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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복수

여우와 두루미의 저녁식사

by 싱클레어




여우와 두루미


두루미가 여우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치밀하게 계획된 저녁 식사였다. 여우를 초대하기 위해 S 브랜드의 호리병을 구입하였다. 두루미는 이 호리병을 구하기 위해 여러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호리병의 입구에 자신의 주둥이를 넣어보았다. 음식을 먹기가 적당한지 재어본 것이었다. 마침내 음식을 우아하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호리병을 찾았다. 이 호리병은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으로 유리의 투명도가 굉장히 뛰어나고, 입구의 지름은 10 cm이고, 목 부분의 지름은 7 cm로써 잘록하게 되어 있고, 입구와 목의 길이는 10 cm, 전체 길이는 38 cm였다. 가장 큰 장점은 호리병의 두께가 0.35 cm라서 여우의 힘으로는 깨뜨리는 것이 불가능한 튼튼함이었다.


두루미는 저녁 식사에 여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저녁을 준비했다. 메뉴는 기름에 참조기를 튀겨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참조기 생선구이였다. 호리병에 참조기 구이를 넣고, 참조기의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조리용 나무막대로 고정시키고, 바닥에 베트남 산 피쉬소스(fish sauce)를 5 mm 정도 채워 참조기가 바다에 뛰어드는 형상을 표현하였다. 거기다가 꼬리 부분을 휘게 만들고, 호리병 목 부분에 걸쳐 놓아 생동감 있는 참조기의 움직임을 구현하였다. 고수와 채썰은 당근을 피쉬소스 위에 얹어, 참조기에서 올라오는 생선 냄새와 잘 어울려 감칠맛 냄새가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나듯 피어오르게 만들었다.


예전에 여우가 자신을 초대한 후 아주 잘게 썰어 넣은 전복죽을 접시에 담아내어 왔던 불쾌함에 대한 복수였다. 혀가 없는 두루미는 접시에 머리를 아무리 비벼도 전복죽을 먹을 수가 없었다. 날개로 접시를 잡을 수도 없었다. 결국 머리가 온통 전복죽으로 뒤집어쓴 치욕스러운 식사였고, 우아한 삶을 살아왔던 두루미 인생 최대 흑역사였다.


두루미가 전복죽을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는 초대받은 손님은 맛이 없더라도 먹는 것이 예의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음식을 먹지 않으면, 옹달샘 마을에서 추방당하였다.


두루미는 호리병 참조기 생선구이를 내어 왔다. 여우는 호리병에서 풍겨오는 참조기 구이의 감칠맛 냄새에, 그리고 호리병에 담긴 자신에 대한 두루미의 섬뜩한 마음에 정신이 어질어질하였다. 여우는 정신이 번쩍 들게 두 앞발로 자신의 볼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어머, 이렇게 귀한 참조기를! 너무 감사해요. 마치 예술 작품 같아서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걸요. 아~ 이 향긋한 냄새는 뭐람! 집에 가서 자린고비처럼 천장에 호리병을 매달아 날마다 두루미님의 호의를 기념해도 될까요?"


두루미는 여우가 피해 갈 수 없도록 외통수를 두었다.


"여우님을 위해서 이 음식을 만드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지 뭐예요. 여우님이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기쁠 것 같아요."


여우는 있는 힘껏 자신의 혀를 내밀어 호리병으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참조기의 꼬리 끝부분에 닿을까 말까 하였다. 아무리 용을 써도 혀는 호리병만 핥고 있었다.


"핥ㅌ..핥ㅌ..핥ㅌ..핥ㅌ.."


두루미는 그 모습을 보니 통쾌하였다. 하지만 꾀돌이 여우는 수없는 시도 끝에 마침내 참조기를 먹고야 말았다.


호리병에 숨을 '훅' 불어넣어 몇 번의 시도 끝에 고정 막대를 제거한 다음, 병을 흔들어 피쉬소스에 참조기가 흠뻑 젖도록 만들었다. 호리 병목에 꼬리가 막혀, 피쉬소스를 가득 머금은 참조기의 살들은 병을 흔들자 뼈에서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마치 칵테일을 만드는 것처럼 위아래로 흔들자 발려진 살코기는 더욱 잘게 부서졌다. 복식 호흡으로 폐에 가득히 숨을 채운 여우는 강하게 '훅'하며 꼬리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참조기의 살코기를 호로록 먹었다.


복수에 우아함을 담고자 호리병에 바다에 뛰어드는 참조기를 상상하며 만들었던 두루미의 생선구이. 피쉬소스만 없었더라면 두루미의 복수는 성공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아함이 없는 두루미란 상상할 수 없기에, 두루미에게 복수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일까?







커버이미지:https://pixabay.com/ko/photos/%ED%81%AC%EB%A0%88%EC%9D%B8-%EC%83%88-%EB%82%98%EB%8A%94-499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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