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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iley May 27. 2023

BTS, 아이돌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다

2017. 11. 14. 작성

2017년 11월 13일은 그야말로 방탄소년단의 하루였다.

세계적 SNS 중 하나인 트위터에서 한국 최초로 1,000만 팔로워를 기록했고, 국내 유수의 면세점 모델로 발탁되는가 하면, 정규앨범 1집 <DARK&WILD>의 타이틀곡이었던 ‘Danger’의 뮤직비디오가 1억뷰를 돌파하며 총 9편의 뮤직비디오를 1억뷰 영상의 대열에 올려놓는 기록적인 경신을 이뤄냈다.


방탄소년단이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가깝다면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며 오늘의 연이어 터지는 기록들에 방탄소년단이 아이돌 산업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방탄소년단은 그야말로 아이돌산업에서 정말 획기적으로 성공한 그룹이다. 대한민국의 3대 기획사라고 불리는 대형 기획사에서 데뷔를 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그룹도 아니었으며, 엄청난 임팩트로 하루아침에 갑자기 빵 떠버린 것도 아니었다.

데뷔 시절의 조악한 스타일링은 ‘컴싸 아이라이너’라는 별칭과 함께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 놀림 받았고, 아이돌의 스테디, 클래식 흥행 코드인 교복 스타일링은 ‘뜨니까 따라한다’며 아류로 분류되었다. 멤버가 직접 앨범 제작에 참여하고 본인들의 곡을 스스로 써내든 말든 그들의 눈에 방탄소년단은 그저 웬 이름 모를 기획사에서 나와 흥행 코드나 답습하는 색깔 없는(-이는 곧 팬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없음을 뜻했다-) 아이돌이었고, 나름 실력을 인정받았던 랩몬스터(RM)와 슈가조차 그들이 활동하던 필드(언더)에서 음악보다 돈을 좇은 껍데기로 평가 당했다. 그렇게 방탄소년단은 데뷔하던 때부터 인지도를 얻기 전까지 대중들, 아니 아이돌 팬들이 이룬 서브 컬처 팬덤 안에서 메이저로는 영영 오르지 못할 2군 아이돌이었으며 그 어느 누구도 방탄소년단이 이런 대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측하지 않았다.


1. ‘음악’이라는 기본에 충실하다

방탄소년단은 회사의 많지 않은 자본 사이에서도 음악적으로는 확실하게 지원을 받았고,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아래에서 본인들도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음악을 해왔다. 바로 이 음악적 지지와 지원이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만드는 가장 기본 바탕이 되었다.


아이돌은 기획력 싸움이다. 아이돌은 마음 맞는 멤버들이 모여 팀을 이룬 것이 아니라, 오디션을 통과한 개개의 연습생들이 회사가 기획한 이미지에 맞게 팀으로 짜인다. 당연히 회사의 기획력에 따라 팀의 성패가 갈린다. 이뿐만 아니라 ‘운’때도 맞아줘야 스트라이크가 나온다. 탄탄하고 잘 만들어진 팀의 스토리(기획)에 팀 구성원이 가진 실력과 서브 컬처의 한 갈래로 자리 잡은 팬덤의 니즈가 행성 일렬로 자리를 맞췄을 때, 그때 잭팟이 터지는 겜블이 아이돌산업이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아이돌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던 ‘기획력’이 ‘음악’이라는 본질에 못 미친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방탄소년단의 초기 기획을 보면 ‘10대와 20대를 대변’한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빈약해 보이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는 힘없어 보였던 추상과 빈약이 공백이라는 공간적 의미로 기능해 방탄소년단이 가지고 있던 무한의 가능성을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고, 멤버들은 공백이라는 공간에 10대와 20대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꾸준히 채워 넣어 그룹의 추상적 기획을 스스로 실현해내는 그룹이 되었다.

음악을 만들어내는 당사자들이 10대이던 시절에는 10대를 주 타겟층으로 설정해 10대에 하는 고민과 감정들을 이야기했고, “학교”를 졸업한 뒤 20대가 된 방탄소년단은 학교 밖에서 마주하게 되는 성장의 불안을 노래했다. 방탄소년단이 노래한 이야기들은 ‘나의 이야기가 곧 너의 이야기’가 되어 청자들로 하여금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여기까지 오고 나서야 구심력이 약해보였던 방탄소년단의 기획력은 실상 지속가능한 스토리였음을 알게 된다. 물론 그룹 자체의 스토리가 탄탄해지는 데에는 본질이자 곧 수단인 음악이라는 기본이 있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기본에 집중하고 꾸준히 가꾼 방탄소년단은 어느 새 큰 나무로 훌쩍 성장했다.



2. 주어진 플랫폼의 영리한 활용

얼마 전 빌보드뮤직어워드에서 탑소셜아티스트상을 받았을 만큼, 트위터 천만 팔로워라는 숫자가 무색하지 않게, 총 9개의 유튜브 1억뷰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 답게 방탄소년단은 시대에 맞게 주어진 플랫폼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영리함을 가지고 있다.

트위터, 유투브 계정을 비롯하여 다음 카페, 네이버 V앱, 페이스북 등 방탄소년단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종류가 다양하다. 어느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고 각 플랫폼은 멤버들과 회사가 만들어내는 컨텐츠 별로 성격에 따라 활용된다.


가장 활용이 두드러지는 트위터는 멤버 7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며 틈틈이 셀카/이미지/단문 등이 올라오고, 멤버들이 팬들과 은밀하게 대화하거나 오픈형 SNS인 트위터에서는 미처 다 꺼낼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자 할 때는 공식 카페의 멤버 전용 게시판을 활용하고(멤버 전용 게시판 외에도 멤버들은 카페 내의 여러 게시판을 이용한다), 유투브를 통해 공식적으로 유통될 뮤직비디오나 홍보 영상 외에도 자체 컨텐츠들이 올라오고(방탄밤, 에피소드, 로그 —여담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컨텐츠는 로그이다), V앱에서는 네이버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예능 컨텐츠들을 제작하여 업로드한다. 페이스북이 가장 활용도가 낮지만 결코 소홀하지 않고 멤버들의 생일, 방탄소년단의 데뷔일 즈음에 축하를 위한 컨텐츠들이 업데이트 된다.

어디 이 뿐인가. 데뷔 전부터 이용해온 사운드클라우드에는 멤버들이 오피셜에서는 공개되지 않는 자신의 작업물을 업로드해 팬들과 그 내용을 공유한다. 멤버들에게는 팬들의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팬들에게는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또 다른 작업물을 볼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방탄소년단과 회사는 각자가 나서야 할 타이밍을 알고 각 컨텐츠와 주어진 플랫폼의 성격에 맞춰 창구를 운용하며 스타와 매니지먼트사 간의 균형을 이룬다. 이를 통해 멤버들은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팬들은 스타와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 스타에게 더욱 집중하게 되는 선순환이 지속된다. (물론 팬들 중 어떤 이들은 그 거리감을 지나치게 가까이 느낀 나머지 방탄소년단을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핸들링할 수 있다고 믿기도 하는 부작용이 있다.)



3. Based on KOR

방탄소년단은 처음부터 해외 진출을 노리고 데뷔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말 그대로 본인들에게 주어진 것을 ‘열심히 하다보니’ 해외에서의 반응이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잡는 영민함이 있었다.


빅히트는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국내 활동에 절대 소홀히 하지 않는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상을 받고 금의환향을 했던 순간에도 앞으로의 향후 활동에 대한 질문에 지금처럼 국내에서 앨범을 만들고 활동을 하고 기존에 하던 그대로 자신들의 일을 해나갈 것이라는 리더의 대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고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까지도 유효하게 남아있다. 모든 아티스트들은 더 큰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활동하길 원한다. 그걸 방탄소년단이 해냈는데, 그들은 여전히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겠다는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활동했다.

활동기간이 짧더라도 국내에서 앨범을 발매하고, 한국 방송국의 음악 방송에 모두 출연하며 투어의 시작점은 언제나 대한민국 서울이다.

팬클럽 혜택에는 세계적으로 성장한 지금에도 변동이 없고 꼬박꼬박 정해진 기한동안 팬클럽 혜택을 부여했다가 종료되면 다시 또 모집하는 형식을 고수하고 있다. 한 기수쯤, 그리고 아예 팬클럽을 모집하지 않아도 명성은 쉬이 잦아들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법도 한데 말이다.


이게 방탄소년단이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자랄 수 있는 근간이다. 가수가 한국인이므로 한국에 거점을 둬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국내 아이돌 팬덤이 여타 해외 케이팝 팬들보다 아이돌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국내 팬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는 빅히트의 대응은 팬들의 만족도를 고취시켜 결과적으로 국내 팬들의 이탈을 막는다는 것이다.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이 들으면 나의 일종의 자의식 과잉쯤으로 여기며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국에서 성장한 아이돌은 국내팬이 흔들리고 그 팬덤에 이탈자가 많아지면 결과적으로 작은 균열이 큰 파장을 만들어내 팬덤을 무너뜨릴 수가 있다. 빅히트는 이 사실을 아주 똑똑히 알고 있다.


더불어 방탄소년단은 북미 시장에서 이뤄낸 성과의 발원지를 곡에서 찾지 않았다. 데뷔 때부터 계속해온 본인들의 이야기가 전세계적으로 통했던 것 같다며 앞으로도 지금과 같이 본인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했다.

내가 북미 시장에서 열풍을 이뤄낸 싸이와의 비교를 거부하고 ‘포스트 싸이’로 부르는 것에 불쾌감을 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 이후로 하나같이 강남스타일과 비슷한 곡들을 발표했다. 강남스타일이 아닌 노래들에서 강남스타일이 보였고, 이는 곧 북미 시장을 의식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청자의 입장에서 강남스타일과 비슷한 후속곡들은 미국에 저자세적인 느낌이 들었고 냉담한 관객 앞에서 봐달라고 몸부림치는 퍼포머 같았다.

싸이가 당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 성공을 이뤄낸 시점에서의 태도로 드러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빌보드 수상 이후로 나온 곡은 이전에 발표했던 곡들과 멜로디라인, 곡의 분위기, 안무, 가사 등 모든 구성이 달랐고 인터뷰에서 대답했던 그대로 지금껏 해오던 것을 평소와 같이 열심히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늘, AMA에 참석하러 가는 지금에도 방탄소년단은 평소와 같이 지금껏 해오던 대로 하고 있다.



글머리에서 언급했듯 방탄소년단은 단숨에 스타의 자리에 오른 케이스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 조바심 내지 않고, 묵묵히 자리에서 한 계단, 한 계단 다져가며 쌓아 올라갔고, 그 결과는 오늘날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

지금의 방탄소년단을 보며 나는 아이돌산업이 바라보아야 할 방향성을 찾았다. 아이돌 산업에서 매니지먼트사들은 국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와 인기를 획득하면 해외 진출을 감행했고 해외 활동에 집중하느라 국내 팬들을 홀대했다. 이 수순은 관례로써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해외팬들이 달러와 엔화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해외팬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을 주었다. 달러와 엔화가 한화보다 ‘돈’이 되므로 이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은 이 모든 관례와 당연한 생각들을 당연하지 않게 여겼고, 꾸준히 기본에 충실함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결과는 뭐 보시다시피.


아류로 폄하 당하던 이들은 이제는 모두가 좇아하는 그룹이 되었다. 방탄소년단이 하면 화제가 된다. 트위터에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좋은 음악이 재생목록으로 뜨면 단번에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고, 그들이 읽는 책은 서점가에 베스트 셀러로 자리잡는다.

방탄소년단은 혼자 크지 않는다. 이들로부터 여러 문화적 자양분을 받은 팬들도 함께 성장한다.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고 발전해 나간다.


언젠가부터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은 강산이 옷을 몇 번 갈아입으며 바뀐 사회구조 덕분에 사장된 관용구가 되었다. 방탄소년단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는 오랜만에 사장된 관용구를 꺼내오고 싶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방탄소년단은 처음부터 어린 용이었고 아무도 용을 알아보지 못했었다는 것 정도가 될까.


아이돌 산업이 당장 바뀌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으며 이후에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같은 아이돌이 나올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방탄소년단은 분명히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가지고 있던 한계를 깼고, 깨고 있으며, 앞으로도 깰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그 나름의 성공 요인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본 글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매니지먼트사인 빅히트에는 아이돌 산업이 배울 것이 많아 열거하고 싶었지만 큰 줄기 몇 가지만 일단 나열했다. 본 글에서 작성하지 못한 내용은 차후 기회가 될 때 다시 한번 작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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