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아이돌'이라는 단어의 시초. 아이돌 1세대의 탄생이다.
아이돌의 시작을 알린 케이팝의 단군 할아버지, H.O.T의 <전사의 후예>. 안무가였던 유영진이 프로듀서를 맡아 퍼포먼스에 최적화된 곡이 나왔다. 학교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갱스터 힙합의 바이브를 접목한 곡으로 강한 비트, 전자음을 적극 활용하는 실험적인 사운드에 더해 사회 비판 가사가 합쳐진 일명 SMP의 초석이 되는 곡이다. 당시에는 큰 반응이 없었는데 그 뒤에 발표했던 후속곡 <캔디>가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SM과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우뚝 세웠다. 요즘이야 케이팝 역사 공부가 꽤 힘이 들어가 익히 알고들 있지만, 이전에는 이들의 데뷔곡을 <캔디>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전사의 후예>-<캔디> 조합으로 아이돌 데뷔의 정석 '빡센 곡 뒤에 귀여운 곡'의 공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현재는 그 추세가 많이 바뀌었지만 고전이 고전인 이유가 있듯 이 공식이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H.O.T.의 메가히트 급 성공으로 DSP에서 대항마로 내보낸 젝스키스. 이때까지 DSP의 전략은 SM에서 낸 그룹의 인원에 +1 하는 식이었다. H.O.T.가 10대들의 문제를 다룬 '학교폭력'을 내세웠듯 젝스키스(젝키로 약칭)도 데뷔곡의 주제는 학원물이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다소 타령같은 가락의 음조가 특징인 재밌는 곡이다. 젝키 역시 <학원별곡>보다는 이후에 발표한 부드러운 겨울 발라드 곡 <커플>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얼마 뒤, S.E.S와 핑클로 다시 SM-DSP의 양자 구도에서 걸그룹이 나왔지만 여기서는 남자아이돌만 다루도록 하고, 1.5세대로 분류되는 신화와 클릭비, god를 서술한다.
신화가 누군지는 알아도 데뷔곡이 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두가 당연하게 알거라고 나도 모르게 전제하다보니 알고 있을 만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신화는 이전까지 5년이면 끝난다는 아이돌의 수명을 7년, 10년 이상까지 늘리고 중년이 되어서도 현역으로 활동이 가능하단걸 보여준 그룹이기도 하다. H.O.T.와 S.E.S의 연이은 성공 이후로 야심차게 데뷔한데 비해 2집이었던 <T.O.P>가 발표되기 전까지도 이렇다할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H.O.T.가 했던 것처럼 <해결사> 역시 강렬한 비트를 중점으로 내세우고 이후 <으쌰으쌰>로 귀엽고 발랄함을 내세운 곡을 선보였지만 이들을 성공 궤도에 올려준 것은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하여 우아하면서도 절도있는 안무, 멜로디를 보여준 <T.O.P>와 멤버가 웃통을 까는 파격적인(!) 안무를 보여준 <Only One>이었다.
DSP의 SM 대항마 3(2는 핑클이었다). 6명이었던 신화에 1명을 추가한 7명의 멤버이고, 밴드 구성을 차용한 밴드형 아이돌의 최초(일 것)다. 와 근데 H.O.T.부터 모든 케이팝을 실시간으로 다 보아왔던 나조차 첨 듣는 데뷔곡이다. 밴드 구성이라고는 하지만 음악은 댄스 음악이다. 드러머와 기타리스트 멤버가 있고, 중간에 짧게 삽입되는 기타의 독주 정도가 밴드임을 내세우는데 구색을 맞춰주지만 간주 부분에서 댄스 브레이크를 넣어 댄스 멤버들이 나오는 구성은 영락없는 아이돌의 댄스 음악이다. 밴드 아이돌 클릭비의 색이 더 잘 드러나는 음악을 듣고 싶다면 <백전무패>를 추천한다. 이쯤 와야 케이팝 특유의 아이돌 댄스 음악과 랩 메탈의 느낌을 살린 곡을 경험할 수 있고, 또 <백전무패>는 사실 클릭비의 대표곡이기도 하다.
모두가 아는 그 곡. '어려서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로 시작하는 명곡. R&B나 흑인 음악을 주력으로 삼았던 박진영이 기획한 첫 아이돌이었다. 박진영이 프로듀서로 활약해서 JYP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당시 god는 싸이더스 소속이었다. SM이라는 기획사와 프로듀서 JYP의 양자구도였던 셈이다. god를 키운 것은 9할이 재민이지만 그 뒤에 음악적 역량이 받쳐주지 못했다면 그 인기도 곧장 사그러들었을 것이다. 무엇을 계기로 인기를 얻었든 간에 그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예인으로서의 '끼'와 음악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장 대표적으로 증명한 그룹이 아닐까. IMF를 이겨내고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룬 시기에 극빈의 서사를 R&B 멜로디에 얹어 덤덤히 이야기하는 이 곡은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획기적이다. (아이돌이 저렇게 가난을 노래하다니?) 후속곡으로 발표한 <관찰>도 재밌는 곡인데, 앞서 SM에서 시도했던 강한 곡과 발랄한 곡의 교차가 god 식으로 재해석된 것 같기도 하다.
모든 레드오션이 그렇듯 이후로 수많은 남자 아이돌이 쏟아져 나왔지만 굵직하게 기록을 남길만한 아이돌은 나오지 않았다. H.O.T.가 지저분하게 그룹이 와해되고 여타 그룹들도 해체와 탈퇴가 이어지면서 10대들로 구성된 팬덤도 어지러웠다. 이미 과포화된 아이돌 시장에 비판의 목소리가 제법 나오던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 복기해보자면 아이돌이 탄생하고 흥망성쇠의 모든 흐름을 처음 겪었던 팬들이 여러 피로도 높은 이슈들을 피해 휴덕기를 가지거나 오타쿠가 아닌 대중 속으로 이탈을 한 첫 시기이지 않나 싶다.
그러던 중에 동쪽에서 신들이 일어났다.
그렇다. 동방신기가 '하루만 네 방에 침대가 되고 싶'다며 모든 휴덕기의 아이돌 팬들을 결집시킨 것이다.
2세대 아이돌이 포문을 열었다.
가장 높이 나는 새는 추락의 폭도 큰 법인지. 드러난게 많아서인지 언급하기가 꺼려질 정도로 가장 추하게 변한 그룹이지만 현대 가요사에 굵직한 줄기 하나를 차지한 것에는 변함이 없다. 앞서 1세대들이 고수해왔던 강한 곡 뒤의 발랄한 곡 법칙을 와장창 깨뜨리며 느닷없이 등장해 휴덕기를 보내던 팬들을 한데 끌어모았다. 동방신기의 데뷔 당시 그룹 컨셉은 '아카펠라' 그룹이었다. 이에 걸맞게 모든 멤버들을 보컬리스트로 부각하고 부드러운 멜로디와 풋풋함을 전면으로 내세운 곡이다. 4글자 이름의 유행을 만들어내고 괴상망측한 헤어와 의상을 거의 컨셉처럼 붙여 SMP를 완성했다. H.O.T.가 아이돌이라는 개념을 시장에 도입했다면 동방신기는 사장될 뻔한 그 개념을 다시 살리고 파이를 넓혀 시장으로서 확립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사실 난 엄청나게 편협하다. 빅뱅을 좋아한 적이라고는 <거짓말> 때 잠깐 뿐이고 이들의 음악적 행보에도 그 외 사회적인 이슈에도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에 노래를 듣질 않아서 리뷰할 수가 없다.. 빅뱅 역시 범국민적으로 인기가 많았으므로 다들 아실 것이라 생각하고 간략히 넘어간다. 동방신기로 다시 아이돌 시장을 확장한 SM에 대항해 이번에는 힙합을 내세운 YG에서 빅뱅이 떠올랐다. SM-DSP를 지나 SM-JYP 구성이 SM-YG로 바뀌게 되는 계기였다. 이전까지 힙합 레이블의 이미지가 강했던 YG가 대중적이고 아이돌 팬덤화를 갖추는데 일조했다. 모든 장르들을 섞어 실험적인 사운드를 내던 SM, R&B를 주력으로 흑인음악 장르를 내세우던 JYP와 다르게 힙합을 주류로 활동 했다.
동방신기 마저 처참하게 그룹이 와해되고 깨지면서 팬덤은 다시 공백기를 맞았다. 하지만 재밌게도 이 시기에 SM, JYP에서 성장한 직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설립해 나가면서 중소의 기적이 많이 일어났고, 케이팝 시장에 다양성이 크게 활성화됐다. 인피니트, 비스트(현 하이라이트) 등이 인지도를 얻으며 세를 키워갔고, f(x) 같은 키치한 그룹도 케이팝 팬들에게 듬뿍 사랑받았다.
그러던 중 3세대를 열면서 아이돌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는 사건이 발생한다. '세계관'이라는 키워드를 대유행 시킨 EXO Planet에서 온 외계(?) 아이돌이 그 주인공이다.
데뷔와 동시에 파장을 일으킨 그룹은 동방신기의 <Hug>를 제외하고는 없지 않나 싶다. 지금의 엑소를 있게 한건 <으르렁>이지만 이들의 데뷔곡은 <MAMA>다. '웅장한 오케스트라~' 밈을 만들어낸 곡이기도 하다. 멤버인 도경수가 곡 설명을 하는데 이제 막 데뷔해 긴장한 탓에 말실수한 것이 팬들 사이로 퍼져나가 밈이 되었다. 여튼 곡설명이 보여주듯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풍성하고 곡의 긴장감도 크다. 곡이 전달하는 사회비판의 메시지는 집단적인 문제(학교폭력 등)의 협의에서 몸집을 키웠고, 0과 1의 사이버 세계 문제가 개입돼 보다 광범위해졌다.
전세계 탑티어의 등장. 중소의 기적 중에 기적. BTS의 전신(?) 방탄소년단이다. <상남자>로 미주 팬들에게 각인시켜 <I NEED U>로 인기를 얻고 <쩔어>-<불타오르네>로 연달아 쐐기를 박으면서 이후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를 거두고는 SM-JYP-YG가 경합하는 3대 기획사의 틀을 완전히 깨고 하이브라는(아이돌에서는 BTS로) 1강 구도를 만들어냈다. 방탄소년단 역시 처음부터 성공 궤도에 진입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데뷔곡은 <No more dream>이라는 곡인데, 이 곡은 과거의 유산으로 남아있던 90년대 갱스터 힙합을 그대로 다시 재현했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롭다. <No more dream>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이 곡은 H.O.T.의 데뷔곡이었던 <전사의 후예>와 매우 유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도입부의 베이스 스트링은 <전사의 후예>를 오마주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왕따 문제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면서 사회적으로 불거졌던 학교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룬 <전사의 후예>와는 달리 <No more dream>은 그보다 더욱 개인에게 집중해 10대들이 처한 미래와 현실(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1997년부터 2013년까지 16년의 세월 사이에 변화한 10대들의 처지를 반영했다. 비약적으로 표현하자면 <전사의 후예>에서 학교폭력의 고통을 공감했던 고등학생은 <No more dream>에서 부(富)를 최고 가치로 성공을 강요하는 어른이 되었다. 이 아래에서 멤버들은 10대라는 당사자성을 바탕으로 본인들의 이야기를 적극 드러내면서 유대와 공감을 이끌어낸다. 또한 <No more dream>은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장르가 다양해지고 세분화된 음악 시장에서 갱스터 힙합으로 묵직하게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했다는 점 역시 눈여겨 볼 만 하다. 이후로 이어지는 <N.O>와 주제의 결을 하나로 끌어가면서 학교 시리즈의 초석으로 작용하는 곡이 된다.
방탄소년단(BTS)의 공전의 히트 이후 하이브는 현재 가장 시류를 잘 읽는 회사로 자리매김한다. 근 2년간의 음악적 성과는 하이브에서 나왔다. 그 중심에는 여자 아이돌(특히 뉴진스)이 있었는데, 오랜만에 신선한 곡을 들려주는 남자아이돌이 나왔다. 하이브 산하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TWS(투어스)다.
'청량'이라는 단어로 축약되는 상큼하고 명랑한 분위기의 곡을 데뷔곡으로 내세웠다. 그룹 이름과 문장형 제목은 빅히트 뮤직의 투머로우바이투게더(TXT)를 떠올리게 해서 초반에 노이즈로도 성공적인 버즈량을 발생시켰다. 이 글에서 살펴본 것만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 아이돌의 역사는 이미 20년이 넘었다. 아이돌 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변했고, 아이돌 덕질이 취미의 영역으로 편입되면서 전 연령을 아우르게 되었다. 과거 아이돌의 주력 마케팅 대상이 10대였던 것과 다르게 현재의 아이돌 타게팅은 소비력이 높은 2-30대 팬덤에 가있기도 하다. 그에 반해 데뷔하는 아이돌들의 나이대는 여전히 어리고, 케이팝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소비 대상 역시 10대에 있으며, 미성숙한 학창시절의 추억은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아이돌이 스쿨룩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TWS는 오랜만에 10대들의 일상, 즉 '학교'를 배경으로 나온 그룹이다. 그러나 이전의 아이돌들과는 달리 피로한 사회 문제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학교폭력이라는 문제는 여전하나 그 양상이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가볍게 이야기하기가 어렵고 사회가 그냥 묻어두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낭만화라고도 부를 수 있겠고, 감상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겠으나 오랜만에 추억을 들여다보게 하고 대다수의 학생들의 일상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TWS라는 그룹의 상황(데뷔)과 결부되어 있는 학원물이라는 컨셉이 새롭다.
신스 사운드가 귀에 익은 최근 트렌드에서 낯설지 않은 장르(하이브리드 팝)를 선택해 대중에게 신인을 받아들이는 거부감을 최소화했다. 곡이 설명하는 환상을 넘나드는 분위기를 카운트('셋, 둘, 하나') 후 드롭하는 방식을 통해서 살짝씩 이음새를 끊어내 극대화한다. 특히 이 그룹은 제목에서부터 '첫 만남'을 드러내어 TWS라는 그룹 자체가 당면한 과제(데뷔로 새로운 팬덤 형성)와 학교 생활에서 입학과 새 학기를 통해 반복되는 낯선 환경의 과제를 겹쳐놓아 '안녕, 내일 또 만나자', '이름이 뭐야' 등 TWS라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이 팬들에게 먼저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형태를 만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도드라진다.
앨범 전체에 대한 리뷰는 추후에 하겠지만, 들어보면 TWS에서 플레디스의 색깔도 연하게 읽을 수 있다. 선배 그룹이었던 세븐틴의 데뷔곡에서 들었음직한 곡이 귀를 잡아끌기도 하는데(TWS <BFF>와 세븐틴 <표정관리>), 세븐틴이 데뷔 초반 10대 학원물을 전면으로 내세워 '청량'을 컨셉으로 활동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TWS는 플레디스가 구축하는 하이틴 학원물이라는 장르적 유사성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일반 대중들 마저 TWS에 대한 언급이 잦고 음악을 찾아드는 일이 많아 오랜만에 대중적으로 버즈량이 느는 남자 아이돌이 신기해서 들여다보았다. 앞으로 남자 아이돌의 데뷔 전략이 어떻게 변화할지 TWS에서 신선한 대안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하이브 같은 경우, SM처럼 긴 시간 노하우를 쌓아온 것이 아니어서 큰 성공을 거둔 선례 이후 후배 그룹을 데뷔시킬 때의 어려움을 어떻게 타파해야 할 지가 큰 과제였다. TWS만으로 본다면 세븐틴 이후 9년 만에 새롭게 내놓은 남자 아이돌이기에 같은 장르를 구축해가기 위해서는 공백을 크게 두어야 새로움과 향수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이 따라올 수 있겠다. 이번에는 플레디스가 의도한 것이었든 아니든 TWS의 데뷔 전략이 아이돌 팬덤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제대로 적중했지만 다음 번에도 이러한 전략이 들어맞을 지는 다시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는 TWS라는 그룹의 과제를 10대들의 일상에 겹쳐 놓으면서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의 포부를 다정하고 상냥하게 표현했다. 밝고 경쾌한 신스 사운드를 중심으로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청하는 가사는 듣는 이들에게 풋풋함과 신선함을 느끼게 한다. 교복과 스포티 룩을 바리에이션한 무대 의상이나 포인트 안무 등이 어우러지면서 대중이 TWS에게 호감을 갖도록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