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가족들로부터 홀로서기
때론 가족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고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책 '변신'은 말합니다.
카프카는 자신의 책 '변신'을 통해 가족으로부터 해방을 그리고 있습니다. '변신'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근면 성실하면서 성공한 세일즈맨인 그레고르가 어느 날 벌레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변신'은 가족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관념을 깨고, 현실을 바라보게 합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마 사랑, 행복, 안정, 집밥,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곳 등일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 자신을 억압하는 관계도 될 수도 있습니다. 카프카처럼 말입니다. 카프카의 성장 환경은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이었을지 모르나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가 쓴 '아버지께'라는 글을 보면 아버지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하면서 닮고 싶은 대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 다른 자신이기에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버지께"라는 글에서 카프카는 자신이 성장하면서 느꼈던 폭력들, 아버지의 이중성, 위협들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버지는 가게에서 폐병을 앓고 있는 종업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 자식은 죽어야 해. 폐병쟁이 개새끼.” 아버지가 종업원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은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들었고,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집안의 폭군인 아버지에게 인정과 사랑을 바랬지만, 아버지는 한 번도 그를 인정한 적이 없고, 늘 구박하기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그는 대학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화학과에서 법학과로 전과하고, 그 당시 최고 인기 직업인 보험관리 직원도 되지만, 여전히 아버지는 자신에게 냉소적이며 위협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자신이 원하는 작가로서 글을 적어 아버지께 보여주자, 아버지는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었지만, 결국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카프카에게 조금의 애정과 관심도 없었고, 돈에만 관심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카프카는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의 모습을 처음 본 가족들의 반응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쓰러지고, "아버지는 증오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주먹을 쥐었다", 여동생은 놀라서 어쩔 줄 몰라 문을 닫았다.
자신의 아들이 벌레로 변했다 하더라도 증오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주먹을 쥘 아버지는 있을까요? 보통 예상되는 반응은 "그레고르 야 내 아들아, 내 아들 맞아, 왜 이렇게 됐어?" 징그러워도 벌레에 다가가 자신의 아들이 맞는지 확인을 할 법도 하건만 카프카는 그레고르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을 "증오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주먹을 쥐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를 낳아주고, 어렸을 때는 나에게 하늘이었고, 전부였던 아버지가 증오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주먹을 쥔 모습을 본다면, 그 충격은 내가 서 있는 지반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왜 분노했을까요? 변신의 스토리를 볼 때 아버지 자신이 누리는 일상생활의 편안함이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함을 통해 산산조각 났기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실제 카프카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파산한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마 자신이 이전에 파산했을 때의 그 막막함과 절망감, 실패감을 다시금 그레고르로부터 느꼈고, 그렇게 만든 그레고르에게 "증오심에 불타는 눈빛으로 주먹을 쥐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증오심 가득한 아버지가 던진 사과로 인해 그레고르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자신을 길러준 아버지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부모님과 여동생을 위해 이렇게 훌륭한 집을 마련한 자신이 대견했다"라는 문장을 통해 보여줍니다. 즉, 그레고르는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자신을 훌륭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훌륭한 집을 마련해 준 그에게 가족들은 처음에는 감사를 했을지라도, 곧 익숙해져서 당연한 듯이 느끼는 것을 말하며 씁쓸해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잘해 주었던 여동생 그레테에게 그녀의 꿈인 음악학교에 보낼 계획을 준비하며, 크리스마스날 선물로 발표할 생각에 그레고르는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벌레로 변신했다는 것을 믿고, 세심하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방을 청소해 주던 그녀는 180도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레테가 점원으로 취업을 하고, 점점 그레고르에게 관심이 멀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카프카는 그레테가 자신의 부모님과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결국 그녀도 자신을 돈으로 보는 부모님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레테가 하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켜고 있을 때, 그 음악소리에 취한 그레고르가 기어 나왔고, 하숙생들은 기겁을 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숙비를 밀린 하숙생에게도 쩔쩔매는 온 가족을 봅니다. '변신'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늘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그때 테이블을 세게 치면서 말한다. "이 짐승은 오빠가 아니에요. 이쯤에서 없애 버려야 한다고요."
그레고르가 집안에서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벌레가 그레고르라는 가족들의 믿음인데, 그것을 자신이 가장 아꼈던 여동생 그레테가 과감히 끊어버립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곧 그에게 사망선고가 됩니다. 벌레는 없어져야 한다는 말처럼 말입니다.
너는 우리 가족이 아니라 벌레라고.... 벌레는 없어져야 하는 짐승이라고...
덧붙여 말하면, 그레고르가 바이올린 음악에 심취하여 나왔을 때 이 일이 일어납니다. 슬프게도 벌레가 벌레의 존재를 넘어서 음악을 좋아하는 모습이, 그리고 처음으로 두려움이 아니라, 가족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려는 것이 아니라,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가 좋아서 스스로 문지방을 넘어서 거실로 걸어가는 길은 사망의 길로 묘사됩니다. 벌레로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가족들 안에서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숙생들이 계약을 끝내는 것을 의미했고, 가족들에게는 자신들의 경제적 안정이 붕괴되는 것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이 그레테로 하여금 사망선고를 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레고르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은 가족들에게는 벌레조차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요?
즉, 가족들이 바라는 것은 자식으로서, 오빠로서 경제적인 책임을 다하는 것, 그 이상의 모습은 필요 없다는 것이며, 그것만이 자식으로, 오빠로서 인정받는 길임을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카프카는 그 바이올린 소리가 글을 쓰는 것이고, 그 길이 진정 자신이 원하는 모습인데, 가족들이 그것을 반대하는 것을 이 대목이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카프카는 벌레에게 유일하게 말 걸어 주는 상대를 한 명 만들어 둡니다. 그는 잠자 집안의 가정부였습니다. 그녀도 그를 벌레 취급하지만 말을 걸어주고,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하며, 최종적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하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자신의 사망을 객관적인 제삼자가 증명을 하여 완전히 사망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인의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레고르의 사망은 가족들로부터 완전한 단절을 보여 줍니다. 더 이상 가족들이 만들어 놓은 장남으로서 오빠로서 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닌 돈을 벌어오는 도구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것을 끝내겠다는 표현이 아닐까요?
작가는 가족들에게 버림받았지만, 가족을 버리지 못한 결말을 보여줍니다. 부모님과 여동생은 앞으로 미래를 새롭게 살아갈 희망을 그립니다. 자신을 벌레처럼 취급한 가족들에게 복수를 할 법하건만, 그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습니다.
그들의 행복 안에는 그레고르는 없습니다. 그레고르에 대한 애도도 없습니다. 정말로 자기 자식이 벌레가 아니었다고 믿는다면 그레고르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에 대한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꿈꾸는 모습을 그리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카프카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결말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카프카는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수많은 시간을 공부하며 대학교에 가고, 법학과를 나와 졸업을 하고, 그 당시 최고의 직장인 보험회사에서 취업을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카프카는 그것을 다 해는 것을 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가족이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는 게 더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변신'에서도 그레고르는 여동생 그레테를 음악학교에 보내기 위한 재정계획을 꼼꼼히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이런 연유로 인해, 나는 카프카가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가 사망을 통해 진정으로 자신을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감 때문에 가족들이 만들어 놓은 '나'에 대한 족쇄를 스스로 벗어나서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벌레가 됨으로써 가족들이 자신을 버림을 통해 수동적으로 그 족쇄를 벗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벌레로 변신하여 버림받아 죽는다는 것이 남들에겐 끔찍하며, 두렵고, 상상하기 싫은 것이지만, 카프카에겐 자유요, 해방이요,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닮고 싶었고, 하지만 학대당했던 카프카, 장남으로서 오로지 경제적 책임감만 강조되는 가정에서, 하지만 그것 마저도 하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과 절망이 그로 하여금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삶을 살도록 했지만, 이제는 그것을 완전히 끊어내고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아가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그의 책 '변신'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진정한 홀로서기는 가족들의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에 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족들로부터 홀로서기를 위한 질문을 생각해 보았다.
질문 1: 부모로부터 강요받은 나의 역할, 직업, 의무가 있다면 적어보자.
질문 2: 질문 1의 의무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성찰해보고, 원하지 않을 경우, 그 이유에 대해서 성찰해보자.
질문 3: 가족들로부터 주어진 의무들이 건강한 자신의 삶에 방해가 된다면 어떻게 그것들을 깨트릴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질문 4: 위의 질문들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가족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