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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17. 2023

별일 없는 하루, 관찰

2023.01.16

오늘 하루, 정말 별일이 없었다. 


경림 책상 앞, 노트북 앞에서 앉아 관찰일지를 쓰려고 하는데, 정말 너무나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정말로 별난 일, 아니 그냥 일도 없었다. 


16일은 마틴루터 킹 데이라고 해서 미국회사는 다들 쉰다. 미국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우리 회사 런던 오피스는 쉬지는 않지만, 굳이, 미국 디자이너들 다 쉬는데, 나 혼자 나와서 뭐 하지 라는 생각으로, 그러든 말든 그냥 휴가를 내었다.


남은 연차를 다음 해로 넘기지 못하는 회사의 이상한 정책 또한 오늘 연차를 내고 쉬는 것에 일조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되지 않으면 정말 머리가 깨지도록 자는 게 나의 습관이다.


어릴 적에는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도 더 많이 먹는다고, 새나라의 어린이 노래를 부르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모범생이고, 착한 아이이고, 나중에는 성공하는 사람이라, 나의 이런 습관은 못된 습관이었다.


영국에 오기 전까지, 아침에 늦잠을 자서 헐레벌떡 일어나면, 시계를 보고 식은땀을 먼저 흘렸다. 아 씨, X 됐다. 왜 이제야 일어났지, 오늘 하루 정말 망했다는 게 나의 첫 기상 후의 생각이었다.


잠을 많이 자면 "안 좋은" 것으로 치부되어서, 잠이 그냥 원체 많은 나는 항상 안 좋은, 나쁜 아이였다. 학교에서도 잠을 너무 많이 자서 항상 선생님이 잠만보냐고, 판다냐고 놀리기 일쑤였다. 


영국에 와서는, 그냥 잠이 많은 가보지라고 별일 없이 넘기는 대니에게, 어라? 진짜 그런가 혹해서 직장을 나가기 전까지는 아침 10시에 기상했다. 나중엔 너무 늦게 일어나는 거 아니냐고 네가 대학생이냐고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이제 나도 다 큰 어른, 더 이상 식은땀 따위는 흘리지 않는다.


뭐 어때, 아무것도 안 하는데. 그러든 말든. 


일어나면 별일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평생을 살았다. 


고집은 황소고집인데, 또 이상한 것에서 귀가 팔랑 인다. 사람들이 소셜미디어에서 티브이에서,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런 바쁘고 알차고, 보람차고, 스케줄이 꽉꽉 차있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도 부럽고 보기 좋았다.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없는 나의 이 지루한 일상들은, 지루하고 지겨운 걸 넘어서, 짜증과 화를 불러일으켰다. 왜 너는 아무 약속도, 아무 소식도, 아무런 사건사고( 좋은 사건사고여야 한다. ) 없냐, 항상 머릿속에 달고 살았다. 꼭 그래야지만, 이 보잘것없는 인생이라도 인생이라고 사는 것처럼. 


별일, 별난 일이라는 게 없는 것이 얼마나 평탄하고 편안한 일인지 나이가 30이 넘어서야 알고 배웠다. 

드디어 이해한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고, 차 마시고 밥 먹고 브런치 하고 수다 떨고, 

혹은 어떤 일이라도, side job이라도 줄 서있고, 

피티 선생님과 운동 스케줄이 잡혀있는 그런 등등의 스케줄과 아웃도어 활동이 없어도, 

오늘 하루 아프지 않고, 짜증 나고 화나지 않았고, 배 고프거나, 춥지 않았다에 만족한다. 내가 소소하게 짜두었던 나의 루틴을 그래도 끝마쳤다는 것에 잘한다고 칭찬한다. 


이렇게 별일 없이 살아도, 괜찮다는 걸 내 나라 떠나고, 나이 30 넘어, 내 가족도 없는 친구도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알아내었다, 결국. 


내일은 다시 회사에 출근해야 하니 별일이 아예 없지는 않아도, 8-9시간 쭉 내가 할 일 마치고, 내 하루 루틴을 끝마치면 만족한다. 그걸로 족하다. 


아. 내일 1:1 매니저 미팅인데... 내일 뭐라고 해야 할지나 적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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