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yeongrim Amy Kang Jun 27. 2022

리부팅 중인, 나의 멘털 일지 10

리셋이 필요하다.

06.20


파트너 가족들이 이번 주에 드디어 휴가를 간다.

2년 만에 돌아온 아주 Precious 한 휴가일이다. 코비드가 망쳐놓은 휴가일을 이번에야 말로 대차게 즐기고 오겠다는 그 힘찬 정신이 집안 곳곳 가득하다. 


불과 2주 전에 나도 갔다 왔는데, 해외. 나도 다녀왔는데 휴가. 그런데 왜 나는 다시 가고 싶은가.

어쩔 수 없는 배짱이 정신은 여전하다.



06.24


여하튼 남녀노소, 직업 귀천을 막론하고,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은 다 하나같이 알카트라즈에 보내버려야 한다. 

하다 하다 이제는 리크루터한테 바람도 맞는다. 


OVO라는 굉장히 큰 영국의 에너지 회사가 있다. (어차피 예의도 없는 회사에 굳이 예의 차려줄 필요는 없다.) 최근 그 회사에서 이리저리 M&a를 진행하는 것 같더니만, T.O 가 났다. 한창 이직 준비 중인 나는 당근, 단번에 지원했고, 웬일인지 1주일 만에 연락이 왔다. 전화 인터뷰를 잡고 싶으니 availability를 달라고. 그래서 바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시간 되니 이때 전화 주면 된다고 했고, 또 바로(?) 리쿠르터는 그래! 언제 몇 시에 캘린터 초대장을 보냈으니, 그때 다시 봐! So looking forward to having a chat with you! 라며 맘에도 없을법한 소리를 내보였다. 


역시나, 마음에도 100 퍼 없는 소리였나 보다. 그날 나는 전화가 울리는지 안 울리는지 파트너에게 전화까지 해보라고 하곤, 블루투스로 헤드셋 정리하고, 10분 전에 대기 타고 있었다. 그리고 40분 대기탄 결과, 전화벨은 울리지 않았고, 결국 나는 바람맞았다는 걸 인정했다.


항상 Glassdoor라는 웹사이트에 들어가 이 회사의 리뷰는 어떤지, 인터뷰 리뷰는 어떤지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다. 근데 웬걸... 내 계열의 position들 중에 꽤나 최근에 쓰인 리뷰 2개가 연달아, 똑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바로 리쿠르터가 전화 인터뷰 초대를 보내 놓고는 며칠이 지나도 답변한 개 없이 그냥 잠수를 탔다는 것.


아니 무슨 Tinder/grindr에서 사람 만나 데이트하려다가 잠수 타는 것도 아니고, 사람 구 한대 놓고는 이런 큰 회사가 사람을 바람 맞히는 경우는 도대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일까.


"Don't waste your time!"이라고 적혀있는 그 글을 나는 모른척했다.
이런 케이스가 되면 얼마나 되려고, 나는 이 케이스에 속하진 않겠지.


하! 천만의 말씀이었다. 그냥 허투루 볼 리뷰들이 아니었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겠는가, 결국 나도 Glassdoor에 들어가 리뷰를 가열하게 썼다.

Don't waste your time. 


링크드인에다가도 태그 걸어 글 쓰려다 말았다. 운 좋은 줄 알아라.



06.26


옛날 옛적 섹스 엔더 시티와 가십걸을 보면서 우와우와 New hampton? 저기는 무슨 별장만 있나? 다들 저기에 그냥 쉬러 가는 거야? 하며 탄성을 내질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줘도 안보는 말도 안 되는 판타지 스릴러 시리즈이지만.


In-law집에서 스카이를 돌본 지 어언 1주일. 벌써 꽉꽉 채워 7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만약 내가 뉴 햄프턴이라는 곳에 크나큰 뒷마당 넓은 하얀 집을 짓고 그곳을 별장으로 세워놓고는 여름에 쉬러 갈 때마다 놀러 갔더라면 이런 기분이었을까 싶었다.


겁나 휭 하다 못해, 집 밖에 없는 이곳은 정말 시골 중의 시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바로 스카이 산책을 걸어 걸어가다 보면 몇백 에이커나 되는, 정말 말 그대로 겁나게 큰 논밭이 드넓은 초원처럼 있다. 


걸어 걸어 타운 쪽으로 가면 오밀조밀, 조그마한 슈퍼와 상점들 카페들이 있지만, 그렇게 큰 상점들은 아니고, 가끔 노인분들이 와서 햇볕 쬐기 좋은 그런 곳.


또 옆을 돌아보면, 백인 아이들밖에 없을법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고, 크나큰 성과 호수를 건너면 그래도 이 구역에서 꽤나 유명하다던 대학교도 호그와트처럼 뚝 서있는 게, 뭔가 영화에나 나올법한 곳이다.

그리고 에드 시런이 여기 산다. 시댁은 명절 때만 되면 자주 본다고 한다. 


시내 쪽과 너무 멀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보는 것이라고는 은퇴한 노인들의 하하호호와 그들의 강아지가 킁킁 산책하는 것밖에 없는 이 동네에서 나는 근 2년을 살았건만, 딱히 내 집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아직도 없다.


그래도 이 집에서 1주일간 살면서 가장 좋았던 Top 3는,

1. 스카이랑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남은 얼마 남지 않은 생애를 나에게 할애해주고, 그 시간 동안 내가 스카이 여사를 보살펴 줄 수 있어 영광이다.

2. 겁나 크고 잘 꾸며진 (마이크의 열일...) 정원에 햇볕을 받으며 선선히 부는 사람을 느끼며 요가를 할 수 있다는 것.

3. 그리고 내가 사랑에 마지않는 로컬 카페. 춤추는 염소도 있다. 이곳은 나도 춤추게 한다.


한창 옆에 있는 사람도 겁나게 다크하고 우울했던 나의 몸과 마음을 이곳에서 허옇게 태웠다.

앞으로 남은 3일, 여기서 내 몸과 마음에 열 일하는 저 햇볕을 열심히 쏟아부어야지. 


작가의 이전글 알고 싶지 않은, 나의 멘털 일지 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