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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Feb 10. 2022

2022년 잠시 잠깐 터치 베이스

터치 베이스, Touchbase

벌써 2월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그렇다 2월이다.


뭔가 정신이 없이 지나간 것 같다가도, 

찬찬히 돌아보면 뭔가 결과물이랄 게 계속 달려있다.



1월에는 새해의 분위기를 만끽할 여유도 없이 결혼 준비에 미친 듯이 바빴다.

주말에는 집 밖에 절대 나가지 말자 주의인데, 

어쩌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결혼 준비로 나가게 되었다.


영국은 뭐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웬만한 곳은 차 타고 30분 이상..

아니지 40분은 걸린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결혼식 Venue를 잡았는데, 그러다 보니, 결혼 준비 벤더들도 그 근처... (40분을 더 가야 되는 것도 근처라고 할 수 있을까...) 


차 타고 갔다 오면 바로 기름이 떨어져 있고,

계속해서 슈퍼 가서 기름 채우고, 다시 돌아다니고, 다시 이메일로 확인하기를 1달 내내.

그러다가 29일을 마지막으로,

케이터링 테이스팅을 마지막으로,


우리의 결혼 준비를 마쳤다.

결혼은 역시 그냥 등기로 마무리하는 게 정말 지혜로운 선택인 것 같다.



한국과는 굉장히 다르게, 영국은 혼인신고와 결혼식에 굉장히 진심이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주례란 것은 부부 공표란 것은 그냥 아무나 하면 되는 줄 알았건만,

여기는 동사무소 같은 곳, Register Office에 가서 돈 주고 등기해야 한다.


이 돈도 몇 만 원이 아니고, 몇십만 원이 깨지기 때문에, 결혼에 신중해야 한다.

이 돈이 다 어디로 갈까 궁금했지만, 그냥 귀찮아 얼렁 나와버렸다.


등기 사무소 가서 혼인해요 하고 신고를 마치는 한국과는 다르게,

무조건 Notice라는 걸 줘야 한다.


이건 굉장히 고리타분한 영국의 전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노티스 28일 동안의 기간 안에 이 결혼에 반대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표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흘러왔다.

굉장히 귀찮다....


이런 것까지 전통으로 가지고 가야 할 이유가 있나.

6g까지 나오는 21세기에.. 하하하


게다가 우리가 하는 결혼식날 주례 혼인 공표를 정식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우리는 결혼을 2번 한다. 1번은 혼인신고 겸 Register Office에서 2번째는 정식 결혼 Venue에서 드레스 입고 한다.


생각하다 보니,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으나,

다 기억에 남을 나만의 추억과 나의 후대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꾸욱 참고, 즐기기로 했다.


그렇게 1월을 마쳐보았다.



다행히도 나는 아직까지 현 회사에서 잘리지 않고 열심히 다니고 있다. 하하

아니 그들이 자를 수 없다는 것이 더 맞는 대답이겠다.


하지만 그 다행도 잠시, 갑작스레 우리 팀의 리더가 그만둔다고 슬랙에 쳐버리고 나가버렸다.

그녀는 이미 번아웃에 찌들어있는 상황이라는 걸 나는 컴퓨터 저 스크린 너머에서도 느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모를 COO의 살짝 웃기는 방향성에, 나는 당장 하고 있는 작업과, 앞으로 매일 7시간 동안 해야 하는 작업의 목표와 시간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개발자들은 계속해서 들어오는데, 디자이너는 눈에 보일까 말까 한 이 회사의 구조와, 슬랙을 쳐서 혹은 메일을 보내면 1주일 내내 답변이 돌아오지 않는 이 미친듯한 생산성을 한탄하고 짜증이 나 한 소리할까 하는 그 와중에, 

구세주라고 할 수 있는 시니어급이 드디어 들어왔다.


개발자에는 돈을 아낌없이 쓰는 우리 coo님은 디자인팀에는 들일 돈이 없는지, 풀타임도 아닌 컨트랙트 시니어를 둘씩이나 모시고, 우리에게 알아서 나눠 써먹어라는 식으로 틱 던져버리곤, 사라졌다.


COO는 더 이상 나의 슬랙에 답변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들어온 시니어는 우리가 해왔던 Chaotic 한 일을 저 뒤로 미뤄두고, 우리 다시 한번 천천히 0부터 시작해보자며, 우리가 해왔던 결과물과 파일, Role들을 싹 다 뒤집어놨다.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시작이었다.


얼렁뚱땅 우리가 해왔던 연구와 디자인, 모든 일은 잘못되진 않았으나 "방향성"이 잘못되었다는 굉장히 유레카적인 답변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의 스크린들은 Graveyard에 들어갔다.

(굉장히 알아채지 못할 얼렁뚱땅의 스킬이었다. 앞으로 나도 시니어가 되면 이런 식으로 일해야 하는 건가.)


그 덕에 나는 어쩌다 Researcher 가 되었고, 그렇게 잘 굴러가나 싶더니,

또다시 갑작스러운 통화 한통에, UX designer/researcher 가 되었다. 내가 연구한 내용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 네가 디자인해라 였다.


그렇게 이전 디자이너가 나에게 남긴 "What is going on now?"의 챗을 의뭉스럽게, 시니어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아 하고 넘기곤, 나는 바로 디자인에 돌입했다.



자기는 풀타임이 아니라는 걸 열심히 팍팍 티 내는 우리 시니어는 2번의 재 스케줄 끝에 드디어 나와 면담을 했다, 일명 Monthly Touchbase. 

제목을 보아하니, 한 달에 한번 할 모양이다. 일종의 퍼포먼스 리뷰와 같은 것인데. 내가 잘한 것과 못한 것을 나열해, 최대한 알아듣도록 설명하고 이해하는 시간이다.


나는 내가 해온 일에 굉장히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부담감은 없었으나, 오히려, 내가 이 회사에 굉장히 품어왔던 음흉 다크 한 의견들을 어떻게 하면 거북하지 않고, 내가 잘리지 않게 풀어낼까를 미팅 1분 전까지 고민했다.


여느 미팅과 같이 굉장히 good news로 시작해 나의 대한 Cons를 늘어놓는 것으로 그리고, 마지막 화룡점정은, 너의 샐러리를 올려주겠다 였다.


나는 알고 보니 이 회사에 손에 꼽을 만한 Logical Thinker, UX er이었으나, 워낙에 하는 말과 슬랙에 쳐내는 문장들이 직설적이다 보니, 나에게 Annoyance를 품고 있는 시니어들이 꽤 되었나 보다.


그래서 시니어는 이에 대한 해답으로;

앞으론 이모티콘도 붙여서 보내는 게 어때? 잡담도 좀 섞어서 하고..

라는 굉장히 명쾌하고 신속한 해답을 나에게 넘기곤 또 사라졌다.


그렇게 내 터치 베이스는 마무리되었다.



99가지의 좋은 점은 저 뒤로 한 채 (나답다.) 나는 그 1 가지에 목을 매었다.

누가 나에게 그런 짜증을 품었을까? A일까? 뭐 상관없다 그 인간도 굉장히 짜증 나는 인물이니까. 
B인가? 그렇다면 그 인간 완전 개 포커페이스였네?


한참을 그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나는 앞으로 이모티콘을 붙여보내는 것으로 소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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