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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와 나: 낯선 공간과 존재가 만나다

프롤로그: 사랑 연습하기 - 자신편

by 싱클레어

페이지: 싱클레어 님 안녕하세요. 봄 향기가 물씬 풍기는 날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싱클레어: 안녕하세요. 페이지님, 토론토에도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고, 기다리던 봄날에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페이지: 싱클레어 님이 "토론토와 나"란 주제를 가지고 매거진을 시작하시려고 하는데, 어떤 배경에서 이 주제를 선택하게 되셨나요?


싱클레어: 우선, 브런치에서 매거진은 처음이라 긴장됩니다. 회사 다니면서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글을 좀 더 많이 써야 글쓰기가 향상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매거진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평소에 "이민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았어요.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하다 저는 이민 혹은 해외 생활이 낯선 곳과 나의 존재가 만나는 공간에서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토론토와 나: 낯선 공간과 존재가 만나다"라고 정하였습니다.


페이지: 이민생활 잘하는 것과 "사랑 연습하기 - 자신 편"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데 그 이유를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싱클레어: 네. 잘 보셨습니다. 이민생활 잘하는 것과 "사랑 연습하기"는 언뜻 보기에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저는 이민생활 13년째인데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 주셨어요. "해외에서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까요? 한국보다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나요? 이민을 준비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저는 이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처음에는 이민생활의 많은 정보를 주었어요. 이런 실제적인 정보들이 도움이 되었지만 이민생활을 잘하는 것에는 조금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습니다.


제 자신을 봐도 시간이 지나면 잘 적응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늘 제 마음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식물처럼 정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현재 살고 있는 이 공간과 시간을 사랑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사랑 연습하기 - 자신 편"이란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페이지: 싱클레어 님은 이민생활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한 해답으로 "사랑 연습하기"란 주제를 선택하셨군요. 어떻게 해서 그 고민에 대한 답으로 "사랑 연습하기"란 결론이 나왔을까요? 흥미로워요.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주실래요?


싱클레어: 네. 물론이지요. 먼저 제가 경험했던 이민 생활과 장기간의 해외 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민자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민 생활이 즐겁고 행복하기보다는 힘들고 지쳐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일 거예요. 이민생활이 왜 힘들까요? 저는 그 이유가 여러 가지가 많지만, 가장 큰 이유가 관계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살게 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한국에서의 관계들이 단절되기 시작하죠. 한국에서 속했던 회사에서의 관계들, 학교 선후배들과 동창들, 친구들, 가족들과의 소통이 조금씩 힘들어지죠.


우선 시간이 맞지 않고, 생활환경이 너무 달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받기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이민 가서 힘든 점을 말하면 "네가 결정해 놓고 힘들다고 그러면 안되지. 한국은 더 힘들다." 등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기에 해외에서 이민 생활은 멋져 보이는데 그 정도 고민은 당연한 거라 생각하지만, 여기서 느끼는 고민들은 때론 너무 힘들거든요. 이런 이해 차이 등으로 인해 이민 생활의 고민들을 속시원히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캐나다 이민문학집에 실린 이석현 시인의 '망향'이란 시는 이민자들이 느끼는 정서를 정말 잘 표현한 것 같아요.



망향

이석현


토론토에 비 내리는 저녁

공원 벤치에

촉촉이 어둠에 젖는 나그네


둘러선 고층 아파트의 창문마다

가족들의 훈훈한 체온이

등불을 밝히는데,


실어증을 달래는 나그네의 이웃은

무수한 불빛들에 밀려난 외등뿐이다.


나뭇잎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와

스쳐가는 전차가 남긴 울림은

주독이 든 눈으로

흐린 하늘에 별을 찾는 몽유병을

현실로 굳혀 준다.


토론토에 비 내리는 밤

공원 벤치에 화석이 된 나그네는

비안개 속에

무국적이 되고 만다.


페이지: 망향이란 시가 가슴이 아려오면서 이민생활의 힘든 마음을 잘 표현한 것 같아요. 한 가지 질문이 생기는데요. 새로운 환경에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면 되지 않을까요?


싱클레어: 네 맞습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관계가 만들어진다면 훨씬 수월하게 정착할 수 있겠죠. 현지인들과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를 구분해서 말하자면, 현지 사람들의 관계는 좋은 이야기만 하는 약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관계이기에 자신의 내면의 힘든 이야기를 하면 처음에는 상당히 깊은 관계로 발전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부담스러워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현지 사람들은 개인의 힘든 부분을 상담에 많이 의존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하고의 관계는 저는 지뢰밭이라고 생각해요.


페이지: 지뢰밭이라고요? 왜 그런지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싱클레어: 네. 저는 "죽마고우" 혹은 안전한 관계란 "나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어도 상대방이 불편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민사회에서의 관계란 서로 스트레스가 많고, 서를 이해해주고 알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빨리 상대방이 나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해주고,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수용성이 큰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관계에서 상대방의 현재의 이야기의 맥락은 그 사람의 과거의 이야기를 들어야 이해가 잘 되죠. 따라서 한 사람과 안전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의 의미 있는 이야기들과 공감들이 형성될 수 있는 시간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과 기다림은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관계에 대한 목마름 때문에, 서로 간의 신뢰와 안전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에 이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찾으려고 하니 서로 맞지 않다고 생각하죠. 마치 자판기처럼 버튼을 누르면 내가 원하는 것이 1초 이내에 나오는 것처럼요. 이런 상황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과 만났을 때, 내가 의미하는 맥락과 상대방이 의미하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오해가 많이 생기고, 나의 어떤 말이 상대방의 빨간 버튼(내면의 상처를 건드리는 말)을 누를지 알 수 없기에 조심해야 하고, 그렇게 조심하다 보면 만남이 재미가 없죠. 그래서 아주 얇은 대화를 하며 웃고 떠드는 것밖에 없는 만남이 되어버려요. 이런 만남이 지속되면 늘 외롭죠.


페이지: 네. 그렇군요. 하지만 가족이 있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싱클레어: 네, 그렇습니다. 가족이 있다면 혼자 있을 때보다는 낫겠지요. 하지만 이민생활의 가정환경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교육 문제와 생활의 여유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부모들은 부모들대로 바쁘고, 아이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들을 만들고 적응하느라 바쁜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서로가 함께 진솔하게 마음을 열어 나누는 대화의 시간이 생각보다 훨씬 적어요. 여유 있는 삶을 위해 이민을 왔는데, 그런 대화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되죠. 그리고 한국에서보다 더 이민생활에서 아이들과의 소통이 더 어려워집니다.


중고생의 아이들은 부모님하고 자신의 미래와 생활에 대해서 서로 대화하고, 의사 결정을 할 때 부모님이 함께 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부모님과 아이들이 서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이런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부부관계 이외의 사회생활에서의 안전하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한데,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부관계에 더욱 집중하게 되죠. 한국에 있을 때는 직장에서의 동료,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 등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나를 지지해 주었는데, 그런 관계들이 사라지면서 부부관계에 너무 많이 집중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럴 때 부부관계가 좋다면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부부관계에서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못한다면 서로의 기대치는 높아만 가고, 그로 인한 실망감도 더욱 커지고, 이런 악순환으로 인해 집이 안전한 공간이 아닌 스트레스의 공간으로 바뀌고, 심하면 가족 관계가 파괴되어 버리는 경우까지 생깁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민 와서 이혼하는 경우가 통계에 안 잡히지만 상당히 많습니다.


페이지: 참으로 안타깝네요. 가족과의 시간을 더욱 많이 갖고, 삶을 누리기 위해 이민을 왔는데 그 모든 것이 깨어져버리는 경우가 많다니 씁쓸합니다. 결국 이민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관계를 어떻게 잘 만들어 가느냐가 핵심일 수 있겠네요. 어떻게 하면 이민생활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싱클레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민생활은 기회다. 어떤 기회이냐면, 한국에서 사회적 위치와 가족관계에서의 역할들로 가려져 있던 자신의 모습과 가족 관계에 온전히 집중해 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를 통해 나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즉 나와 배우자, 자녀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더욱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인 것이죠.


페이지: 이런 기회들을 어떻게 잘 살릴 수 있을까요?


싱클레어: 이에 대한 해답을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더불어 가족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해야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커지고, 다른 사람들과 신뢰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지속적인 만남과 시간을 인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들어 가다 보면 어느새 이민생활이 행복한 생활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페이지: 그럼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뭔가요?


싱클레어: 현재 이 공간, 토론토에서 이 시간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나의 삶의 공간인 토론토가 내 삶의 일부가 되고, 나도 토론토의 일부가 되어, 이 공간과 시간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시간과 공간으로 바뀐다면 나 자신의 삶은 의미가 있어지고, 곧 그것이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요?


페이지: 네,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이민 생활에 대한 고민 때문에 싱클레어 님이 낯선 공간인 토론토를 나의 삶의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을 "사랑 연습하기- 자신 편"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이었군요.


싱클레어: 네, 그렇습니다.


페이지: 그럼 앞으로 메거진은 어떻게 진행하실 예정이세요?


싱클레어: 저는 12가지 질문을 가지고, 토론토의 삶을 누리려고 합니다. 페이지님이 함께 해주시겠어요?


페이지: 네, 물론이지요. 저는 어떻게 싱클레어 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지 기대가 됩니다.


싱클레어: 감사합니다. 페이지님, 우리 함께 "사랑 연습하기 - 자신 편"으로 이 공간과 시간을 사랑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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