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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May 28. 2023

ATBO, <The Beginning: 開花>

2022. 10. 15. 작성

- IST 엔터테인먼트 제작3본부 A&R 지원 제출 글




ATBO의 서막을 올리다, <The Beginning: 開花>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THE ORIGIN - A, B or What?>을 통해 선발된 ATBO는 ‘색채’라는 테마를 주요 컨셉으로 웅장한 세계관의 모습을 그려내었다. 양장본으로 제작된 데뷔 앨범 <The Beginning: 開花>는 판타지 장르의 결을 갖춘 세계관을 도서의 외양으로 드러내면서 판타지 소설의 시작점을 읽듯 그룹의 서막(序幕)을 보여주고 있다. ‘AT the Beginning of Originality’라는 팀명에 맞게 ‘시작’을 주제로 하여 신인다운 패기와 열정, 포부를 한껏 담아낸 앨범에서 이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세련됨을 보여준다. 흑백의 세상에 본인들의 색으로 물들이겠다는 야심은 묵직한 베이스 음이 강조된 힙합 기반에 신스 사운드와 힘있는 랩, 보컬이 어우러져 잘 드러난다. 특히 경쟁적으로 복잡하고 장대해져 가는 세계관에 팬덤이 지쳐가고 있는 요즈음, 규모는 유지하되 그 안에 간결하게 정돈된 세계관을 내세워 케이팝 팬덤의 피로도를 덜고도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앨범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인트로 곡은 음반의 정체성을 결정 짓는 첫인상과도 같은 곡이기 때문에 타이틀곡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룹의 세계관, 앨범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하는 것은 물론 이 뒤에 이어질 타이틀곡과의 매끄러운 연결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7IBE (VIBE)’는 매우 높은 합격점을 받는다. 도입부의 느린 비트와 함께 똑딱이는 시계 초침 소리는 거대한 성문을 열고 들어가는 듯한 환상을 불러 일으키며, 이어지는 현악기 오케스트라와 덥스텝 사운드의 조화 사이에 빈 여백들은 댄스로만 채워진 무대를 자연히 연상케 해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이어지는 타이틀곡 ‘Monochrome (Color)’에서는 흑백으로 어두워진 세상에 색을 입혀 다채롭게 만들겠다는 그룹의 세계관을 이들의 포부와 연결지어 당차게 담아내고 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발탁되었다는 정체성을 자신감으로 치환해 드러내면서(‘우린 준비됐어 Color me up’) 실력으로 팬들을 압도하겠다는 포부(‘캔버스는 Stage 우린 Colorin’)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곡을 완성한다. 반복되는 비트를 사용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계속해서 변주를 주는 베이스가 특히 인상적이며 벌스마다 형태, 박자 등을 직전 마디와 다르게 진행해 러닝 타임도 잊은 채 듣게 한다. 하지만 묵직한 베이스 위로 챈트가 겹쳐지는 곡의 형태는 남자 아이돌에게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익숙한 문법에 속한다. 팬들에게 익숙한 이 문법은 데뷔 그룹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대중의 거부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기존에 분산돼 있는 케이팝 팬덤에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해 적대감을 줄 여지가 남아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앞에서 그룹의 색을 강렬하게 드러낸 뒤 힘을 빼고 등장하는 ‘Graffiti’에서는 색채가 주 테마인 팀답게 채도가 없는 세상에 희망을 그리겠다는 팀의 야심을 다시 한번 발화한다. 갓 20대가 된 멤버들의 재기 발랄함과 막 벗어던진 10대의 패기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풋풋함이 펑크 비트 사이로 곡 전체 무드를 통해 전달된다. 타이틀곡인 ‘Monochrome (Color)’이 베이스가 강조된 힙합으로 세계관 속의 ATBO를 보여줬다면, ‘Graffiti’에서의 ATBO는 ‘희망’ 그 자체가 되어 색채로 뒤덮인 세상을 만들어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매일이 꿈을 위한 생존의 갈림길 같았을 긴 여정을 통과해온 멤버들이 꿈의 터널을 지나며 다져온 유대감을 스포츠에 비유한 곡 ‘High Five’는 강하게 힘을 주는 베이스에 플럭 사운드가 통통 튀는 올드스쿨 무드가 에너지 넘치는 곡이다. ‘같은 꿈을 향해 나가 늘 우리라는 믿음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여 ’난 뭐든 다 해낼 수 있’다는 지지를 주고받으면서 최종적으로 높은 꿈을 향한다는 스포츠 드라마의 성장 서사를 멤버들의 성장 서사와 엮어내 듣는 재미를 더했다.

알람 소리로 시작하는 도입부로 귀를 사로잡는 ‘WoW’는 도입부 이후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랩이 트랙 위를 달려가는 곡에 속도감을 선사한다. 랩과 보컬이 다른 박자감으로 이동하면서 완급 조절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곡에 다이내믹을 주었다. 멤버가 랩 메이킹에 직접 참여한 트랙 중 전체 앨범을 통틀어 가장 눈에 띄는 곡으로 실력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곡이다. 굉장히 유려한 라임을 구사해 가사에 집중해 들으면 이들이 가진 실력에 더욱 놀라움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코러스의 빠르게 박자를 쪼개는 베이스와 리드미컬한 멜로디 라인이 악동 이미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해 ATBO가 그린 모노크롬 속의 반항아적 기질을 잘 드러내었다.

앨범을 닫는 곡으로는 이들이 출연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THE ORIGIN - A, B or What?>의 시그널 송이 선택되었다. 신스 사운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RUN’은 사실 ATBO의 가장 근원적인 정체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인트로 곡이었던 ‘7IBE (VIBE)’에서 데뷔 이후의 ATBO를 소개하고, ‘RUN’으로 앨범의 문을 닫아 이들의 정체성을 서술하는 수미 상관 구조를 이루었다. 이에 더해 앨범을 전체 반복으로 들을 때, ‘RUN’에 이어지는 곡이 ‘7IBE(VIBE)’라는 점에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과 데뷔로 스토리가 연결되는 흥미로운 구성이 된다. 음악이 음반 단위보다 곡 단위로 파편화된 중에 음반이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서사적 구조를 완성했으며 한 앨범을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장치가 되어주었다.


IST엔터테인먼트의 이름으로 처음 데뷔하는 그룹인만큼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을 앨범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특히 음악에 심혈을 기울여 모노트리, 프리즘필터, 이스란, 조윤경을 비롯해 최근 떠오르기 시작한 danke까지 오랫동안 케이팝을 좋아해온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 만한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참여했다.

실재적인 음반보다 비 실체적인 음원에 더 익숙해진 시대에 앨범 구성에 공을 들이는 일은 오로지 팬을 위한 일이 됐다. 이런 현상은 회사에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한편으로 재정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앨범의 구성을 대폭 줄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였더라도 아직 팬덤 구축이 탄탄하지 않은 데뷔 앨범에 양장본으로 도서의 형태를 취해 책을 읽듯 세계관의 서막을 연결짓고, 다음 곡의 제목을 가사에 녹이면서 트랙리스트 간 유기성을 확보한 이들의 과감한 감행은 대단히 신념을 지킨 행위이자 자신감의 발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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