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을 벗고, 나를 입다] 제9화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건네는 미소

by Sinclair

새하얀 달빛만이 눈이 부시게 빛나던 새벽 두 시의 해안가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불빛을 비춰주던 등대 몇 개와 규칙적으로 철썩이는 차가운 파도 소리만이 제 주위를 채웠습니다. 해안소초에서 야간 경계 근무를 서던 그토록 고독하고도 적막했던 그 시간에 시선을 저 먼바다 끝 수평선으로 옮기며 제 자신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진짜로 행복할 수 있을까?


졸음이 쏟아지던 시간이었을까요? 막연하게 느껴졌던 그 질문에 답을 찾던 중 저도 모르게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찬 바람을 맞으며 지그시 눈을 감으니,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새하얀 백발의 노인이 된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흔히 상상할 수 있는 현자처럼 보였고, 그 노인은 무척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백발노인의 방에서 발견한 것들


상상 속 그 노인의 얼굴에는 마치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만족과 평안이 가득한 미소가 보였습니다. 점차 상상의 나래는 구체적인 그림을 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인의 등 뒤에 펼쳐진 건 흔히 말하는 휘황찬란한 대저택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작은 마당이 있고 따스한 볕이 잘 드는 그런 소박한 시골집이었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편이 조용히 따뜻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의 손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고급 세단의 열쇠 대신, 긴 세월을 함께 하며 풍파를 겪은 듯한 곱게 늙은 어느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꼬옥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 노인의 아내 말고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눈시울이 시큰해졌습니다.

소박한 시골집 현관으로 들어가 방으로 향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책장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어 낸 화려한 훈장이나 트로피가 아닌, 평생 곁에 두고 수십 번은 읽은 것처럼 보이는 낡은 책들로 가득했습니다.


제가 상상한 제 미래의 그림은 그리 자극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의 따스한 온기가 이곳저곳에서 묻어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책과 함께 웃음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상상의 나래로 그려낸 그림이 제 내면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바라고 있던 '진짜 성공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비로소 선명해진 현재의 걸음


그렇게 처음으로 제 미래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려봤습니다. 그러자 현재 제가 걷고 있는 이 길 속에서 앞으로 내려야 할 선택들에 대한 확신이 느껴졌습니다. 흔히 잘 나가는 선, 후배들이 말하는 장교로서의 '엘리트 코스'를 위해서는 밤낮없이 일만 하며 진급을 좇아야 했고, 그 대가로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은 방금 제가 상상했던 '행복한 노인의 삶'과는 정반대의 길이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도 어려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쉽게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년 뒤, 2년 뒤가 아니라, 아예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보면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도 명확해졌습니다.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 그 점을 이어 인생의 선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마지막 점 하나를 찍고 그 점과 지금의 삶을 이어가는 반대의 방법도 필요했습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여유가 생기면" 진짜 내가 원하는 걸 해야지.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내뱉는 이 말이 제게는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 상상 속의 백발노인이 그토록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어느 날 갑자기 성공이 찾아와서가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제가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미래로 미루지 않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착실하게, 그리고 주체적으로 살아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미래는 어떤 미소를 짓고 있나요?


여러분이 오늘도 바쁘게 내딛고 있는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눈을 감은 채 인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 노인은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어떠한 표정을 짓고 있나요?


바로 그 노인의 평온한 미소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주체적인 삶의 정답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세상이 만들어놓은 성공한 기준에 맞추느라, 정작 미래의 여러분이 뼈저리게 후회할 선택을 지금 이 순간 고민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드시 확인해 보세요.


[다음 화 예고]


저만의 가치관과 미래의 청사진을 그렸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높았습니다. 9년의 군 생활을 뒤로하고 사회로 한 걸음을 내딛기 전의 두려움, 그리고 그 두려움을 깨부순 무모한 시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제10화. 완벽한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는 용기'

작가의 이전글[군복을 벗고, 나를 입다] 제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