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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un 12. 2022

용서, 는 없다.

앞으로도. 내맘대로가 곧 해방이다.

나의 해방 일지에서 가장 감명 깊던 대사 중 하나가, 미정이 구 씨에게 했던 말이다.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내가 서있다 보면 하루하루가 지친다, 그러니 용서(환대)라는 걸 해야 한다 였다.


나는 그게 참 이해가 안 가더라.


왜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내 존재로 증명해야 되지.
그냥 그 사람이 바닥 저질의 형편없음을 그냥 알면 되는데.


그렇게 따지면, 나는 정말 인간으로서도, 남자로서도, 아빠, 어른, 선배로서도 굉장히 형편없는 남자에 생식 작용에서 태어나, 일종의 그 "형편없음"의 DNA를 물려받고 자란 또 하나의 인간이다. 나는 굳이 누군가의 형편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서야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내 존재 자체가 그 인간의 분신 버전의 "형편없음". 인정하기 어려운 팩트.


어릴 적, 엄마나 할머니가 손과 발 그리고 입술 얇은 것까지 아버지랑 닮았다고 할 때마다 몸서리가 쳐지게 싫었다. 내 주변, 특히 나를 보호하는 우리 엄마, 그리고 내 어린 동생, 그리고 그와 같이 일하는 동료까지 얼마나 그를 싫어하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랑 닮았다고? 완전 소름 끼쳤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닮아가는 나의 얼굴과 손 발을 보며, 내가 증오스러웠다. 왜 태어나서는...... 한 사람 인생 망쳐놓으면 됐지 누구 여럿 인생 망칠 일 있나.


한창 내가 초등학교, 중학교 때 장난식으로라면서, 아이들이 친구 생일파티 때, "왜 태어났니 왜 태어났니, 인구도 많은데 왜 태어났니."라는 축하송을 부르고 다닌 적이 있다.


저들은 그게 재밌다고 낄낄 대는데, 나는 너무 와닿는 내용이라, 저게 내 주제곡이구나. 듣고 울어버렸다. 아직도 그 장난 섞인 축하송을 들으면, 기분이 별로다.




나이가 좀 더 들고, 철이 들고, 인생의 일만 가지 중에 한 100가지를 알아갈 즈음, 나에게도 희망이 보였다. 나는 이 사람과는 다른 사람, 나는 경험한 것이 다르고, 엄마가 다르고 형제가 다르다. 그리고 나는 옆에서 문제점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나에 대한 혐오감을 줄여나갔다. 정말 다행이지 뭔가.


조금만 더 갔더라면, 나는 이 세상에 없다.


혐오감이 없어지는 동시에, 생기는 건 간사하게도 증오감이, 그 상대에 대한 증오와 멸시 감이 늘어갔다.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느껴지는 심장박동과, 식은땀 그리고 온몸을 소름 끼치게 하는 저릿함, 그리고 얼음장같이 찬 나의 손발. 정말 지친다. 이게 절대 긍정적인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에너지를 Fuel삼아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장학금 타려 미친 듯이 기숙사에 박혀 안 나가고, 용돈이나 장학금을 받으면 무조건 아끼고 또 아꼈다. 내가 100% 그 사람의 목소리를 안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이 나에게 생색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느새 나는 직장인이 되었고, 혼자 독립해 살며, 손 한번 벌리지 않고 몇 년을 지냈다. 그러다가 터져 나오는 화와 증오를 주체하지 못해, 그 사람이 보낸 이메일 한통에 미친 듯이 저주 가득한 말을 쓰고 또 쓰고, 계속 지우고 또 더 증오스러운 말 없나 찾고 다시 쓰고를 반복, 그렇게 2통의 미친 이메일을 보내고, 인연을 끊었다. 현재까지도, 아버지라는 사람은 내가 결혼한걸 앎에도, 미안하다는 한마디, 축하한다는 한마디 없다. 인스타그램은 어떻게 찾아냈는지, 찾아내서 한다는 소리가 그 마음에도 없는 사랑한다는 그 말.


왜 사랑한다고 하는지 너무 잘 아는 나는. 바로 메시지를 삭제했다.


옛날 옛적에는 정말 아버지가 바뀔 거라고, 나한테 아버지가 될 거라고, 어른이 되어서 나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설마. 나를 버릴까.


시간이 흐르면 상처도 아문다는 말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미어지고, 토할 것 같이 힘들 때에도, 이 아픔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30년을 보내다 보니, 세상에. 나아진다.


잊는다. 그 화와 증오로 보낸 나의 세월을, 그리고 그 소름 끼치는 혐오의 느낌,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덜덜 떨리는 그 느낌. 혐오감도 없어지고, 오히려 무의 세계로 돌아간다. 아예 없었던 사람처럼.


처음에는 나도 딸인지라 안쓰러웠다. 이렇게 까지 살고 싶을까. 이렇게 까지 자식과 연을 끊어지게 하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책임도 안 지려고, 그 미안하다 한마디 안 하려 이렇게 까지 하나. 저 사람도 아버지에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런 걸 거다, 측은해지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변엔 그렇게 많은 고초를 겪고도, 자식을 죽을 만큼 사랑하고, 자식을 위하고, 보호하고, 아끼고, 자식의 졸업식에는 무조건 가야 하고, 생일 축하는 나이가 30이 다 되어서도 꼭 해야 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많았다. 유산하나 내려오는 것 없어도, 자기 자식은 꼭 Seize the day 그거 하나 하게 해 주겠다고 하루 16시간을 꼬박 일하는 사람도 여기 있다. 하루 소시지빵 하나로 버티며 왕복 4시간을 오가며 나를 키워주고 재워준 우리 엄마도 있다.


형편없는 사람.

나는 이렇게 용서라는 건 없는 것처럼 살 것이다.

증오도 혐오도 없다. 멸시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산다.


카운슬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용서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건 본인의 마음이라고


굳이 내가 존재함으로써 당신의 형편없음을 증명하지 않아도, 그냥 당신은 형편없는 아버지예요, 남자예요, 인간이에요. 그렇게 우리 살아요.

저는 이렇게 살게요.


용서는 없다, 없어도 된다.

용서하려 자신을 옭아매지 말자. 그거 없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살아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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