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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y 18. 2021

진심과 정성은 언제나 간사함을 이길 수 없다.

인간의 간사함이란 정말 무적이다.

오랜만에 느낌이 이상하게 들어, 그냥 갑자기 엄마에게 카톡 페이스톡을 걸었다. (가끔씩 들어맞는 나의 직감은 소름을 돋게 한다...)


항상 그렇듯 엄마는 수업을 하고 계셨지만,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보통 때도 항상 힘들지만 딸로서, 엄마의 "굉장히" 힘든 것과, "그냥" 힘든 것의 차이쯤은 이제 한눈에 보인다.


괜찮지 않겠지만 괜찮냐고 물었다.

역시나 엄마는 괜찮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똑같은 부류의 학생과 그들의 무지하고 막무가내인 혹은, 그것보다 더한 간사함을 장착해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부모들, 학부모들에게 또 할큄을 당했다.


이번엔 뭐 때문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돌아온 레퍼토리는 역시나 같았다.


항상, 세상은 엄마에게 너무 불공평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던간에 스승, 가르치는 이들은 다 그럴 테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생들의 대한 진심과, 가녀린 정성 그리고 학생들이 원하는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한 스승들의 열정은,
항상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간사하고 치사한 이들에 의해 아주 가볍게 뭉개진다.



스승이, 가르치는 선생이 저런 마음과 열정, 에너지를 품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들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게 왜 당연한 건지 묻고 싶다.


그들, 즉 학생들의 학부모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아이조차 스스로 통제하지 못해(혹은 하기 귀찮아), 그리고,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비전으로 이끌지 못해, 학원이라는 곳을 보내고, 선생들에게

"당신이 전문가이니, 내 딸/아들의 미래를 당신에게 모두 일임하리다." 말하고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샌드백보다 너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나의 엄마에게 얹어 놓는다.


왜 자신의 뱃속에서 만들어지고 나와, 자신이 몇십 년 동안 길러놓은 아이를, 자기가 가자는 대로 가지 않는다고, 그걸 다른 이에게 고쳐놓으라고 하다니......

동물이면 훈련하고 채찍질을 해서라도, 반복 똥개 훈련으로 몸속에 각인시켜 놓으면 그만 이것만,

이거는 농장 가축도 아닌데, 어떻게 고쳐놓는담?



저렇게 교양 있게 책임만 전가하면 다행.

아주 막 나가는 부모들은 심지어, 자신의 아이가 말하는 "아주 잘 각색된" 픽션 스토리만 귀에 담아, 그걸 고대로 아주 무지막지한 폭언과 결합시켜 나의 소중한이, 나의 엄마를 학대한다.


전형적인 소공녀 스타일의 내 엄마는,

"괜찮아. 그냥 그러려니 해." 하는 말로 가면을 쓰고 어물쩍 넘겨보려 하지만, 그 뱃속에서 당신의 살과 피로 만들어진 나라는 딸은, 먼 타지에서도 그 10인치도 안 되는 핸드폰 화면에서도 당신의 곪고 곯은 상처가 보인다.


가끔 가야 한번 나오는 스승의 은혜를 아는 아이들이 다행히도, 아주 가끔 엄마의 숨통을 가끔씩 넓혀준다.

그 아이들이 가지고 오는 좋은 소식과, 얼마 안 되는 도넛 하나가 엄마의 이맛 주름을 조금씩 옅게 만든다.


결국에는 또 이런 일이 일어나겠지,

이번에는 얼마나 갈까.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승마장의 말도, 어미 말이 망아지에게 태어나 뛰는 법, 먹이를 먹는 법,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조련사가 채찍질해도 뛰지 않는다, 먹이를 입에 갖다 대도 먹지 않는다.

우리 세상의 인간도, 어미가 세상에 나와 인간답게 가르침을 받고, 세상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선생과 스승이 얼굴에 배움을 갖다 대어도, 그게 100억 자리 교훈이어도 얼굴을 돌리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먼저 집에서 인간을 만든 뒤에 다른 이에게 도움을 요청하시라,
기본적인 인간도 안된 아이들을 감히 타인에게, 특히 남의 엄마에게 들이밀지 말라고, 그런 간사한 생각은 애초에 접어두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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