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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un 09. 2022

목적이 필요한, 나의 멘털 일지 8

벌써 6월이고, 아직도 살아갈 목적이 하루하루 필요하다.

05.30


오늘부터 쭉 1주일을 놀기로 했다. 물론 겁나 힘들게 마음껏 노는 것은 아니다 벌써 다음 주에 인터뷰만 2개가 연달아 잡혀있기 때문에, 프레젠테이션 준비도 해야 하고, 돼도 안 되는 농담을 영어로 해야 하니, 이것저것 준비해야 한다. 


이제 구 남자 친구 신분을 보내고, 현 남편이 되신 나의 파트너가 직장을 좋게 잡는 바람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미국을 가게 되었다. 시카고라니. 그렇다 칸예 웨스트가 태어나고 자라난 그곳으로 간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내 인생 블루프린트는 물론이고, 위시리스트, 버켓 리스트에서도 한 번도 이름을 올려본 적 없는 도시, 시카고. 이곳을 이렇게 생각 없이 누가 보내준다고 해서 불쑥 가게 되다니. 더 폼나게,



"아. 그냥 너무 심심하고 심심해서 아무 곳이나 집었는데, 어라. 거기가 시카고네? 그래서 왔어."

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나. 


그건 아니고, 정말이지 엄청난 운으로, 이 자식이 들어간 그 시기에 항상 회사 hq인 시카고에서 전체적으로 미팅을 모여서 한다고 한다. 게다가 이번에 새 사무실에 새 Trading exchange를 열어 겸사겸사 부른다나 뭐라나. 나야 공짜로 여행 보내주면 좋다고 덩실덩실. 생각 안 하고 무조건 간다고 했다.

좋다, 이렇게 생각 안 하고 그냥 (동사)하는 삶.



06.03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의 지금 현 상황을 뭐라고 형용해야 할까.

백수는 아닌데, 뭔가 놀고 있고, 그것도 풀타임으로. 파트너는 열심히 나가서 돈 벌어(?) 오는데, 미팅 가고 사무실에 가고 사람들 만나고 등등 사회생활을 할 때 나는 늦으막이 일어나서 시카고의 햇빛을 내리쬐며, 무려 5시간을 내내 걸었다.


이건 무슨 생활이지, Fulltime housewife라고 하기엔 그들의 삶을 너무 무시하고 졸렬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그렇다고 백수라고 하기엔, 나는 시카고 도착한 지 2일째 되는 무려 아침 9시에, 멘토와 미팅을 잡고 다음 주에 있을 인터뷰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했다.


뭘 하던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며, 아무도 막지 않고, 아무도 관여하거나 참견하지 않는데......

나는 어째된것인지, 하루를 영국에서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다. 


Google맵 켜고, 가고 싶은 곳을 마킹해놓고, 가고 싶은 곳을 Add stop으로 잡아놓고, 여기는 1번째로 가고, 여기는 두 번째 3시간 정도 있다가 여기에서 점심 먹고, 안되면 plan b로. 


이렇게 바쁘다. 

먹고 싸고, 자고, 쉬고, 마시고, 그리고 다시 돈 쓰고. 이것밖에 하는 게 없는데도 바쁘다. 차라리 파트너가 훨씬 여유롭게 다니는 것 같다. 


노는 것도 빡빡하다. 나란 인간



06.06


내 인생,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제트 레그를 지금 격하게 겪고 있다. 

오늘 새벽 1시에 도착해짐 풀자마자 누웠는데 2시였다. 그리고 바로 잔다고 잔 건데 아침에 일어나려 보니,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난생 정말 2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출퇴근해야 하는 직장인의 느낌을 다시 몸소 체험했다.


 아, 이게 이렇게 진절머리 나게 싫을 일이냐. 


도저히 이대로는 걸어서 카운슬러 선생님께 못 갈 것 같아 시간을 바꾸고, 오늘은 Online으로 하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다. 된다고 하셨으나, 역시나...... 선생님께 뭔가 꾸중 아닌 꾸중을 들었다. 다음에는 1주일 전에 바꾸자고. 잘못했습니다. 선생님.


이틀 후면 마지막 인터뷰가 시작된다.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내가 떨어지면 이 회사가 이상한 거다 라는 마음가짐과 자신감으로 열심히 준비하고는 있으나. 너무 불편하다, 최근 들어 찾아온 이런 조막만 한 행운들이.


인생은 등가교환. 플러스가 있으면 마이너스가 있다. 적어도 내 인생은 그랬다.

요즈음 열심히 플러스가 계속 생기고 있는데, 아 언제 그에 상응하는 마이너스가 나에게 닥칠지 두렵다. 


기껏 좋게 여행도 갑작스레 갔다 오고, 파트너는 새 직장 끝내주는 곳을 잡아 잘 자리 잡고 있고, 나는 파이널 인터뷰만 남았는데... 이 상응하는 마이너스가 제발 내 인터뷰는 아니길, 나의 취업에 영향을 주지는 않길 후들후들 거리며 빌고 또 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열심히 150점 맞게 준비하는 것 밖에는 없다만,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섭고, 잃을 게 있으니 그에 맞는 절망이 올 거라는 것에 더 마음이 좋지 않다.


젠장. 


선생님은 내가 크리스털 볼을 가져서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도대체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냐고 되물으셨다.


나는 미래를 볼 수는 없지만, 지난 30년 인생의 경험으로 알 수 있다고 했다 곧 뭔가 닥칠 것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나와 카운슬링을 하고, 약을 먹고, 몇 시간씩 여행 가서도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것 아니냐며, 다시 물으셨다. 이렇게 생각하는 지금 이 행동이 왜 생겼을지 무슨 경험으로 어떤 경험에서 나온 건지 한번 잘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뭐긴 뭐야, 결국 과거지 뭐.


다시 과거로 또 가는 건가 싶다가도, 현재 내가 그 과거로 다시 가지 않으려고 돈 내고 카운슬링받고, 여행시간을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쓰고, 파트너와 열심히 돈문제 마음문제, 생각 문제, 미래문제를 얘기하며 피 터지게 싸우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기분이, 이 생각이 이번에는 하루를 넘게 갔으면 좋겠다.

이번엔 하루를 좀 넘겨보자. 

지친다 지쳐.



06.09


창피하다. 쪽팔리다. 내가 대단한 인간이었다고 느꼈던 지난 2주간이 너무 천진난만했다. 


어제 오전에 몸이 너무나 무거웠다. 아침에 웬만하면 그래도 9시에는 일어나는데, 세상 1시가 다되도록 일어나지를 못했다. 두꺼운 겨울이불을 잘못해 세탁기에 돌리고는 축 젖어버려 아무리 건조기에 돌리고 돌려도 아무런 건조함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습관처럼 핸드폰을 봤다. 밤새 mute로 인해서 오지 않았던 알람들의 목록이 수두룩. 그중에서 내가 지원했던 굉장히 큰 회사 중 하나였던 Workday의 이메일이 다시 와있었다. 


왜지, 어제 분명 다시 파이널 인터뷰 시간 날짜 다 잡아놓고 컨펌까지 했는데...... 불안한 느낌. 이러려고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다.


안타깝게도 지원했던 직종의 레벨이 갑작스레 Lead급으로 바뀌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경력으로는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 


파이널 인터뷰를 보기까지 근 2주에 걸쳐서 Hr과 전화 인터뷰, 매니저와 1시간가량의 비디오 인터뷰, 프레젠테이션 발표를 거쳐, 다른 Stakeholder인터뷰까지 왔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 리람.


혹시 그럴 릴은 없지만, 나와 다른 Candidate를 헷갈렸나 해, 다시 되물었다. 방금 2시간 전에 인터뷰 날짜랑 시간 다시 재 스케줄 잡았는데, 이 이메일과 인터뷰 확정 이메일 어떤 걸 믿어야 되냐고. 나는 당연 후자를 믿고 싶었지만, 가열하게 나의 지푸라기를 뜯어버렸다. 


순간 너무 화나는 것도 화나지만, 갑자기 내가 너무 창피하고 쪽팔렸다. 그렇게 파트너와 가족들에게 파이널 간다 이것만 패스면 내가 파트너보다 더 많이 번다! 하고 떵떵거렸는데..... 징크스 걸릴까 두려워 입 밖으로 내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속으로는 내가 안되면 이상한 거다, 이렇게까지 준비했는데, 안되면 이상하지 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다 무의미. 홧김에 HR 담당자에게 그럼 나 두 번째 매니저 인터뷰 피드백 달라고, 피드백이라도 달라고 했다. 그래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She left feedback; She enjoyed the session with me,  you presented your knowledge around the design process honestly, that you were humble when speaking about your experience and knowledge gaps.


솔직함 그리고 겸손함. 그래 내가 바라던 바다. 

그래 이거면 됐지 뭐. We move on.


그래도 글라스 도어에 인터뷰 리뷰는 달아야지. 갑자기 인터뷰를 취소하더라고.

뭐 나도 솔직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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