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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y 11. 2021

묵묵히는 조용히와 다르다

그리고 집착으로가는 길과한끝이지만,다르다.

뜬금없다.

어제부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니시리즈 중에 하나인

샘의 아들 편을 다 끝냈다.


샘의 아들은 굉장히 유명한 살인마라서 항상 알고 지내왔지만,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줄은 몰랐다.


TL;DR

이편은 샘의 아들 사건을 집요하게 들춰낸 한 기자의 일생과 그의 집착을 보여준다.

(아래 약 스포 주의)




Maury의 일생과 그의 업적은 넷플릭스로 하여금 20년이 지나서야 빛을 발했다.

그는 그저 묵묵히 한 사건의 단서와 사람들을 파헤치면서 조용히 그저 한 사이코패스의 살인이라고만 여겨질 수 있는 이 사건을 완전 다른 방면으로 이끌었고, 전 국민이 이 사건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말한다.

그 묵묵함이 집착과 광기로 변했고, 그 집착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고.


그저 그는 그의 차분하고 조용한 진성(真性)과 기자로서의 집요함, 애널리틱, 그리고 묵묵한 성격을 가지고

요란하지 않게 일에 임했을 뿐인데,

어쩌다 저지경까지 갔을까 싶다. 물론 45년이 지난 후에도 그의 업적은 콜드케이스의 살인마를 잡아낸다.


이걸 묵묵함이 내놓은 결과라고 해야 할까,
집착과 광기가 가지고 ,
행운의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묵묵히 하다, 조용히 하다, 집착하다.


이 셋은 정말 이렇게 놓고 보면 아무런 관련성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저 셋은 정말 종이 한 장 차이일수도 있겠다 싶다.


묵묵히 무언가를 한다는 , 조용하게  무언가를 처리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묵묵히"라는  단어에는 많은 에너지가 응축되어있다.


묵묵히 요란스럽게,  내지 않고, 떠들지 않고 뭔갈 지속적으로  에너지와 열정을 가지고 한다는 , 해본 사람이라면, 아니다. 한국에서는 수능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지 않을까 싶다.


묵묵히 하는 사람은 보통 성과를 얻지만,

그냥 조용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성과는커녕 존재감도 없는 경우가 많다.


박 여사의 학생들을 봐도 한눈에,

 학생이 묵묵히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풀고 있는 건지, 그냥 조용히, 잔소리 듣지 않으려, 단어를 쳐다만 보고 있는 건지,   있다.


항상 같은 6 반에 일어나, 정확히 8 반부터 코딩을 시작하는 나의 파트너의 일상도  단어가 정말  어울리지 않나 싶다. 그리고 그는 정확히 1년도 안돼서 Python이라는 언어를 세미 마스터했고, Golang HTML CSS 등을 배웠다. 묵묵히라는 단어가 가지고  성과는 이렇게 대단할 수도 있다.



묵묵함이 광기로 변하는 예는 넷플릭스 말고도,

일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 나의 일상이다.


정확히 말하면 10년 전 과거를 말할 수 있겠다.


동생과 함께 중국에 가서, 중국어를 배우며, 중국 대학에 들어가,

정말 성공하겠다는 간절한 마음과,

정말 운 좋게도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나의 지성이 나를 광기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14, 15살밖에 안되던 동생은,

나의 광기의 아주 쉬운 희생양이 되었다.


중국어를 배울 때, 나는 나처럼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중국어 책을 읽지 못하는, 1시간도 안돼서 책상에 일어나

밖에 나가고 싶어 하고, 한국 아이들과 놀고 싶어 하는 나의 동생의 본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은 나와 달랐다, 많이.

그리고 나는 그걸 알고 있음에도,

나의 "묵묵히 공부하는 게 답이다."라는 잣대에 그 아이의 목을 들이밀었다.


미친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아이에게 미친 듯이 소리 질렀다.


공부 안 하냐고, 내가 이젠 너 통역 나바리까지 해줘야 하냐고
너랑 나랑 같이 시작했는데 왜 너는 이모냥이냐고.



그럴 때마다 나의 사춘기 동생은 나에게 눈물을 보이며, 같이 소리 질러 댔다.


공격적인 아이가 아님에도, 나의 묵묵함이라 칭해진 이름의 광기는,

그 아이를 무척이나 공격적인 남자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우애는 완전한 권태로 타락했다.


아무에게도  아이는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얘기할  없었다.


중국에서 그렇게 놀고 싶어 했던 한국 아이들에게

왕따와 무시 그리고 폭행을 당하고 있음에도,

그 아이는 나의 광기와 엄마의 피로에 짓눌려, 아무에게도 그 슬픔과 절망을 말할 수 없었다.


엄마는 둘째 치고,

같은 나이 RANGE에 있는 누나로서, 보듬어야 했다


뒤늦게 이상한 나라에 와서 이상한 언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그게 잘하고 싶지 않은데도, 누나라는 미친 X에게 폭언을 들으며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


"엄마.. 누나.. 나 그때 그랬었다?.. 어! 완전 그때 힘들었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 삼아 얘기하는 동생에게,

나는 "아 진짜? 헐 대박.. 허허허 허......"라고 하면서,

얼마나 속으로 칼이 찌르는듯한 아픔과, 손발이 축축해지는 느낌을 받아야 했는지......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묵묵히 자기 회사 일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도 하면서 지내고 있는 저 아이를 보면,

아슬아슬해 보이면서도, 마음이 놓인다.


너의 묵묵함은 긍정적인 에너지만 가득하길, 그리고 긍정적인 성과만 가지고 오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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