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15
아침에 여느 때와 같이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살짝 다른 아침이었다.
전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굉장히 웃긴 꿈을 꾸었다. 내용은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아침에 일어날 때 이를 앙다문 체 깬 것이 아니라 입을 활짝 웃으면서 깨어났다는 점에서 진짜 웃긴 꿈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나이를 살아내면서 정말 여러 가지 꿈을 꿨는데, 단 한 번도 웃긴 꿈을 꾼 적은 없었다. 그것도 내가 꿈에서 깨서 입을 활짝 웃으며 깨어날 정도의 웃겼던 그런 내용의 꿈이라니.
하다 하다 이제는 웃김 꿈도 꾸는구나. 나중엔 무슨 꿈을 꿀까 참 궁금하다.
오늘은 런던 Lego 샵에서 사 왔던 레고를 만들기로 대니와 약속했다.
둘 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레고를 주섬주섬 집어 들고 둘이 좁디좁은 테이블에 앉아서, 원숭이가 이 잡듯이 몰두하는데 빌딩 하다가도 웃겨서 웃음이 쿡쿡 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레고를 만들고 싶다면서, 아마존을 뒤지더니, 베놈 머리모델을 찾아서 주문을 하더라.
그래서 어라, 그거 좀 재미있겠는데 한마디 했다가, 나도 꼼짝없이 레고 빌딩에 몸을 담게 되었다.
우리의 첫 레고였던 베놈 머리형을 정말 신기하게 하루 만에 뚝딱 해치웠다. 심지어 레고 피스가 550개가 넘는 것이었는데, Divide and Conquer이 먹혔다. 내가 설명서를 보고, 필요한 레고를 모으고 그걸 넘기면 대니가 빌딩 한다. 나중엔 대니가 주섬주섬 모으고 있으면 내가 잽싸게 낚아채서 내가 레고를 빌딩 한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좀 했더니 어느새 우리 눈앞에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 레고, 베놈 얼굴이 떡하니 테이블에 놓여있었다. 베놈의 특유의 구부러진 혀 심지어 레고로 만들 수 있었다.
역시 괜히 LEGO, LEGO 하는 게 아니지 싶었다.
아침에 몸이 으슬으슬 별로 좋지 않았다.
아이코, 벌써 그날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건가 했다. 날짜를 보니 영락없다. 이럴 때는 아침에 햇볕을 맞으며 눈부신 하늘을 보며 일어나도 기분이 X 같다. 원래는 그래야 하는데, 으슬으슬하고, 은근히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머리가 미친 듯이 짜증 나게 간지러운데도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라고 한다...) 아침답지 않게 기운이 넘쳤다. 아침부터 옆에 누워있는 대니에게 장난도 치고 싶었고, 실제로 똥침도 놓으며 장난을 한참 동안 쳤다고...
슬금슬금 침대에서 기어 나와, 침대 살짝 정리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칫솔질을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요즈음 아침에 기분이, 아침부터 새똥 맞은 그런 기분이 아닌 건, 확실히 약을 바꾸고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해서 그런 건가? 약은 그전에도 먹었는데 역시, Chemical 이 몸에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니고 한다더니. 정말 약의 효능은 대단한 거였나.
그래서 다시, 약을 만약에 못 먹으면? 나중에 끊어야 한다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면,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지? 멍 때리면서 그 생각을 하는데 걱정이 스멀스멀 나오다가, 내가 뱉어낸 치약물과 함께 세면대위에서 수돗물과 함께 씻겨 내려갔다.
약을 근 6년을 먹었지만, 네가 언제는 약 먹었다고 기분이 좋아졌던 적이 있냐, 네가 언제는 약 먹으면 더 에너제틱해지고, 굉장히 부지런 떨었던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한다,라고 생각했다.
약을 안 먹을 때는 뭣도 모른 채로 그냥 지랄이었고, 인생이 x 같았고,
약을 먹으면 먹는 대로, 결국 나는 약을 먹어야지만 살아나는 그런 실패자였고,
약을 늘리면 늘리는 대로,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했고,
약을 줄이면 줄이는 대로, 약에 너무 의존했는데, 이게 내 몸에서 없어지면 다시 내 인생이 수렁으로 빠질까 봐 불안에 떨었다.
약을 최대 200mg까지 늘렸는데도, 하루에 슬픔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우울은 항상 내 머리 위에서 비구름처럼 내 머리 위를 떠다녔다.
약이 안되니까, 큰돈 들여서 카운슬러도 받았지만, 그건 그때뿐이고, 언제까지 내가 큰돈 들여가면서 이걸 지속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짜증 났다. 그냥 이런 상태에 항상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병신 같고 미웠다.
옆에 이런 바보 같은 나를 놓고, 때려주고, 밟아주고 어디에 나오지도 못하게 매달아 두고 가둬두고 싶었다.
그래, 그러니까 결국은, 약 때문만은 아닌 거야.
내 인생은 결국 젠가가 아니었다. 차곡차곡 모아지는 레고지.
레고는 웃긴 게, 한 조각이 없다고 해서 그 모형이 아예 빌딩조차 못할 수 없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 새로 만든, 이터니티 스톤이 박힌 아이언맨 손을 만들었는데, 하다 보니, 스톤에 들어갈 레고 한 조각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만들었다. 그냥 그대로 스톤에 가져다 끼웠는데, 끼우니까 또 맞았다.
한 조각이 없어서, 만약 빌딩이 안된다면, 따로 내 눈앞에 경고판이 뜨거나, 경고음이 삐용삐용 울리는 건 아니지만, 이건 아니라고 가는 도중에 알려준다. "아 내가 다른 곳에 잘못 붙였구나, 그래서 이 다른 조각이 안 올라가는 거구나." 스스로 알게 해 준다.
약을 먹기 시작한 이래로 몸이 가벼워졌다.
그래서 조금 더 나의 상태, 감정, 몸을 더 생각할 수 있는 기운이 여유분으로 생겼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자연스럽게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그리고 하는 운동, 모션 모든 것을 더 세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편안할 수 있는 정도의, 그렇지만, 부담까지는 되지 않는, 그래도 내가 상당히 즐길 수 있는 만큼의 루틴이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2주 정도를 풀로 그 루틴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행하고 있다.
루틴이라는 게 사람을 그렇게 덜 불안하게 만든다는 걸 귀로만 들었지, 내가 직접 해보니, 정말 불안장애에 많은 도움이 된다. 적당히 내가 불안해하지 않는 그런 가이드라인을 내가 내 스스로 만드는 것이 루틴이다.
그렇다 보니, 항상 불안에 절어서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보다, 그 에너지로 다른 생각, 다른 감정, 다른 맛도 느낄 수 있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요가에 더 신경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상한 어떤 한 물건이나 음식에 집작 하는 것을 줄였다. 그래서, 설사 그게 없다고 한들 덜 무섭고, 덜 짜증 난다. 이렇게 사이클이 돌아간다.
자신감은 항상, 내가 가진 것, 내가 받은 성적, 내가 입고 있는 이 옷과 화장품, 내 모습, 내 몸무게, 내 업적, 내가 상사에게서 받은 평가, 내가 가족에게서 받은 평가 등등에서 온다고 생각했지, 내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얻은 편안함이 나에게 자신 (自信) 감을 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지 못했다.
오늘도 또 잘 살아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내고, 잘 지내었다.
그걸로 다시 내일을 살 수 있는 자신감과 편안함을 얻는다.
그렇게 짓고 또 짓고, 아직 섣부른 결말이지만, 설사 여기서 한 조각이 좀 빠진다고 해서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날 것 같지는 않은 그런 미묘한 기분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