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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Jun 15. 2022

알고 싶지 않은, 나의 멘털 일지 9

나 자신을 왜곡하거나, 양육하는 시간들


06.10


최근 일련의 조그마한 안 좋은 갑자기 충동적으로 나쁜 생각이 들어서, 급하게 카운슬링 선생님께 이메일을 적었다. 이러이러해서 힘들다고. 


몇 주 전부터 선생님이 계속해서 꺼내시는 말씀이 있다.

Nurturing

한국어의 뜻은 보살핌, 양육. 영어로는 care for and protect (someone or something) while they are growing. 나는 뭘 양육하고 보살피고, 잘 자라도록 키워야 하는 거죠? 


꼭 시간을 보내라고 하셨다. 자신을 Nurturing 할 수 있는, Nurture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그런 행동과 시간. 그래서 바로 다음날, 내가 이 동네에서 아니 이 영국이란 나라에서 가장 좋아하고 좋아하는 티 룸에 가서 테라스에 앉아 널찍한 테이블을 나 혼자 차지하고는 티팟에 가득 담긴 얼그레이와 그들이 홈 베이킹한 피낭시에를 먹으며 나를 양육했다. 


이게 양육이라고 하면, 양육이다 싶었다. 편안하고, 무엇인가가 나를 위한다는 그 느낌. 커피는 무조건 Squremiles 로스터리 것만 마시는데, 그걸 보고 여러 다른 이들은 돈지랄 났다고 하겠지만, 하루를 무조건 핸드드립으로 시작하는 나는, 도저히 인스턴트나 테스코 커피 원두로 내 지랄 맞은 하루를 시작할 수 없다. 


이것도 양육이라면 양육이겠지. 

양육하자. 그래. 


그리고 돈 벌어야지 뭐. 

자식새끼 양육하는 것도 아직 시작도 안 했건만, 이렇게 나를 양육하려 돈을 번다, 살아간다. 



06.12


굉장히 이상하게 가계가 돌아가고 있어, 갑자기 통장이 텅 비었다.


갑자기 5월 말즘에야 파트너가 직장을 구했고, 나의 월급은 6월 중순에 오고, 모든 Bill들은 6월 중순에 다 뭉텅이로 빠져나가고, 파트너의 월급은 5월 말까지 포함해서 6월 말에나 나오고... 게다가 거기다 더해 시카고까지 다녀왔고 나는. 여기영-차 엄청 놀았고......


이것 참. 


나쁜 일과 텅 빈 계좌는 항상 한 번에 뭉탱이로 나에게 다가온다.


금방 다시 또 계좌는 채워질 거고, 월급은 들어올 거고, 결국은 직장을 다시 잘 구할 테지만, 그걸 알면서도 느껴지는 굶어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과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다. 



06.13


엄마가 아니라 내가 갱년기다, 나이 30밖에 안된 내가 갱년기야. 


오늘도 어김없이 카운슬링을 오프라인으로 받으러 갔다. 가는 도중에 벌써 뭔가 느낌이 싸헸는데, 따뜻하고 좋은 날씨 때문인 건지 그럭저럭 기분 좋게 넘어갔다.


그리고 사무실에 벨 누르고 들어가는 순간, 한 올 한 올 내가 겹겹이 열심히 싸워냈던 나의 껍데기를 벗고, 나체로 알맹이만 또르르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가 최근 일련의 나쁜 사건들을 들춰내면서, 이러쿵저러쿵, 그러다가 눈에 물이 차오르고 또르르 그렇게 또 울었다. 


이미 그때 그 사건이 일어났을 적에 열심히 다 울어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울게 남았나 보다. 은근히 체력이 좋다.


최근 이 일련의 사건이 내 탓이다, 내 잘못이다, 거의 내 탓이오 내 탓이오를 반복하고 있는 와중에, 선생님이 나에게 준비해온 게 있다며 CBT 세러피 종이를 주셨다.


거기에 나온 10가지 Cognitive distortion 종류를 보고 있는데, 흑백논리, 긍정을 인정하지 않기, 너무 과도한 일반화, 멘털 필터, 독심술, 최악의 상황만 (카타스 트로픽) 생각하기, 뭐든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 등...


뭐 다 비슷해 보이고, 다 나한테 해당되는 내용인데, 여기서 자기에게 맞는 걸 고를 수 있는 사람들도 있나 싶었다. 그리고 ABCDE라고 하는 생각법이 뒤에 표로 나와있었는데, 이건 실제 연습문제로 내가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이었다. 


뭔 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에 대해서 나 자신은 어떻게 생각했으며, 그 생각함과 동시에 무슨 리액션, 감정이 들었는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어떻게 조금 더 현실적이고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이 사건을 생각할지 그리고 나 자신이 이 사건을 어떻게 어떤 식으로 왜곡하고 부풀렸는지를 말하라는 것이었다. 


... ABC까지는 수월했는데, DE는 정말 모르겠다. 

아니 내가 이게 됐으면, 여기 안 오지 않았을까 싶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이감 정은 나에 의해서 왜곡되거나 부풀려지지 않았는데, 이걸 왜곡했다고 가정하고 내가 나 자신을 제삼자의 입장으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건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말을 떼내야 할지 막막했다. 


똑같은 activity를 파트너에게 물었다. 최근에 돈문제로 속이 썩고 있으니 너도 해봐라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금세 ABCDE를 쏜살같이 대답했다. 그리고 DE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헷갈려하는 나를 헷갈려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저 인간은 나랑 아주 다른 인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뭔가 씁쓸한 건 기분 탓인가.


CBD 안 해보면 뭔가 나 자신에게 변명할 것 같아, 시도는 해보겠는데.
이거.. 왠지 안될 것 같다.



06.15


가만히 왜 내가 이 Lead와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은지, 그리고 왜 내가 한국에서도 생활하는 게 힘들었는지 생각해보았다, 여느 때처럼 느닷없이.

행간을 읽어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행간을 읽어라, 무슨 배경으로 저런 얘기가 나왔는지 무슨 사건사고 때문에 이렇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읽어내라는 얘기다. 거의 20년간 한국에 살면서 가장 많이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있는 그대로 그냥 누가 사과를 먹으면 사과를 먹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안 되고,

사과를 먹네, 왜 먹지, 왜 지금 이 시간에 이 순간에 저건 무슨 뜻일까?


이렇게 받아들여야만 가능한 이 삶이 너무 피곤했다.

아. 그렇다. 내가 이 사람과 일하는 게 너무 피곤하고 힘들고 그 사람이 말하듯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그거였다. 항상 이 사람이 얘기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행간을 읽어야 해서 나는 지치는 것이었다.


빙둘러얘기하는 게 예의였던 시절, 아직도 예의인 시절,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그냥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얘기하면 되는데, 그걸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빙빙빙.


항상 이 사람과 미팅을 하면,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 저 말 때문에 골치를 썩었다. 여자로서, 아랫사람으로서 거칠고, 센 모습을 (당연하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왠 간하면 독심술을 부려 어떻게든 한 글자 한 행동이라도 읽어내려고 애를 썼다. 물어보는 것이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내가 Challenging 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물어보는 것보다 마음을 읽으려 했다.


결국 너무 모르겠어서, 대놓고 물어보면, 결국 내가 생각했던 그것보다는 굉장히 단순하고 유치뽕짝 한 내용이었다. 굉장히 허무했다.


Side Navigation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유저들이 바로바로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게.

라는 말을 안 가르쳐주려고 (?) 그렇게 이전 UX 디자이너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결국엔 그 인간이 못 알아듣는 것 같다며, 상대적으로 잘 알아먹는(?) 나에게 일을 전임했다. 그리고 저 디자이너는 퇴사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잘 알아먹는다고 여겨지는 내가 살짝 뿌듯하기도 했다. 그래 여기서 나의 스킬이 드러나는구나... 드러나기는 개뿔 이렇게 쓸데없는 스킬도 정말 드물다.


그냥 묻고 답하면 되는 그런 쉬운 행동을, 빙빙빙, 나는 또 그걸 졸졸졸.


하반기를 향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ask-er가 되었다. Challenger가 되었다. 


내가 묻는 질문에 답을 바로 해내지 못한다고, 혹은 내가 나 따위 associate레벨이 질문을 한다고 도전적이라고 느끼는 상사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자존감을 좀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뭣하면 카운슬러를 소개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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