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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Aug 15. 2021

이곳은 내가뼈 묻을 곳이아니다.

그러니 너무 깊게생각 말자.

이전 직장에서의 굉장히 트라우마틱한 경험 때문인지...


나는 회사 내 인간관계와 바디랭귀지, 표정, 말투, 메시지 내용 등에 굉장히 민감해졌다.

원래 이러지 않았다?라고 하면 좀 잘못된 표현이고, 이렇게 까지 민감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벌써 2달 차에 접어든 신생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나는 또다시 Working anxiety 및 인간관계의 딜레마를 겪었다.


인간이란, 사회적 동물로서 참 피곤한 인생들이다......



첫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 몸에 익을 무렵, 새로운 1인 기업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다른 디자이너와 함께, 클라이언트 미팅부터 시작해서 리서치 등등을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다른 디자이너와는 무려 12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그는 캐나다에서 원래 몸담고 있었으나, 개인 가족 사정으로 잠시 본인 아시아에 있는 고향에 갔다가, 그놈에 판다새끼 덕에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어차피 큰 프로젝트도 아니고, 저로 미팅을 줄줄이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니, 가볍게 크게 생각하지 않고 임했다.


시차가 가장 큰 문제일 줄 알았건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물론 그 문제는 나 혼자만 느끼는 문제였을 것이다...



원래 나는 피드백에 굉장한 애정결핍과도 같은 요구를 원하는 타입이다.


이전 회사생활의 트라우마 덕인지,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그게 메시지던, 프로젝트이던, 프레젠테이션이던,

좋다 나쁘다, 이건 패스 등의 피드백이 없으면 답답하고 굉장히 힘에 부치는 타입이다.

그냥 조용히 스윽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이 못된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가 한 일의 대한 피드백을 요하는 태도가 많은데,

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일했을 때 엄청난 부정적인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건....

이 남자 디자이너와 일한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래 이분은 경력자이시니까.."
"그래 프로젝트도 많이 해봤으니까..."

에서,

아주 빠르게

"뭐야.. 니 혼자 다하냐? "
"나.. 너랑 같이 일하는 건 맞는 거니..."

으로 훅 바뀌었다. 


항상 자고 일어나면 훅훅 바뀌어있는 나의 디자인과, 그리고 그가 말도 없이, 피드백도 없이 제멋대로 널브러 놓은 스크린들을 보고 있자니...

네가 경력자인 건 알겠는데, 말은 좀 해주고 하면 안 되니...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

워워 그만! 다른 이에게 물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멘토에게 SOS를 신청했다.



멘토의 말은 굉장히 잔잔하면서도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기나긴 30분간의 대화에서 내가 느낀 요점은;


- 모든 디자이너가 그런 경험이 있다.

- 그런 사람은 원래가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라 네가 바꿀 수 없다.

- 일에 지장을 많이 준다면, 무조건 매니저에게 언 지를 해야 한다.

- 너도 인정받고 피드백을 받고 싶겠지만, 가끔은... 그냥 조용히 너 할 일만 끝내며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 조용히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래서 나의 식대로 해석해보자면,

"매니저에게 보고하고, 일을 해결하던지." 아니면 "그냥 입 다물고 조용히 일하던지."였다.


그리고 나는,  3걸음 상황에서 물러나, 후자를 택했다.




나도 나의 결정에 대해 놀랐다.

나는 거의 이전 회사에서 ceo와 쌈닭 수준으로 3년을 일했다. 

그리고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总理(장군.. 총리.. 즈음?)으로 부르며, 총대를 매게 하는 경우도 아주 자주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기주장이 강했고, 인간관계는 흔적도 없이 조용하면서, 일에는 아주 깡깡 거리는 소리가 큰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런 후자의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대에는 갑자기 나이 30이 돼서 마음이 푸근해져서가 아니라,

갑자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잘못한 것 같아서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보며 떠오른 한 문장,


"내가 여기서 뼈를 묻을 건가?"

의 문장이 내 머리를 쳤다. 


이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다시 쌓기 시작했고, 금세 목표가 생겼다.
디자이너로서 실전 경력을 쌓은 후에, 영국에 굉장히 크고 유명한 디자인 에이젼시에 에 이직하는 것.

이미 후보도 다 뽑아놓고, jd도 다 정리해놓았다.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니, 나의 목표는 갑자기 안중에도 없었다. 참 간사하다.


결국에는 또 그 말도 안 되는 인간관계, 동료관계, 선후배, 상사 관계라는 좁고 좁은 시야에 빠져, 다시 감정의 기복에 허우적 대는 모습을 알아차렸다.

알아차린 것 만도 어디냐... 다행이다.


그래서 내 눈앞에 씐, 말 안대와도 같은 커버를 벗어재꼇다.

그리고 내 눈앞에 놓인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해결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곳에서 터졌다.


같은 팀임에도, 이 프로젝트를 하는 사람은 디자이너로서 나뿐인데도, 나에게는 아무런 notice도 주지 않고 내가 그냥 졸졸졸 쫒았다니며, 시시콜콜 캐물어야 뭔가를 하나 딱 내주던 인간이.


갑자기 좋은 피드백과, 여러 답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당장 이 Phase에서 무슨 스크린을 더 보강하고, 디자인해야 할지 모르겠어, 혹시 가이드라인이 있다면 알려줘 내가 바로 할 수 있어."라고 하는 글에도 그냥  Thumbs up 이모지만 띡 보내는 인간이었는데......


파트너에게 이 상황을 얘기하니, 

"엥. 바로답나 오네... 네가 상사한테도 tag 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라고 했다.


피드백이 달린 글을 다시 보니, 그렇다. 내가 우리 팀 상사의 이름도 함께 태그 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클라이언트와 직접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고 하는 건 우리 상사 말고는 아무도 없기 때문에, 클라이언트에게 서류나 자료, 이미지가 날아오면, 그걸 가장 먼저 보고 분석하는 게 상사였기에, 

새로 디자인한 스크린은 어쩔 수 없이 상사에게 피드백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지못해 단것이었는데......

그게 해답이었나, 뭐 이렇게 쉬워.

하면서도,

와 이얍삽한 인간.... 


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서 그랬을 수도 있고, 뭐 하던 일이 잘돼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개인 사정이니까, 그런데 시기가 참 너무 오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하튼, 잠시 잠깐 동안이라도 뭔가 해결책이라는 게 어처구니없이 나오고 나니, 뭔가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갑자기 내 눈에 씐 환상의 콩깍지가 버려졌다.


여기도 영락없는 사회생활이지.

이 업계라고 뭐 다르겠어 싶었다.

너무 환상에 싸여있던 나였나 싶었고, 마음속에,
"어차피 여기서 뼈 묻을 것 아니다."를 새기고 다시 일에 몰두하기로 했다.


내가 20년 넘게 꿈꿔왔던 커리어이다.

이것 만큼은 환상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지만,

나이 30, 이제는 환상보다는 현실을 빨리 자각하는 게 답이었다.

그리고 다시 next le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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