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일몰

아뿔싸, 시기를 잘못 선택했다

by 싱클레어

신혼여행을 다녀온 12월 셋째주, 나는 폴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은 이틀 전에 이미 폴란드에 가있었고, 나는 퇴사를 마무리하고 늦게 출발했다. 폴란드라는 나라는 인생 처음이었다. 나름 유럽에서 살았던 시절도 있었고, 그 때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 다녔지만 폴란드는 여행 리스트에 없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등 심지어 아프리카 모로코까지 다녀왔지만 이상하게도 폴란드를 간 적은 없었다. 관광지로 유명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폴란드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쇼팽, 그리고 아우슈비츠. 그 두 개가 다였다. 그런 내가 폴란드어로 “안녕”이라는 말도 모르면서 1년 넘게 이 나라에서 살겠다니. 아이러니하다. 사람 인생은 참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것. 요새 더더욱 느끼고 있다. 폴란드로 가는 비행기에서 약간은 설렘과 걱정을 안고 있었다. 그 나라의 성향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고, 또 막상 가면 유럽이니까, 얼마나 예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 유럽이니까, 유럽식 건축물과 좋은 날씨, 맛있는 빵과 커피. 그 모든 것들을 만나러 가는거야. 그 생각에 설렘이 더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기에 즐거운 인생이란. 폴란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극명히 다른 나라였다. 폴란드를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그 때부터 달랐다.


내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는 폴란드 시각으로 오후 2시쯤이었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고 나와서 남편이 데리러 오길 기다리는데, 공항의 커다란 유리 통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스산했다. 말 그대로, 스산했다! 흠, 오늘은 날씨가 안 좋은가보군. 그렇게 생각했다. 남편을 만난 시간은 약 오후 3시쯤이었고, 차를 타고 집에 가는 길에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가 왜 이렇게 빨리 지는거야..?” 남편은 내 동그란 눈을 보고 하하 웃었다.


”원래 유럽은 겨울에 해가 일찍 져.“


”하지만 스페인에 살 땐 겨울에도 이렇게 일몰 시간이 빠르진 않았는데.“ 내가 반박했다.


반박해봤자, 이미 해가 지고 있었고, 남편은 “거긴 남유럽이잖아. 축복받은 날씨지. 여긴 아냐. 중부유럽이잖아. 네가 옛날에 살던 곳과는 다를거야."라고 대답했다.

아, 유럽이 다 똑같진 않지. 나는 스페인 중에서도 아프리카와 가까운 남부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겨울임에도 추위를 느낀 적도, 해가 빨리 진다고 우울했던 적도 없었다. 스페인은 항상 밝은 나라였다. 하지만 폴란드는 완전 반대인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즈음,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고(실제로 4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며 신혼집을 구경했다.


바르샤바에서 산지 약 2주가 되었는데, 최대한 일찍 일어나서 오전에 밖에 나갔다 오려고 한다.(사실 날씨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것 자체를 실패하는 날도 허다하다.) 3시면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 안에 모든 활동적인 일들을 끝낸다. 오늘만 해도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카페와 공원에 다녀왔다. 다녀와서 집안일 조금 하고, 글을 쓰다보니 벌써 어두워졌다.


심지어 겨울이 엄청 추운 나라인 것 같다. 영하의 기온을 웃도는데 문제는 바람도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는 우리나라 겨울보다 춥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크리스마스 땐 영하 11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물론, 그 이틀간 처음으로 해가 떠서 너무 행복했지만 말이다. 도착한지 10일만에 해를 봤는데 햇빛의 소중함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조차 1~2시간 지나니 다시 흐려졌긴 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폴란드에 와서 한 것이 장보기, 공원 가보기, 문화과학궁전(랜드마크) 구경, 쇼팽 박물관 가기, 집안일 하기… 이 정도밖에 없지만, 확실한 건 날씨 때문에 집 밖을 나가고 싶지가 않다. 잘못하면 우울증이 심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몸을 움직이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가보려고 하지만,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한다. 남편은 여름에 처음 폴란드에 도착했는데 날씨도 너무 좋고 예뻤다고 했다. 지금 나는 상상조차 할 수가 없지만, 얼른 1~2월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오길 바란다.


중부유럽의 특징이라 그런지 날씨가 안 좋기는 해도, 또 그 나름의 매력도 있다. 건물들이 유럽식이 아니다 보니(바르샤바는 사실 작은 서울같다) 겨울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 있다. 자주 끼는 안개도 으스스하긴 하지만, 이 나라와 꽤 잘 어울린다. 아, 그래도 겨울은 얼른 지나갔으면 좋겠다! 하루의 70%가 어두컴컴한 건 조금 우울하니까.


오늘도 오후 3시의 일몰을 바라보며, 봄의 바르샤바를 상상해본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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