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20. 작성
2016년 8월 16일 00:00
윤기의 솔로 믹테 발표 이후, 들을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쉬지않고 윤기의 믹테만 듣고 있다. 믹테가 발표됐던 첫 날, 7번 곡의 쇼크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한동안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아직 이틀 뿐이 안 지났지만, 벌써 이틀이나 지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다. (*18일에 적어두었던 글을 이제야 다시 꺼냈다.)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윤기는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이고, 걱정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나의 세계에서 완벽한/완전한 어른이었다. 물론 현재도 윤기는 무척이나 어른스러운 사람이고, 나이에 관계없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윤기에 대한 나의 해석엔 변함이 없지만 다만 그렇게 자란 사람이 되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윤기의 삶에 널려있던 고통들을 내가 미처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윤기가 겪어온 고생들을 그 자신이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가볍게 봤던 것 같아 스스로가 창피했다. 그래, 그 나이에 그 정도 감성과 철학이 있으려면.. 그런데 내가 뭐라고. 무엇에 미안한지도 모른 채 그냥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미안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가사가 너무 좋아서 음악에 대한 기술적 지식은 전무하므로 음악에 대한 해석 대신 객관의 말투를 표방하며(-가장하여-) 주관적 감상문을 적어 내려가본다.
어거스트디의 믹테에는 인간 민윤기의 삶이 총체적으로 압축되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다.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되기 전 고등학생 민윤기부터 연습생 민윤기, 방탄소년단으로 데뷔한 이후의 슈가로서의 민윤기까지. '방탄소년단 슈가가 아닌 나의 여러가지 모습 중 하나를 보여주'고 싶다던 그의 말 그대로다.
그를 오래 지켜봐온 팬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그는 그 스스로에게 자부심이 굉장히 높은 사람이다.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고, 그걸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또 그 자신이 내보이는 태도에 배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는 구태여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지만, 자만하며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그저 정확히 자신에게 자신감 있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윤기의 이런 태도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태도는 어거스트디의 믹테에 가장 기본 정서가 되고 있다. 이건 아마 윤기의 삶 전체에 내재된 태도일 것이다. 윤기가 보여주는 모습은 늘 근거있는 자신감이고, 그 자신감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항상 본인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임을 숨기지 않는다. 윤기는 믹테에서도 역시 같은 자세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믹테를 통해 자신이 지나온 삶을 보여주며 정말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가감없이 담아냈다.
어거스트디의 믹테 타이틀인 <Agust D>는 일종의 자기소개와 같은 곡이다. 어쨌든 대중들에게는 방탄소년단 슈가로 더 이름이 알려져 있고, 윤기가 보여주고자 했던 모습은 방탄소년단 슈가보다는 민윤기의 여러가지 모습들 중 하나였으니까. 윤기가 가진 아이덴티티 중 대중들에게(더불어 팬들에게도) 보여준 적 없었던 래퍼로서의 자신을 드러내는 곡이 <Agust D>이다. 또한 윤기가 방탄소년단 슈가와 래퍼 Agust D 사이에서 민윤기에서 슈가로 데뷔하며 겪어야 했던 타인의 시기, 질투, 힐난과 비난 등의 눈총을 결과물로써 통쾌하게 되갚아주는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Agust D>를 꽉꽉 채우고 있는 윤기의 넘치는 자신감이 청자에게 짜릿한 감각을 선사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Give it to me>에서는 데뷔 이후 성공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윤기가 여기서 사용한 표현 방식이 참 눈에 띈다. 흔히 성공의 지표로써 사용되는 상징물들('그게 돈이든 명예든')을 본인이 쟁취한 것으로 표현하기보다 본인은 본디부터 태생이, 타고나길 성공한 사람이니 성공을 나타내는 사회적 지표물들이 알아서 따라오는 것으로 표현했다. 여기서 앞서 얘기한 윤기가 가진 근거 있는 자신감의 자신감과 근거가 동시에 나타난다. 본인은 처음부터 성공할 사람이었기 때문에 '돈, 명예 가져'오라고 명령하면서도 '가족조차 점치지 못했던 성공'에 '나조차도 놀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 성공을 태연히 받아들이는 모습이 대단히 자신감에 차있고, 그에 대한 근거로 '성공한 비법은 몰라도 망하는 비법 잘 알 것 같'다며 '적어도 너네보단 덜 자고 더 움직이며 컸'다는 대답을 놓는다. 윤기가 내비치는 자신감의 근거란 이런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오르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했고, 내가 노력한 만큼 그 대가로써 얻은 것이니 나는 이것들을 당연히 누린다.
이 곡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는 '건드리지마 손도 대지마'인데, 윤기가 건드리지 말라고 지칭하는 대상이 물적(物的)인 것보다는 윤기 본인의 팬들을 말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벅차도록 좋다. 아이돌의 팬이란 때때로 대중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는 그 속성을 정확히 알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 점이 내도록 좋다. '니 손에 든 것을 난 탐하지 않'으며 ‘돈이든 명예든 난 절대 구걸하지 않’지만 다른 건 몰라도 내 팬들은 건들지 마라―는 경고의 표현처럼 느껴져 팬으로서 참 고맙고 좋았다.
<skit>으로 넘어오면 전반적인 곡의 분위기와 내용이 사뭇 달라진다. <Agust D>와 <Give it to me>가 성공한 래퍼 어거스트디로 방탄소년단 슈가는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하는 것이라면, <skit> 이후의 곡들은 본격적으로 그 이면을 이야기한다. 슈가가 되기까지 겪었던 민윤기의 이면들. 본인이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속 깊은 이야기들.
<치리사일사팔>에서 민윤기가 어떻게 슈가가 될 수 있었는지, 고등학생 민윤기와 연습생 민윤기의 삶과 당시의 고민들을 읊고 있다. 혈혈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면서도 악으로 버텨냈던 그 긴 시간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신나는 비트에도 가사가 너무 마음이 아파서 조금 슬퍼졌었다. 내가 슬퍼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동정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일들이지만. 그냥 그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들은 말을 인용하자면, ‘모든 인생들이 한 번씩 겪었을 고생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얘만큼은 안 겪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는데, 아마 이게 정확한 표현이지 싶다.) 과거형을 사용했지만 물론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들을 때마다 같은 마음이다. ‘뭐든 일등 한 번 해봐야’겠단 다짐으로 올라온 서울에서 ‘성공이 궁해? no 난 그냥 돈이 궁해’라는 대답이 나오기까지 윤기가 겪었을 삶의 고단함이 괜히 속상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가장 좋아하는 트랙이 바로 이 5번 트랙이다.)
<치리사일사팔>에서 시작해 <140503 새벽에>와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윤기의 삶의 이면들은 참 정렬이 잘 되어있다. 더 정확하게는 감정의 정렬을 잘 해놓았다고 하는 편이 옳을까. 아마 5번-6번으로 이어지는 곡들은 7번을 듣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힌트 같았던 곡들이라고 이제는 생각한다. 그리고 윤기가 가장 많은 마음과 이야기를 쏟아낸 트랙이 7번 아닐까, 홀로 추측해본다. 데뷔한 이후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아이돌이라는 정체성에 얼마나 많은 방황과 자괴에 빠져 고민을 헤매었을지.
처음 들었을 때는 큰 충격을 받았었고, 내 스스로의 감정을 추스르게 된 이후부터는 가사를 곱씹으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흥탄소년단>에서 ‘나도 날 잘 몰라’라던 가사가 사실은 부모님과 정신과에 상담 받으러 가서 들었던 이야기였구나. 왜 스스로 기요틴에 오르겠다고 한건지. 등등 나는 7번곡을 거듭해서 들으며 7번곡과 대화를 시도했다. 정답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윤기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도 결국 7번곡이 아니었을까 하는 매듭을 얻었다. 윤기가 괜찮다고 했으니 나는 그저 윤기가 말하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7번곡은 구성 또한 참 재밌다. 내용 자체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흔히 1절과 2절의 개념처럼 형식이 뚜렷하게 나누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사와 곡의 진행이 하나가 되어서 그 점이 참 흥미롭게 들렸다. 1부에서는 ‘잘 나가는 아이돌 랩퍼 그 이면에 나약한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2부에서는 그 모든 것을 이겨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미 민윤기는 죽었어’와 ‘기요틴에 올라서 줄게’가 하나로 묶이면서 1부에서의 자신을 윤기는 스스로 ‘내가 죽였’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기요틴에 올라’설 때 함께 낮아지던 멜로디는 점차로 고조되면서 기요틴에 올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연극 효과를 선사한다. 그야말로 곡의 모든 구성이 합을 이루어 명작을 탄생시키는 순간이다.
7번은 무대에 올랐을 때의 구성이나 윤기가 공연하는 모습도 상상이 돼서 한 번쯤 무대에서 보고 싶어진다. 게다가 <마지막>은 마치 모노드라마와도 흡사하다. 곡의 구성 자체도 굉장히 연극적이고, 상연하는 무대 위 배우의 모습이 곧장 연상되는 것이 캄캄한 배경에 핀 조명을 받은 한 명의 배우가 오롯이 독백과 마임으로만 무대를 채우는 모노드라마가 떠오른다. 작업할 때도 이런 마음으로 곡을 썼을까. 그래서 듣는 나에게 이런 이미지가 전달되는 것일까. <마지막>은 윤기의 모노드라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
뒤이은 <so far away>는 그렇게 확고한 꿈을 가지고 자신에 차 있었던 윤기조차 미래에 불안해하고 꿈에 갈팡질팡 했었다는 것을 알게 돼 더불어 놀랄 수 밖에 없는 곡이다. 아니면 모든 20대들에게 윤기가 함께 나누고 싶은 위로였을까. 혹은 윤기가 가장 좋아하는 형에게, 그리고 확장하여 듣는 모든 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사실 가장 하고픈 말이 많았고,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싶도록 했던 건 <치리사일사팔>과 <마지막>이었고, 잘 모르겠는 건 <Tony Montana>와 <Interlude>, <so far away>. 아마 내가 감정이입을 <치리사일사팔>과 <마지막>에 집중적으로 해서 그런 것이겠지. <Tony Montana>를 생각해보면 윤기의 믹테 곡들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반으로 접어 다른 기법으로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듯도 하다. <Tony Montana>와 <Give it to me>가 한 맥락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전공 과제로 시집 한 권의 간단한 평론을 쓰면서 '시집 자체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기승전결을 이루고 있다'는 표현을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윤기의 믹테를 들으며 그때 썼던 이 표현이 다시 생각났다. 윤기의 믹테도 10곡이 한 곡 한 곡의 개별적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내면서 하나의 분명한 흐름으로 기승전결을 이루고 있다. 이대로 앨범을 발매하여 수익을 거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무료로 듣는 것이 억울할 정도로 수준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세트리스트를 짜듯 하나의 완성된 앨범 안에 이렇게 잘 정돈되고 배열이 고른 앨범은 쉽게 찾기 힘들 것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팬이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너무나 잘 만들어져있어서 모두에게 들어보라고 강권하고 다니고 싶을 정도. 한 권의 이야기 집(에세이?)을 잘 읽은 기분이다. 윤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모두 했다하니 감사히 듣기로 했다. 믹테에 지금까지의 모든 ‘민윤기’를 쏟아 붓고 후련하다는 후기까지 들려주었으니 이제 윤기도 마음이 조금 편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고맙다고. 나는 열심히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