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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clair Jul 26. 2016

S전자, 반바지 허용에 대한 小考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사실 여러 해 전에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에 프리랜서로 오랫동안 일을 했을 때, 요즘처럼 후텁지근 했던 여름날 한 번은 흔히 말하는 쪼리(가락신), 플립플랍(Flip-Flop)을 신고 출근을 했다. 예상했던대로 출근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출근 복장을 문제 삼은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어느 부서냐고 물어서 여기 직원이 아니라 프리랜서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누구냐 묻고 곧이어 갈아 신을 다른 신발이 있냐고 묻길래 이 쪼리가 당신이 신고 있는 구두 보다 비쌀거라고 대꾸해줬다. (젝힐슨, 아주 큰 맘먹고 300달러 가까이 주고 산 발리 제품이였다.) 결국 나 대신 위에 불려 갔던 담당 대리는 내게 와서 제발 나오지 말고 강의실에만 계세요. 저는 처자식이 있어요. 라고 부탁했다.










얼마 전에 위암으로 돌아가신 지도교수님도 하셨던 말씀이었지만 대학 시절 나는 그다지 튀는 패션을 지향하지않았다. (지금은 왜 이 모양이냐?) 그저 깔끔하고 깨끗한 옷을 균형있게 잘 맞춰 입는 정도였다. 하지만 모 통신 대기업에 잠깐 일하다 나와서 프리랜서로 전향하고 삼성전자에 출근하게 되면서 매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물론 L그룹처럼 나에게도 그것들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남자사원은 귀걸이 등 악세사리 금지, 청바지 금지 등등의 제한 사항이었다. 심지어 위반하면 이름도 적어 갔다.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귀도 뚫었다. 2주에 걸쳐 양쪽 귀에 모두 3개를 뚫었다. 청바지도 입었다. 그냥 청바지도 아닌 찢어진 청바지에 요란스레 물이 빠진 청바지도 종류 별로 입었다. 예술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고작 IT 나부랭이를 가르치면서 그렇게 요란할 필요가 있냐고 누구는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강의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일 가르칠 내용을 생각하며 어떤 옷을 입어야 효과적일 것인가를 상상하며 미리 옷을 골라 옷장 앞에 걸어놓는다. IT는 기술이다. 그런 기술이 어떤 사람에겐 예술이다. 그리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 않은가?


그랬던 회사가 청바지 허용에 이어 휴일근무시(?) 반바지 허용, 그리고 마침내 반바지 출근 허용이란다.
아, 그럼 이제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 창의력이 막 샘 솟겠네, 이제 일류 기업 삼성에서도 안드로이드 보다 더 괜찮은 제품이 나올거야라고 생각할 사람들에게 염소뿔도 녹는다는 삼복더위, 大暑(대서)에 뜨거운 물 퍼붓는 소리 좀 해야겠다. 문제는 반바지냐 긴바지냐, 청바지냐 면바지냐가 아니다.


"반바지?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대목에서 눈이라도 좀 흘겨야겠다.

진짜 문제는 바로 "허용"이라는 단어다. 그야말로 제멋대로다.


흔히 잘 알려진 대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회사에는 애초에 그런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뭘 입어야 할지 왜 회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나는 어려서 자전거를 타다가 다친 상처들이 다리에 수없이 많다. 그래서 반바지 입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아마 그곳엔 앞으로 이런 풍경이 펼쳐지겠지. 언론플레이를 위해 부서 별로 요일별로 반바지 입고 출근하라는 지시가 떨어질 것이다.


SDS 멀티캠퍼스에 네트워크 강의 제의가 들어와서 시강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튀지는 않았지만 그냥 넥타이 없이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갔다. 시강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쪽 담당자의 반말이 많이 거슬렀다. 시작하려고 컴퓨터를 켜고 준비한 PPT를 오픈하고 칠판 앞에 섰는데 아니나 다를까 복장을 지적했다. 그래서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불러 놓고 반말이나 하시는 분들이 거슬러서 저도 여기에서는 강의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강의는 사람이 하는 거지, 옷이 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원하시는 수트 걸어 놓고 강의시키면 될 것 같습니다." 하고 나왔다. 성질대로 였다면 더 심한 말을 했을테지만 그곳을 소개해주신 분을 잘 알고 있어서 매우 정중하지만 (아주 재수없게) 내 의사표시를 했다.


역사에 길이 남는 미팅 중에 하나로 IBM중역들과 풋내기 빌게이츠의 첫 만남이 있다. 넥타이와 슈트로 무장했던 중역들을 만나는 그 자리에 빌게이츠는 카디건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갔다고 한다. 물론 그다음 미팅에서는 중역들이 카디건을 입고 나갔는데 이번엔 빌게이츠가 슈트를 입었다고 한다.


맞다. 옷이 날개다. 하지만 옷은 사람이 입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옷을 만든다.


아무도 수영 선수나 마라토너에게 경기 중엔 슈트를 입히지 않는다. 오직 선수가 최선을 다하길 바랄 뿐이다. 선수들이 모든 경기를 마치고 좋은 성적을 얻었을 때 그걸 축하하는 리셉션이라면 슈트를 입을 수 있다. 나는 아직 경기 중이다. 그래서 지금은 슈트를 입고 싶지 않다. 아마도 모든 경기를 마친 내 장례식이라면 그땐 군소리 없이 얌전히 슈트를 입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궁금한 것은 그 회사엔 입어라, 입지 말아라 라는 말들만 있을 뿐 아무도 왜 쪼리를 신었냐? 왜 청바지를 입었냐? 왜 반바지를 입어야 하냐? 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 이제 반바지에 정장 구두를 신을텐가?





사진은 추사秋史 김정희 선생께서 제주에 유배하시는 동안 친히 적어 걸었다 알려진 대정향교 의문당疑問堂 현판







아, 아무도 이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면서도 결국 일등이 아닌 일류가 되겠다고 광고하던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 이거니?




음, 글쎄...내 짧은 소견으로 보기에도 이제 용되긴 다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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