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Jun 08. 2022

어둠에서 빛으로.

빚 말고 빛으로. 

누군가 나에게 성인 adhd 아니냐고 물으면, 나는 차마 아니라고 대답 못한다.

요새 온갖 생각이 정말 이리저리 내 뇌 속에 퍼져있는데, 뭘 어떻게 어디서부터 정리하고 들어가야 되는지 모르겠다. 힘들다. 


이렇게 적어내지 않으면 다음에 까먹는다. 뭐 얼마나 나이가 들었다고 이렇게 뭘 기억해내는 게 힘든지.


파트너 따라 출장을 오게 되었다. 

미국 시카고에 hq가 크게 있는 이 인간의 직장은, 그렇게 아주 관대하게도 내가 법적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에게도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었다.

이렇게 감격스러울 때가. 감사하다.


시카고에 오전 점심 즈음 떨어졌다, 시카고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흘러나오는 습기 내음, 그리고 그 텁텁한 날씨. 나는 즉각, 내가 무려 11년간을 살았던 상하이를 떠올렸다. 시카고랑 상하이, 서쪽에서 동쩍, 서양과 동양, 인간들의 때깔도 다 다르다만, 이 분위기와 이 냄새만은 서로가 너무 닮았더랬다.


아, 상하이 상하이 상하이, 트위스트 춤을 추면서,


괜히 애증 가득했던, 살아남기 위했던 그 시절.




뭔가 뒤떨어져도 한-참 뒤떨어지는 것 같은 이 오래되고 쾌쾌한 분위기의 시카고의 공항. 한국 여권으로 Fast track이나 전자여권으로 딱 찍고 들어가는 Auto Immigration을 안 하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었다. 뭐야, 미국 국적이고, 영국이고, 중국이고 뭐든 간에 다들 뱀이 똬리를 튼 것 마냥 똬리를 줄줄줄줄. 그리고 그 앞에서 로봇처럼 여행객들을 맞이하는 Immigration officers. 


창구가 무려 10개 이상, 그런데 거기에서 우리에게 도장을 찍어주는 이 관리자들은 이미 얼굴이 맛이 갔다. 뭐 때문에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어지간이 맛이 갔다. 다들 화가 가득하다, 불이 막 뿜어져 나온다. 입에서 눈에서 몸에서. 다음, 다음 그리고 우리 차례.


난생처음으로 single로 들어갔던 이미그레이션을 이제는 한 가족으로 같이, 내 파트너와 들어갔다. 왠간히 어색하다. 우리 앞에 투명 벽 막 뒤로 계시는 이 officer, 오늘 집에서 싸우고 나왔는지, 아니면 상사가 갈궜는지, 배가 고팠는데 로테이션을 돌아줄 동료가 없었는지 알턱이 없는 사연을 가지고 있으신 이 분은 우리가 오자마자,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난리가 났다.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는 목소리와 발음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관문) 지문을 찍으라고 했다. 파트너가 쉬이 지문을 다 찍자마자, 내 차례가 되었는데, 어지간히 매일매일 건조한 나의 손과, 어릴 적 아토피로 인해서 갈라져있는 나의 손가락들로 인해 또! 지문인식 기계가 말을 안 듣는다.


나는 아하하 미안하다며, 손이 너무 건조하네? 어색한 웃음을 지며, 넘어가려 했으나, 이 인간은 머리를 뒤로 넘기고 가열한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뭘 웃어데냐는 눈빛으로 나를 쏘는데...... 


아. 왜 그 와중에 상하이 이미그레이션에, 상하이 사람들이 생각나는지. 


한국보다도 더 좋은 기억과, 더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상하이였지만, 너무 애달프고 어지간히 힘들었던 기억도 많았던 상하이. 

꼭, 그렇게 좋은 기억보다 안 좋았던 기억만 그렇게 누가 내 뇌에서 편집해놓은 것 마냥 속속들이 우울하고 어두운 기억만 난다. 이 간사한 뇌를 가지고 있는 인간.




팬데믹이 벌어지기 2년 전. 

나는 벌써 맛이 가기 시작했다. 머리, 몸, 뇌, 마음, 그리고 얼굴. 거의 이 순서로 점점 건전지가 다한 것처럼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밤에 술을 마시지 않으면 절대 잘 수 없는, 울지 않고서는 잘 수 없는, 내일 회사 갈까 봐 덜덜 떨면서 (어차피 가야 하는데...) 자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정말 x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술주정을 하면서 엄마에게 전화하고 동생이랑 술 마시고 동생한테 푸념 놓고, 엄마한테 나 죽는다고 한지 2년. 그렇게 나는, 이렇게 살다가 지금 죽나 내일 죽나 아무런 상관없으니, 오늘 하루만 견디자 견디자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상하이는 쨍-했는데, 나는 죽었다.


항상 불안, 항상 공황, 항상 누가 나를 쫓아오고, 누가 나를 그렇게도 꿈속에서 잡았다. 

매일 악몽을 꾸지 않으려, 꿈조차 꿀 수 없는 정도로 술에 취해야 살 수 있었다. 그렇게 잘 자고 일어나, 딱 1분. 열심히 걷고 걸어 지하철 바로 역 앞에서 파는 상하이 별미, 煎饼과 豆浆을 먹으려고, 그거 내 뱃속에 넣으려고 회사에 갔다. 돈을 벌었다.

"내년엔 뭐하지, 내후년에는?
그냥 이렇게 살다 보면 답이 나오려나, 아님 그냥 끝이려나." 


정말 아무런 노후계획이나, 자기 계발 혹 그냥 인생계획도 없이 아침 6시 반에 일어나, 회사가 끝나는 6시까지 그 열두 시간 남짓을 견디려고 하루를 살았다. 어두웠다, 정말 왠 간한 햇빛으로는 내 어두움을 비춰낼 수 없다.


누가 나에게 말 거는 게 그렇게 싫고, 무서웠다. 회사 사람들, 이곳에서 갇혀, 장장 8시간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얼굴 보고 얘기하는 사람들... 어차피 나를 벌써 몇 년이나 알고 지낸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한테 아침에 인사를 해야 할지,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상인 얼굴로 아침인사를 하면 그 사람들이 반길까 싶어 우물쭈물. 그놈의 우물쭈물 때문에, 괜스레 뭔 일 있냐고 오해나 받고......


점심에는 괜히 밥다먹고 커피 마시면서 산책하면서 이것저것 물을까 봐, 누구 뒷담, 상사 뒷담, 누구 가십거리 시답지 않은 소리 늘어놓을까, 아니면 내가 주절주절 신세한탄을 할까 봐 사람들과 같이 밥을 먹기 싫었다. 


상하이가 또 사람들이 혼자 밥 먹는다고 눈치 주고 그런 도시는 아니라, 오히려 그걸 장려하는 곳이라, 그거 하나는 정말 정말 너무 좋았다. 밥을 시켜서 오피스에서 혼자 먹던, 아니면 일하다가 잠깐 나가서 국수 한 사발 때리고 들어오나, 아님 미팅하느라 술 한잔 때리고 오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어줍지 않게 잔소리하지 않은 그 분위기 때문에 그나마 살지 않았나 싶다.


정말 막판에는, 아 이렇게 정말 가끔 얼굴에 비즈니스용 가면 한 번씩 씌어주고 혼자 불운을 곰인형 안듯이 감싸 안고 혼자 죽겠다 싶었는데. 팬데믹이 날 살렸다.


팬데믹처럼 이렇게 지독한 독감의 병균에, 질병도 없겠만, 이게 나를 어찌어찌 살렸다. 그냥 갑자기 확.

옛다 지금이 기회야, 줄 때 잡아

하듯이, 세상을 멈춰주었다. 


세상 검은색이었던 나는, 아 이렇게 그냥 세상이 멸망하면 되겠다 했건만, 그걸 옆에서 내 파트너가 어느새 잡았다. 물론, 어느 인간들이나 그렇듯,  영국에서 나고 자라, 불과 5년 전까지는 피시 앤 칩스 아니면, 햄버거 아니면 절대 아무 음식도 손에 대지 않던 이 자식이 백 프로 항상 나를 위하고 이해하고 다니는 그런 부처는 절대 아니다. 이 자식도 교육이 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미친 듯이 자기 생각에 사로 잡혀 여전히 나를 이해 못 한다는 눈빛으로 가끔 쳐다본다.

그때 느끼는 외로움이란,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그 순간을 넘기고, 넘기게 애써주고, 넘기게 나를 받쳐주는 이 자식의 노력과 사랑도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더 살려고 했다.


세 살 버릇이 어딜 가나. 

우울함도, 우울증도 다 습관으로 번진다, 습관이란 건 정말 들기 무섭게 때기가 무진장 어렵다. 날씨 한번 오지게 더러운 이 영국 바닥에서, 하루하루 애써, 맞지도 않는 날씨 예보를 보면서 무진장 햇빛을 보려 애썼다. 해가 잠시라도 나오면, 파트너 가족들이 살던 그 집에서 살 적에, 어떻게라도 그거 한번 쐬어보겠다며 뒷마당에서 대자로 뻗어 누웠다. 그러다가도 바람 불고, 여우비가 내리면 그마저도 다시 도루 아미타불.


그러다 어느새 날씨 따위는 상관 않는 영국에 사는 한 인간이 되었다. 해를 봐야지만 살 수 있는 것처럼, 해 안 나오면 해라는 것이 해의 일을 하지 않으면 마치 죽을병이라도 걸린 것 마냥, 그렇게 죽을상으로 살았는데......

오히려 그걸 옆에서 24시간 두고 보고도, 별말 없이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저 인간과 저인 간의 사랑스러운 가족 덕에, 그리고 맘속으로 손과 발이 닳도록 기도할게 뻔한 우리 엄마의 소망 속에 죽을상 대신, 내 얼굴을 찾아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 울컥울컥, 욱한다. 그래서 한껏 터진다. 그러다 보면, 에라 인생이 왜 이러나, 계속 쭉쭉 나가면 얼마나 좋아! 하며 한탄하지만. 30년 남짓 인생,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또 너무 잘 안다. 


가끔 어둠이 몰려와도, 이 구름만 이 그림자만 지나가면, 다음 빛이 온다.

그 빛이 언제 올진 몰라도, 오긴 올 거다. 


오늘도 미적지근하게 비추는 햇빛과, 온난한 날씨에, 창문을 열었다.

갈매기가 또 새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갈매기가 높이 난다. 

내일은 좀 맑을 것 인가보다.





작가의 이전글 인터뷰는 어렵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