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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an 01. 2022

십자수와 2022

한 땀 한 땀 장인의 정신으로, 

영국의 크나큰 명절인 크리스마스 홀리데이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이렇게 12월 31일이 되었고, 2021년을 뒤로하고 2022를 다시 맞이 할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이전 같았으면, 

아이런, 이번 년에 뭐했지, 뭐 한 것도 없는데 그냥 시간이 지나갔네 할 것이었지만, 굉장히 나름 열심히 살았는지 이렇다 저렇다 언급할 것이 참 많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내 얼굴보다 훨씬 큰 십자수를 놓고 있다.

매일매일 시간 나거나, 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거나, 혹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면 어김없이 바늘을 들고 자수를 둔다.


한 땀 한 땀 장인도 아니것만은, 장인의 정신으로 템플릿을 채워가면, 이상한 생각들은 저어기 뒤로 가고, 생각이라는 것이 없어진다.


2021의 한 해는 세계적으로 최악이었던 2020년보다는 그래도 낳겠지 하는 생각과, 그걸 가열하게 깨부수어준 현실과 함께했던 나날들이었다.

물론 나에게 별다른 타격이나 엄청난 피해는 없었으나, 2021년은 그래도 2020년보다는 조금 더 여유로운 새 보금자리와 마음으로 나의 부족함을 파헤치고 채워가는 시간이었다.


십자수를 처음 놓을 때 가장 짜증 나는 부분이 바늘에 그 2가닥의 십자수 실을 끼워 넣는 일이다. 

손은 떨리지, 눈은 침침하지, 실은 곧바로 서지 않고, 아무리 열심히 침을 발라 재껴도 그놈의 실은 항상 이리저리 바늘구멍을 피해 다닌다. 

그러다 갑자기, 곧장 수욱 구멍으로 들어가, 드디어 십자수를 꿰는 그 기분이란.


내가 디자이너로서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몇천 마일 떨어져 있는 이 직장도 그렇게 어느새 바늘구멍에 실넣듯이 시도하고 시도하다 들어간 곳이었다. 


아 이제 되었다 해서, 열심히 꿰기 시작했는데 웬걸, 

대학교 들어가면 대학 들어왔으니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정말 뒤통수를 가열하게 치듯이, OFFER을 받았다고, 수락했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았다.


수를 이쁘게 놓으려고 했던 나의 초심은 어느샌가 훅 사라지고, 어떻게든 실이 꼬이지 않게 구멍에라도 잘 들어가 정상의 십자가 모양을 만들려고 했던 나의 노력들이 아직도 수루 룩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거진 한 3달간은 실이 꼬이고 또 그걸 풀고, 풀고 나서 다시 꼬이고, 잘못된 구멍에 넣고 하기를 왠간히 반복한 것 같다. 


이게 맞긴 맞는데 왜 이렇게 이상하게 꼬이지 왜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어디서 내가 잘못 시작해 이게 이렇게 꼬이고, 뭉쳐버린 걸까를 찾기를 거의 매분 매초 매일 한 것 같다.


그러다가 지금 반년이 넘게 지나간 이 시점, 나는 그 한 땀 한 땀보다는 자수 템플릿의 전체적인 부분을 보면서 여기까진 얼마나 걸릴까 어떤 모습이 나올까를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연륜이라고 말하는 그것이 쌓여가는 걸까.

 

연륜이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어지간히도 아직도 실은 꼬이고, 뭉치고, 다른 구멍에 들어가 그걸 어떻게 다시 빼낼까 등등을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가 과감히 실도 잘라버린다. 그리고 뭉친 부분은 어쩔 수 없다 하며, 그냥 버려버리는 과감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저 모든 잘못이 내가 바보라서 내가 머리가 안 좋아서, 성격이 지랄 맞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하다, 어느새, 나는

그래 이게 내 잘못만이겠냐, 그냥 그런가 보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겠지
이 십자수가 싸구려여서 그럴 수 있어..

하는 여유로움이 살짝 생겼다.



어렵게 찾은 나의 평온과 안정이기에, 나는 더 집요하게 더 나은 방법과 길을 찾아내려고 한다.

십자수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실을 낭비하지 않고, 알뜰하게 쓸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대니쉬 방법도 써보고, 잉글리시 방법도 써보다, 이제는 둘을 섞어서 즉흥적으로 방향도 바꿔보며 열심히 자수를 채워 넣고 있다.


나는 1월 새해 목표, 계획 따위 믿는 사람이 아니다.

그 계획 달력에 표시하고, 다이어리를 비싼 돈 주 고사서 채워 넣어도, 채 3장이 안 넘어가기 때문이지.


내가 만들고 내가 세운 커리어 덕에 사는 맛도 조금 생긴 지금 이 시점,

주섬주섬 주변 다이어리에 글을 채워볼까 한다.


내년엔 런던에서 풀타임을 잡아야지

그리고 런던에서 살 테다

일단..

결혼식부터 잘 마치고.

아... 살부터 빼야 하는구나.


그리고 포폴도....

하하 많다.




2022 크리스마스엔 오늘과 같은 마음이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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