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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May 26. 2022

엄마의 은퇴

당신의 추진력, 그리고 행복을 찬양합니다.

엄마가 은퇴를 한다고 선언했다.


솔직히 은퇴를 할 거라고 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은퇴 '하고 싶다고'라고 말한 게 1달 전. 갑자기 며칠 전, 은퇴 '할 거라고'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나는, 전달만 받았다, 아니 통보를 받았다고 하는 게 맞다.


갑자기 이런 얘기 전화로 해서 미안한데, 나 은퇴하려고.
이미 집도 내놨고, 제주로 갈 거야. 내일 제주도 가서 집봐.


아니 이런 추진력을 보았나. 내 인생 이렇게 30년을 살아왔지만, 이렇게 한다고 하고 바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후다닥 하는 사람은 엄마가 처음이다. 하지만 또, 이게 처음은 아니다.

이제 이 정도면 엄마의 이력서에 특기와 장점을 "추진력 및 행동력"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누가 상장이라도 날라야 될 판이다.




엄마는 지옥 같은 20년 생활에서 벗어나, 우리를 데리고 한국이 아닌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내 길을 찾겠다고 했고, 동생 또한 동지와 같은 기분으로 나와는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었다.


그 길을 걸을 때 옆에 딱 달라붙어 우리가 비틀거리지 않도록 후들후들하더라고 다리 딱 붙잡고 걷게 만든 사람이 엄마다. 중국에서 말 한마디 못하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시고 국제학교, SKY대를 보내셨다.


그렇게 내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셨나, 어느새 갑자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 철창 같은 인간은 없지만, 누구 하나 손 내밀어준 사람 하나 없는 그 지옥 같은 한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도 딱 이랬다. 

"간다" 하고 갔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요 며칠 엄마의 상태가 별로이긴 했다. 항상 그렇고 그런 비정상적인 학부모와, 싹 수노란 학생들의 반항 그리고 무시. 그 마지막 무시가 엄마를 이렇게 좋게 만들 줄이야. 고맙다 xx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는 한창 사춘기라는 이름 아래 타인에게 폭행을 가하는 그런 학생들을 앞에 두고 후덜 거리는 다리와 몸을 거두고 쓴 눈물을 삼키며 열심히 수업을 가르치고, 아이들의 성적을 올렸다. 그런 수고와 노력에도 여전히 학생들과 여러 무식한 학부모는 우리 엄마가 돈 주고 부리는 아랫것인 것 마냥 굴었고, 마지막의 그 사건사고가 엄마의 하나남은 끈을 가열하게 잘라버렸다.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 신경질 부리듯 책가방에 책을 싸고, 학생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엄마에게 무시 가득한 말을 하고, (썅욕 하는 애들도 있는데, 이 정도면 양반이라고 해야 하나.) 그것도 모자라, 내가 좋아 오는 줄 아냐, 다신 안 온다 하고 무슨 삼류 불륜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치고는 그냥 나가버렸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학부모들은 전화에 불이 나게 전화 해대며, "선생님 아니면 받아줄 곳이 없어요. 애가 반항기가 심해서 그렇지 착해요."라는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를 하며 박 여사를 호구로 만드려 했지만. 


그렇게 넘어가기엔 엄마도 사람이다.




제주도에 간다고 하셨다. 제주도... 항상 그렇게 꿈꾸던 제주도를 가신다. 

제주도에 딱 한번 가족여행이라고 갔는데, 나는 1도 좋은 기억이 없어서 거기서 살고 싶을까 했건만, 엄마는 내 것보다 그릇이 컸다. 제주가 그냥 좋다고 한다.


집을 벌써 가계약하고, 가구도 보고 다 이미 살림을 한껏 차리고 오셨다. 

이렇게 기똥찬 엄마를 보았나.


부동산에서부터 청소업체, 심지어 아파트 관리인들까지 하나같이 부려대던 텃세와 일종의 사기에도 우리 엄마는 웃으면서 나한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학생들, 학부모들한테 치여 죽을 만큼 힘들고 슬퍼도 이렇게 조잘조잘 풀어 노으며 이야기를 늘어놓던 사람이 아니다. 항상 답답하게 말 안 하면 안 했지.


그런데 그런 엄마가 웃기다며, 너무 신기하다며, 웃는다.

아직 엄마에게 돈 백 턱 내가며 엄마 생활비는 내가 책임질 테니 맘껏 살아!라고 하지 못하는 이 집에 장녀 같지 않은 장녀는 그저 그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다행이다. 


얼렁 인터뷰 끝내고, 오퍼 받아내야지.

그래야지.

나도 엄마처럼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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