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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Sep 08. 2023

약한 영웅 Class 1

2022. 11. 20. 작성

2022. 11. 19.

국내 OTT 플랫폼 웨이브의 오리지널 드라마. 네이버의 인기 웹툰인 동명의 <약한 영웅>이 원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사 당시, 하나같이 평이 좋았던 후문을 듣기도 했고, 예고편이나 비디오 소개 프로에서 보여주는 클립 속의 박지훈 연기가 좋아서 굉장히 고대하고 있었다. 캐릭터 포스터에서부터 안광 없이 퍽퍽하게 죽어있는 눈동자에도 그 안에 독기를 담아낸 것이 연시은에 완벽히 녹아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박지훈의 연기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프로듀스101으로만 보아왔던 아이돌 박지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원작 팬들은 박지훈의 체격이 원작과 맞지 않게 다부져서 그 부분을 얼마간 못마땅해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박지훈의 연시은은 실사화 캐릭터에 가장 잘 맞는 캐스팅이다. 작가가 애초에 임시완을 염두에 두고 그린 인물이라고 인터뷰가 있기 때문에 임시완이 했어도 아마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지훈이 해석하고 보여준 연시은이 설득력이 강해 위화감이라는 단어는 떠올릴 수도 없게 완벽했다.

연시은이라는 캐릭터에는 맷집도 필요하고 아무리 지형지물을 활용한다 한들 실상 내리꽂는 힘이 상대에게 타격을 주려면 행위자에게도 도구에 가해지는 힘을 전달할 만큼의 체격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지훈이 체격을 키운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한 요소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무엇보다 박지훈의 연기가 일품이다. 극의 중심에서 이끌어가는 힘이 대단하다. 무게를 잡되 너무 둔중하게 내려앉지도 않고 어둡고 칙칙하지만도 않다. 무력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에도 영빈 무리(석대를 비롯해 큰형과의 대치 상황에서)에 꼿꼿하고, 집착이 강한 '진짜 미친놈'을 잘 보여주었다. 게다가 인물이 각 상황에서 마주하며 층층이 쌓이는, 한 단어로 정의 내리지 못할 복합적인 감정에 대한 표현도 매우 뛰어나다. 이 감정 표현은 범석과의 갈등을 빚은 후반부에서 폭발한다. 박지훈의 연기가 아니었으면 <약한 영웅>이 이 정도로 호평을 받을 수 있었을까? 드라마의 초반과 말미에 성격이 달라진 연시은을 시청자들에게 강하게 납득시키고 극을 진행하는 내내 몰입시킨다. 이런 말 어떨지 모르겠으나 박지훈은 아이돌일 때보다 배우일 때 더 빛나 보였다. 배우로서 대성하겠다는 감상이 가장 먼저 앞선다.


뿐만 아니라 범석 역의 홍경도 열등감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삐뚤어지고 혼란스러워하는 인물을 잘 표현했다. 단정한 외양에 내밀하게 폭력적인 욕망을 가진 모습, 삐뚤어진 방향으로 표출되고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되는 체념적 인물의 얼굴이 잘 드러난다. 뒷모습에서조차 범석이 느끼는 쓸쓸함이 전해진다.

이에 비해 수호는 약간 판에 박은 전형적인 캐릭터로 비친다. 할머니 슬하에서 공부보다 성장 그 자체에 집중한 교육관으로 공부에는 크게 관심두지 않고 누구와도 두루두루 잘 지내면서 친한 친구는 없는 아싸 캐릭터.

주먹도 잘 다루지만 함부로 내지르는 일은 없고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한다. 힘의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주먹을 폭력을 위해 행사하지 않는다.

수호 역은 <스물다섯스물하나>로 제대로 눈도장 찍었던 최현욱이 맡았다. 그때도 멋있는 역할이어서 호감을 가지고 지켜봤었는데 이번에도 수호 역할을 꽤 잘 해냈다. 다만 이전의 <스물다섯스물하나>와 설핏 겹쳐보이는 지점들이 있어서..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매력이 조금 반감되는 면이 없잖아 있다.


<약한 영웅>은 액션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학원물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청소년 문학을 읽었어서 그런지 다시 한번 청소년들의 감정 변화에 주목하게 된다. 액션 드라마라는 장르에 집중하기 위해 단지 액션에 추진력을 주기 위한 장치에 머물렀을 세 친구 사이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다소 투박한 문체로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 이것 역시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 돼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는 연출의 영역에 속하기도 하겠지만) 세 친구 사이에 발생한 균열은 이전에도 한국 영화 <파수꾼>이 다룬 바 있다. 그 나이대에 먹이사슬에 올라야 한다는 두려움과 얕잡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불안은 한 궤에 있으며 무리(친구)에 소속되길 원하는 욕망까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내가 겪어왔기에 더 외면하고 싶은 감정들이다.


캐릭터의 성격 변화에 가장 큰 폭을 보여주는 범석이는 이 세 가지 감정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면서 동시에 인물이 가진 힘(물리적으로든 권력으로든)이 가장 약한 캐릭터이다. 그래서 범석이는 어느 무리에도 끼어있지 않은 시은이에 특히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약한 자가 알아보는 약한 자였으리라. 그러나 시은은 범석이 유추해낸 만큼 약한 자가 아니었고 자기의 약점을 감추면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돌파해 나가는 인물이었다. 내가 보기엔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자아 성립이었는데, 범석은 아버지에게 학대 받으며 지지받지 못하고 열등감이 모나게 표출된 삐뚤어진 캐릭터였다면 상대적으로 시은이는 방목과 방임 사이에서 독립적으로 자라나며 스스로에 대한 벽이 높고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면서 자기 확신이 꽤 강하게 자리잡은 캐릭터였다. 결국 타인의 힘을 빌려 폭력을 행사하고 이를 통해 권력의 쾌감을 느끼는 범석과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은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당연한 순리였을 것이다.

범석이가 마지막에 시은에게 '모르겠다'고 대답한 것도 범석이의 진심이다. 내가 왜 이러는지도 모른 채 그냥 화가 나고 어디에든 탓하고 싶고. 그때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것 같은 그 아이에게 분풀이를 하게 되고 선망하는 만큼 미워하고.. 좋아하고 친해지고 싶었던 만큼 다 빼앗긴 것 같아서 미웠을 거다.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겠나.

범석과 시은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에 완전히 이해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10대들에게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 한 명'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한다. 내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오은영 박사님이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유 역시 자기의 마음을 다 알아주는 것 같아서이니까. 어른도 이해를 바라는데 하물며 어린 학생들은! 이미 그 시기를 겪어본 사람이 아무래도 이해해주는게 더 쉽지 않을까?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인 <약한 영웅>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서열의 아래에 놓인 시은이 포식자들에게 맞서 뭇 아이들에게 동경으로서 올라선다는 성격을 보여준다. 사실 처음 <약한 영웅>을 들었을 땐 석대도 그렇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모티브 삼아 재해석한 작품인가 하고 호기심을 가졌다. 찾아보니 딱히 그런 얘긴 보이지 않아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캐릭터의 성격이나 갈등이 유사한 구조를 띤다는 점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아직 시즌 1이라서 전개가 더 진행되지 않았는데, 그래서 다음이 기대된다. 처음부터 시즌이 나누어 발표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시즌 1의 모든 회차를 관람해도 이제 막 시작했는데 중간에 뚝 끊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드라마는 호흡이 긴 편이라 제대로 집중해서 못 봤더라도 감히 다시 돌려볼 엄두를 못 내는데 <약한 영웅>은 한 번 더 정주행 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시즌 2를 다시 또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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