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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Sep 16. 2021

3 사이즈나 큰 내 반지

그렇게 내골든리트리버와약혼을 했다.

정말이지 휴가가 필요했다.


우리 둘 다.
특히 나의 파트너는 1년 반을 넘게 주말에도 쉬지 않고 현재 비즈니스를 일궈냈다.


그리고 아직도 영국과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백신을 맞네마네 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다.

그리고 우리는 가까운 Bath로 여행을 떠나기로 충동적으로 정했다.


역시. 영국은 락다운이고 뭐고.. 백 신접 종률이 90 퍼에 달하니, 다들 어쩜 그리 싸돌아다니시나,

Bath의 호텔은 비쌌다.



Bath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그전달부터 이미 한국에 가면 약혼 비자를 어떻게 받네, 어떻게 신청하네 마네를 논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인 문제에 푹 빠져, 남들이 논하는 낭만 따위는 없었다.


특히 나는,

남들이 정해놓은 결혼제도라는 것에 이미 어릴 적부터 신물이 나있었기 때문에,

내가 결혼을, 약혼을 할지 말지도 몰랐고,

웨딩드레스에 스드메 따위는 내 머릿속에 없었다.


그런 걸 생각하기엔, 

그냥 사치였다. 그리고 나는 그 사치가 그리 달갑지 않다.
차라리 부동산 투자를 해 렌트비 받으며 풀타임 없이도 사는 삶이 나에게는 사치라고 하겠다.


논적 없이 정말 공부하고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Feat CL), 어째 계속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반복적으로 받게 되면, 어쩔 수 없다.

저런 웨딩, 결혼, 약혼, 프러포즈, Lovey dovey 한 것 즈음은 그냥 가볍게 뒤로 재낄 수 있는 시니컬함이 생긴다.


나이 30에, 나는 자리 잡는다는 게 뭔지 모른다 아직도, 다시 뭔가를 바닥부터 시작한다는 느낌만 익숙하게 내 몸속에 자리 잡아있다. 

"적응력 하나는 끝내주네."라는 소리를 괜히 듣는 게 아니다. 근데 웃기게도 저 소리가 그리고 마냥 좋진 않다.



그런 나에게 부슬비에 옷 젖듯이 뭔가 스윽 나에게 다가왔다.


Dan.


정말이지, 백인에게 무의식적으로 당했던 희롱의 기억이 있어, 백인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내보내는 그 어떤, 반자 동적인 Friendly 함, 활기참이 너무 싫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뭐든 것이 쉽고 재밌을까 쟤네는?이라고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마주칠 때마다 Coffee 한잔?이라고 주문처럼 읊어대는 Dan의 친절함이 싫어

"Raincheck!"

이라고 주문처럼 나도 대꾸해줬다.


쟤는 아니다, 저 아이는 아니다가 갑자기 어느 날, 얘야? 얘인 거였어?로 바뀌었다.

신기했다.



Dan 이 옆에 있으면 그렇게 가슴이 평온했다.

공황을 한참 겪고 있을 당시, 이 인간 옆에만 있으면 그 온전함과, 평온함 덕에,

그 그지 같은 회사에서 1년을 더 견뎠다.


그 대신 드라마에서나 보일법한 "내 뱃속에 나비 있다."  느낌이란 건 없었다. 그 대신,

그냥 고요한 바다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가끔 파도도 개같이 몰아치지만..)


얘 옆에선 잠을 정말 잘 잤다.

차 안이던 방에 있던 항상 잘 잤다.

한창 공황이 정점에 달 했을 때에는, 술이 없이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인간 옆에서는 골아 떨어졌다.


곰같이 생긴 인간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유튜브에서 곰같이 생긴, 이 인간의 턱수염과 똑같은 털색을 가지고 있는 골든 레트리버를 보다가,

아.. 이 자식, 이거 골든 리트리버 아냐?라고 생각했다.


그 유튜브 속 골든리트리버는 Emotional Support dog이라는 이름으로 주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간질이나 발작을 이르킬때마다 항상 옆에서 가만히 있어주었다.


얘도 그런가 싶었다.



영국으로 함께 오고 나서는 한집에 24/7 붙어있었다. 근 2년을 그렇게 있었다.


물론 개짜증 나는 순간순간들도 있었으나, 한 번도

"아 이러다가 쫑나겠다."
"헤어져야겠다."

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굉장히 진귀한 경험이었다.


사랑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

감정이 밥 먹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 인간을 통해서 나는, 온전함과 평온함이 가져다줄 수 있는 행복함을 깨달았고,

그 온전함을 통해서 나는 새로운 커리어를 쌓을 시작의 디딤돌을 만들었고,

그게 내 밥줄이 되었다.


서로 매일 붙어먹으며, 자기야 사랑하는 하지 않아도,

한방에 붙어있으면서 시시콜콜 모든 걸 얘기하지 않아도,

서로 10m 떨어져 있는 그 거리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일을 열심히 찾아갔고,

그 일이 잘될 수 있도록 서로를 암묵적으로 서포트해주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을,

코비드가 미친 듯이 몰아쳐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패닉상황에도,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경제적 상황 덕에 부모 곁에 붙어살아도,

돈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받아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곁에서 토닥였다.



Bath는 굉장히 정서적이고, 교육적(?)인 도시였다.

Roman Bath라는 곳부터 시작해서 대학교도 굉장히 컸고,

여하튼 역사의 산 곳(?)이라고 해도 모자랄 수 없는 그런 웅장함을 가지고 있었는데,

또 공원이라는 곳은 그렇게 아기자기, 이쁠 수 없었다.


밥을 여실이 다 먹고, 우리는 산책하며 호텔까지 걸어가자 해서

공원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원래 이 레트리버가 가고 싶었던 공원이 있었다. 그런데 5pm이면 문을 닫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재빨리 구글맵을 찾아, 다른 스산한 공원을 찾아들어가더니,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며 벤치에 좀 앉아가자고 했다.


나는 겁나게 걱정되는 마음으로, 그래그래 저기 저기 

노인네 한 분 모시는 마음으로 벤치에 앉았다.


그렇게 주절주절 떠들다.

갑자기,


"Will you marry me? " 하며 지갑에서 반지를 슝 꺼내더라...


반지는 내가 이전부터,

 다이아는 죽어도 안 한다! 그 미친 큰 돌덩이를 내손에 얹을 순 없다. 싫다.

라고 하곤, 구글에서 대충 "이런 에메랄드, 보라색이면 차겠다." 했더니, 고대로 그걸 가지고 왔다.


이 인간.. 대단하다.

그래서 내가 "Yes!"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순간 헉! 너무 놀라서, 눈물이 핑 돌았으나,

그 눈물은 다시 쏙 들어갔다. 그만큼 감동은 아니었다. 허허


다시 현실로 돌아가,

너 미쳤냐고 잔소리했다.


그 말도 안 되는 반쪽짜리 지갑에다가 이 큰 반지를 그냥 그대로 넣어 댕기다가, 구멍에 빠져 잊어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냐고.. 돌았냐고 했다.


그래도 내심, 안 들키려고 이렇게 저렇게 숨겨오려 애쓴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니,

그렇게 웃기고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약혼을 끝냈다.


당연스레, Dan의 어머니는 우셨고,

우리 엄마는 축하해! 하며 울지는 않으셨다.


그다음 날 우리는 비자 에이젼시를 물색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타임라인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 중이다.


그리고 3 사이즈나 커서 도저히 끼고 다닐 수 없는 반지는

현재 고대로 US로 보내져, RESIZING 되고 있는 중이다.


약혼은 약혼일 뿐,

국제결혼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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