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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May 28. 2023

이토록 유해한 아름다움, 민희진과 뉴진스

2022. 8. 4. 작성

민희진이 대표로 있는 아도어에서 드디어 걸그룹이 데뷔했다. 뉴진스가 데뷔하고 커뮤니티의 반응을 보면서 역시.. 민희진은 민희진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현 제목은 쿠키 뮤비를 보면서 생각했던 것이고 직전까지 내 마음속에 적어뒀던 제목은 '민희진은 민희진이다'였다. (이 주제는 오랫동안 써보고 싶었기 때문에 조만간 기회가 된다면 작성해 볼 예정이다.)

나는 항상 뭘해도 욕 먹고 배척 당하는 하이브가 살짝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내가 뭐라고 싶긴 하지만, 그냥 맨날 뭘 하기만 하면 팬덤에서도 욕부터 하기 바쁘고 케이팝에서는 늘 배척 당하면서 하이브를 무시에 가깝게 아니꼬워 하는게 늘 왜 그런걸까 궁금했다. 그래서 이번에 나오는 걸그룹도 결국 하이브에서 데뷔하는 걸그룹이라 이렇게까지 반향을 일으킬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SM에서부터 민희진을 좇았던 팬들은 하이브라는 이름보다 민희진이라는 이름에 더 크게 반응했다. 그래서 팬들의 반응을 보면서 '아 역시 민희진은 민희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다르게 말하면 하이브는 회사의 네임밸류가 회사 아래의 개인 브랜드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뉴진스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화장기는 최소화하였고 노래 가사, 뮤직비디오 어느 곳에서도 10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꾸밈을 보여준다. 쿠키 뮤직비디오에 SM에서 보았던 감성들이 재생되는걸 보면서 그 시절에 보여준 기획들이 SM의 색을 담은게 아니라 민희진의 감성이었던 것일까 싶기도 하고 역으로 민희진이 SM에서 일을 배웠기 때문에 영향을 받은 걸까 싶기도 하다. 어느 쪽이 됐든 민희진이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란 것만은 분명하다.


내가 뉴진스를 보고 '유해한 아름다움'을 떠올린 것은 쿠키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직전에 일었던 일련의 논란을 접하고 난 뒤였기 때문일 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일단 뉴진스가 바비인형이 가진 아이디얼 타입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미국에서 여자 아이들에게 왜곡된 미의 기준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바비 인형의 아이디얼 타입이 뉴진스를 통해 재생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당시에는 문제점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여성들의 꾸밈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과 이에 따른 미의 기준이 재정립을 이룬 지금에는 뉴진스가 일종의 길티 플레저가 된 것이다.


어텐션에서는 주로 활동적인 로우 틴 에이저의 모습을 표현하였고 쿠키에서는 그보다는 조숙한 스쿨룩의 하이 틴 에이저를 표방하였다. 실제로도 미성년자인 멤버들을 치장하고 있는 외부 세계란 모순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해하고 그래서 아름답다.


최근에 웨스 앤더슨과 박찬욱을 보면서 아름다움이란 개념 안에 자리한 추함과 유해함 같은 것들을 깨달았는데 뭔가 뉴진스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그때 곱씹었던 단상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에는 「썸머 필름을 타고」의 감독 마츠모토 소우시와 작가 미우라 나오유키가 인터뷰에서 ''여고생' '교복' '반짝반짝함'을, 결과적으론 기호적으로 소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문제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는데 이게 바로 뉴진스, 나아가 민희진이 표현해온 유해한 아름다움의 본질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 10-20대 청춘의 영롱함을 기호적으로 소비하는 것 자체가 케이팝의 핵심이기도 한 것 같다�)


어텐션이 처음 공개됐을 때는 뮤직비디오 도입에 나온 밴드 보컬이나 공연장의 이미지(왜 트레인 스포팅이 생각났는지..?)가 굉장히 영국의 90년대 하이틴 감성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멤버들 비주얼도 미국*보단 스파이스걸스에 더 가까웠고 여러가지로 브리티쉬를 향해있다고 보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라나 델 레이나 스킨스의 에피가 가진 독소를 품고 있는 유해한 아름다움이란 측면까지 뉴진스가 품은 모든 개념들이 영국에 기대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90년대 걸그룹 대표라면 역시 TLC인데 멀리 봐도 데스티니스차일드, 푸시캣돌스, 피프스하모니 어디와도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 애초에 미국의 걸그룹은 R&B를 기반으로 한 힙합에 가장 집중돼 있어서 추구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


뭐 뉴진스가 어린 애들 데리고 이렇고 저렇고 어쩌고 하면서 비판하자는건 아니고 그냥 내가 느끼는 뉴진스의 아름다움의 한 갈래를 말하고 싶었다. 학번 연도에 태어난 애기들과의 나이 차이를 차치하고도 어딘가 묘하게 찜찜한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 열광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 지점. 부옇게 가려져 있던 죄책감의 고개가 분명하게 드는 명확한 이유를 찾아서 한번 말해보고 싶었을 뿐이다.


또 민희진이라는 개인 브랜드에 대해서도 말해보고 싶었다. 케이팝에서는 팬덤에게 적대시 되는 하이브에서 민희진이라는 이름 석자로 어떻게 팬들을 결집시키고 매료시켰는지, 같은 그림을 두고도 김성현의 르세라핌과 민희진의 뉴진스는 반응이 어떻게 이렇게 다른지. 정말 흥미롭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이번 뉴진스를 통해 민희진이 그리는 10대의 이상(理想)은 항상 몽롱하고 나른한, 꿈결이 기억을 한겹 덧씌운 판타지라는게 확인됐다. 그렇기 때문에 음원이 모두 발표된 상황에서 곡을 다 들어보았을 때 뉴진스를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곡은 <Attention>이라는 결론이 선다. 뉴진스가 앞으로 추구하는 방향이 <Hype Boy>라면 뉴진스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곡은 <Attention>이다.


뉴진스.. 정말 이토록 유해한 아름다움이라니. 나는 기꺼이 사랑하겠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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