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의 작별

인생의 2막

by 싱클레어

안녕, 회사와 아쉽지 않은 작별을 해냈다.


전의 브런치 연재북에서도 썼었지만 나는 회사와의 작별을 간절히 바래왔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사람이었다. 나를 힘들게 했고, 마음에 생채기를 낸 수많은 회사 사람들, 나는 그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번년도엔 이직을 할 수 없다면 쌩퇴사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벅차도록 큰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나에게 인생의 2막을 열만한 일이 벌어졌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 지금은 남편이지만 11월까지는 남자친구였던 그가 폴란드로 주재원 발령이 났다. 남친으로서는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경험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기에 우리는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제 문제는 나였다. 거의 3년간 다닌 안정적인 회사를 포기하고 갈 것인가? 아니면 짧다면 짧은 2년이라는 주재원 생활을 남편 혼자 보내고 나는 회사를 다닐 것인가?


끝까지 고민했다. 3주전까지도 고민을 했다. 앞으로 이직을 할 수 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이만큼 안정적인 회사를 포기한다는 것도 용기였다. 하지만 10월부터 회사를 다니면서 시작된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나의 선택을 바꾸었다. 회사 때문에 건강을 잃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 날부터 문이 닫힌 곳에 혼자 있지 못하고, 숨이 막히고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나를 힘들게 하던 상사를 보면 도망치고 싶었다. 우울하다는 생각도 너무 자주 들었고, 삶에 대한 의욕이 없고 해야할 일을 자주 깜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런 증상이 그냥 놔두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병원에 간 날, 의사선생님은 내가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있다고 했고, 그 사실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항상 밝았던 나에게 마음의 병이 찾아왔다는 것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벌어졌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몇 번의 내원 끝에 진단서를 받았고, 나는 휴직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회사는 2차병원 진단서가 없으면 휴직을 허가해줄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 때 나는 마음을 굳혔던 것 같다. 이 회사를 그만 다니자고. 진단명과 의사 소견, 병명과 코드가 있었음에도 나의 휴직은 반려가 되었고, 나는 2차병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2차병원에 가려면 최소 6개월은 또 병원에 다니고, 무엇보다 회사를 다녀야 하는데, 정신과에서도 그랬듯이 나의 병은 회사 때문에 생긴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신혼여행 둘째주에 회사에 퇴사 통보를 했다.


퇴사도 용기였다. 퇴사하고 싶어, 라고 매일 되뇌었지만 실제로 사직서를 내 손으로 쓰고, 사장님실에 들어가서 이러이러한 이유로 퇴사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어찌 되었든 3년 동안 내가 돈을 벌었던 곳이었고, 여러 인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 그리고 가끔은 웃기도 했던 곳. 그 곳을 내 발로 떠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가장 놀란 건 우리 회사였다. 그들은 내가 퇴사를 할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모두가 충격적이라고 말했고, 항상 밝아서 몰랐다, 이렇게 갑자기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나에겐 갑자기가 아니었다. 퇴사 통보를 하고 나는 마음이 후련했다. 아쉬움도 조금은 있었지만 그보다는 후련하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회사는 나에게 감옥 같았고, 나는 그 안에 갇힌 족쇄에 묶인 죄수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퇴사를 하고 폴란드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유로움이 내 몸을 감싸고 있다.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내 눈 앞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이 모든 느낌 때문인지 최근 심했던 공황장애와 우울증 증상도 거의 없다.


회사에 출근하던 마지막 날, 적어도 우리 사장님은 나에게 수고했다고, 그리고 항상 행복하길 바란다며, 하고 싶은 일 하고 살라며 나에게 예쁜 꽃다발과 맛있는 빵들을 사주셨다. 6시가 다 되어가던 시간에 사장님이 직접 나오셔서 “oo대리가 오늘부로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두 일어나서 박수 쳐주세요.”라고 직원들에게 말해주시기도 했다. 조금은 울컥했다. 친했던 주임님들과 대리, 과장님들은 아쉬워하시며 행복하라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셨고, 나를 괴롭힌 장본인들은 몰래 집에 간지 오래였다. 나에게 끝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나의 직속상사. 퇴사를 하는 그 날까지도 그는 비겁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아쉬움 섞인 눈빛을 뒤로 한 채 나는 회사를 나왔다.


아쉽지 않느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조금은 아쉬움도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보다는 설렘과 기대가 더 크다. 앞으로 내 삶에 찾아올 변화들이 조금은 걱정스럽지만 설렌다. 전혀 모르는 나라, 중부유럽의 중심 폴란드에서 살아가는 인생도 어쩌면 나에겐 큰 경험이 될 것 같다고. 나는 자유롭다. 그 누구도 날 가로막지 않고, 누군가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말도 안되는 정치질에 놀아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큰 세상을 맛보려고 한다.


퇴사는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 가장 첫 걸음이다. 맞지 않는 퍼즐 구멍에 나를 맞추려던 시도를 멈추고 이제는 나의 몸에 꼭 맞는 자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내가 가장 잘하고, 가장 좋아하고,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그런 나를 내가 가장 많이 응원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