을 더 써가면서, 그것도 여행도 아니고, 런던에서, 5성급 호텔에서 풀코스를 먹을 일은 나나 대니나 비즈니스 출장이 아니라면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 기특한 선물이 반가웠다.


오랜만에 둘 다, 마이크가 항상 노숙자 같다며 놀려대던 그 모습을 벗고, 때 빼고 광내고, 나는 심지어 눈에 아이라이너도 그리고 그렇게 런던으로 향했다. 


런던에 일하러 가지 않을 때는, 기차의 그 1시간 반, 지하철까지 2시간 가까이되는 그 여행거리는 콧노래가 흥얼거리게 나올 만큼 상쾌하고 좋다. 



레스토랑으로 가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오랜만에 런던 타워브리지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 근처에 오랫동안 구글맛집이라고 수집해 놨던 카페가 있길래 들르기도 했다. 

기분이 좋았다.


카페에서 먹은 크루아상, 오트밀크 카푸치노가 맛 좋아서가 아니고, 2019년 처음으로 대니를 따라왔던 그 런던거리가 카페 가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다. 아, 여기가 거기었구나. 이 길이 그 길이 었구나. 

타워브리지까지의 그 강가를 걸으면서, 우리 여기 좀 그래도 추울 때 와서 사진 찍느라 좀 고생했지, 강바람은 여전히 세구나, 투어리스트들은 여전히 주중인데도 많구나 등등 여러 이야기를 오랜만에 나누었다. 


다른 시간, 다른 날, 다른 상황, 다른 정서, 다른 기분, 다른 옷, 다른 여행의 이유. 다 모든 것이 2019년 그 첫 여행과는 너무도 달랐지만, 그 똑같은 거리를 걷고, 똑같은 나의 사람과, 여전히 똑같이 길거리에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Comfort, 이 기분에 저 단어가 딱이다. 


내가 어떤 것을 기억하고 추억하면서, 이렇게 편안하고, 충만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더듬더듬 기억을 되짚었다. 

엄마와 항상 주말이면 무조건 갔던 영화 관람, 엄마와 무작정 집밖으로 나가 갔던 부산여행... 10살 처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집 앞 주차장에서 날씨 쨍하고 따뜻했던 정오, 바람을 맞으며 달렸던 그 봄. 


세상, 나에게도 추억이라는 기억들이 있었다. 그 추억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 어디에선가 짱 박혀있다. 어느샌가 불쑥 튀어나오다니, 신기하다. 


내 기억들이 다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고 슬프고 우울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감사하고, 앞으로 살날이 그래도 조금은 더 되니, 이런 기억들을 추억에 담을 만큼 있을 나의 이후가 궁금해졌다. 


뜬금없이, 당연히도, 내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기분 좋게 생각하는 게, 지금 먹는 약 때문은 아닐까. 약을 끊게 되면 다시 스멀스멀 이런 생각은 못하게 되는 그런 암막에 뒤덮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30년간 습관처럼 들여왔던 행동이라, 안 할 리가 만무했다.


그래도, 약을 평생 먹더라도, 아니더라도, 현재 이 기분, 좋은 기분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추억하는 이 기분 좋은 편안한 기억들이 약으로 인해서 탄생한 건 아니니까. 


대니와 레스토랑으로 가는 그 길, 길을 이리저리 걸으면서 우리는 런던에서 살면 어떨까? 돈이야 겁나게 깨지겠지만 그래도 할 건 많아서 좀 재미있겠지? 


그런 저런 잡담을 나누면서, 미래를 생각했다.

괜찮은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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